big story 상상력의 보고, 신화
신화 속 요괴는 두려움의 상상력을 반영한다. 요정, 요괴, 몬스터 등으로 문화권에 따라불리는 이름은 다르지만 ‘인간이 아닌 이형(異形)의 존재’로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세계 공통이다. 특히 요괴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살아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최근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부상하며 신화 속 요괴들이 호시절을 맞고 있다.
김윤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영화 평론가·<포켓몬, 마스터 되기> 저자, <신화, 영화를 만나다>·<아시아 신화여행> 공동저자
‘공포의 빨간 마스크’ 괴담을 아시는지? 1990년대 중반 난데없는 ‘공포의 빨간 마스크’ 이야기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열광적이고도 급속하게 퍼져 등하굣길의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일이 있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100m를 3초에 주파하는 속도로 달려와 아이들에게 “나 예뻐?” 하고 묻는다는 이야기다. 만일 “예쁘지 않다”고 대답하면 빨간 마스크는 화가 나서 아이를 죽인다. “예쁘다”고 대답하면 마스크를 벗어 귀밑까지 찢어진 무서운 입을 보여주면서 “나 예뻐?”라고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겁에 질린 아이가 다시 ‘예쁘다’고 대답을 반복하면 “똑같이 예쁘게 만들어주겠다”고 입을 찢어 죽인다는, 말하기도 황당하고 끔찍한 이야기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불가항력적 죽음의 상황을 담은 이 현대적 요괴 이야기는 1970년대 말 일본 전역에 무섭게 퍼져 아이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만들었던 도시괴담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이 뒤늦게 한국에 유입돼 널리 퍼지면서 일본산 요괴가 한국 아이들의 상상적 세계마저 공포로 몰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빨간 마스크를 무서워하던 그 아이들은 얼마 전 또 다른 현대적 요괴인 포켓몬이 등장하는 ‘포켓몬고’라는 게임에 열광하며 전국 방방곡곡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다채로운 포켓몬들을 잡으러 다니던 파워풀한 게임 유저들이기도 했다.
왜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포켓몬에 미치는 걸까? 아니 왜 사람들은 이 괴이쩍고 이상하고 섬뜩한 요괴들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할까? 그리고 그 진원지는 왜 하필 일본일까? 지금도 극장가엔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들 사이에 나란히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요괴워치>가 걸려 꽤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소리 없이 흥행하고 있다.
신화 속 요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요괴(妖怪)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요괴는 ‘인간이 아닌 이형(異形)의 존재’로 인간의 애니미즘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신화에는 아름다운 신과 멋진 영웅도 있지만 흉측한 요괴나 괴물도 존재한다.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 같은 서양 신화들에도 메두사나 스핑크스, 사악한 용 같은 요괴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요괴는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력의 산물인 요괴는 인간 문명의 발달과 연동해 자연계 요괴, 동물계 요괴, 도구계 요괴, 인간 변형 요괴 등으로 변천이 이루어졌다.
이런 변천 과정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점차 변화해 왔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처음에는 태풍이나 눈보라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이나 인간보다 강한 능력을 지닌 짐승들이 두려운 요괴의 형상이 됐을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어 쓰게 되자 만물유령사상인 애니미즘적 사고를 하던 그들은 도구에도 영혼이 깃들어 요괴가 된다고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분노와 집착에 눈이 먼 인간이야말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요괴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학교 가는 길이 싫거나 학교라는 장소와 관련해서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 거부감이 빨간 마스크 같은 현대적 요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요괴는 이처럼 인간이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운 자연현상이나 공포를 느끼는 감정들을 상상 속에서 형상화한 존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요괴라는 용어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일본 민속학자들이 처음 학술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든 나라에는 요괴의 성질을 가진 존재들이 있지만 일본 요괴와 그 성질이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요괴는 식물이나 동물의 정령(spirit)이나 팅커벨 같은 요정(fairy), 육체성이나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괴물(monster) 혹은 괴수와도 조금 다른 존재다. 중국에서는 이런 존재들을 요·괴·정(妖·怪·精)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와의 원한관계에 따라 출몰하는 사연 있는 귀신이나 유령과도 달라서 요괴는 어떤 특정 장소와 관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동아시아적 상상력의 세계에는 과연 어떤 요괴들이 살고 있을까? 중국의 대표 요괴로는 걸어 다니는 시체 강시나 우리에게 친숙한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 인간의 껍질을 쓴 화피, 몸통에서 목이 떨어져 날아다니는 낙두 같은 요괴들이 있다.
변화무쌍한 능력을 지니고 변신에 능하며 인간에게 원한을 갖고 해를 입히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 중국의 요괴들이다. 서양의 흡혈귀와 좀비를 합쳐 놓은 듯한 강시는 사람들을 물고 피를 빨아 죄다 강시로 만드는 요괴이고, 낙두는 밤마다 목과 몸이 떨어져 날아다니는 괴이한 여자의 이야기다. 아마 중국의 낙두 이미지는 일본의 목이 쭉 늘어나는 요괴 로쿠로쿠비와 유사한 요괴일 것이다.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인간 여자로 둔갑하는 여우 기담의 원형이 되는 요괴로 남자를 홀리거나 사람의 간을 빼먹으며 해친다고 전해진다. 한국과 일본에도 백여우, 불여우, 구미호, 천년호와 같은 많은 여우 요괴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사랑에 빠진 여우, 은혜를 갚는 여우 등등의 모티브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구미호는 매력적인 킬러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해경>의 구미호와 <포켓몬스터>의 나인테일
인간에게 이로운 요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요괴는 부정적으로 인식돼 제사를 모시지 않았으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사스러운 것이라 여겨 퇴치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이무기, 불가사리, 불여우, 두억시니와 같은 요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요괴들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이 도깨비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도깨비는 중국이나 일본적인 요괴와는 다소 궤를 달리 한다. 도깨비는 우악스럽고 두렵기는 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이로운 신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도 이매와 망량이라는 요괴들이 있다. 혹자는 한국 도깨비의 기원을 이매망량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들은 큰 신 전욱의 자식으로 사람을 홀리는 요괴들이었을 뿐 인간을 이롭게 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도깨비는 오히려 순진하고 어수룩하기까지 해서 사람에게 골탕을 먹거나 이용을 당하는 트릭스터(trickster)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 도깨비는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산과 바다의 도깨비불이나 성인 남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재물신으로 받들어진다.
최근 TV 드라마 <도깨비>에서 배우 공유가 도술을 부리는 로맨틱한 부자 도깨비로 등장해 여심을 사로잡은 덕에 캐나다 퀘벡이 인기 절정의 여행지로 등극했다. 퀘벡의 그 빨간 문을 기억하실 거다. 심지어 그 도깨비의 이름은 ‘김신’이었다. 작가가 우리 도깨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신적인 특성을 이름에 담아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혹부리영감 이야기 속 도깨비 모습은 일본 오니의 모습이다. 요괴는 귀신이나 유령 혹은 괴물과는 다른 존재이고 사람을 해코지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한국에는 내로라할 고유의 요괴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인의 죽음관이 상대적으로 요괴 왕국 일본에 비해 순하고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진이나 화산, 해일의 피해가 빈번한 일본에서 죽음은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불시에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들은 모두 한을 품었을 것 같다. 그러한 공포와 두려움이 판타지와 상상력을 추동하면서 일본을 전무후무한 요괴 왕국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신화란 그 신화가 생겨나고 소통되는 지역의 기후풍토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을 반영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일본 요괴의 대표로는 덴구, 갓파, 오니를 들 수 있다. 덴구는 코가 길고 얼굴이 붉은 날아다니는 요괴로 후에 타락한 수도승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가졌다. 갓파는 물에 사는 초록색 요괴로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접시에 물이 담겨 있다. 입은 새의 부리 모양이고 거북이의 등껍질을 닮은 몸통을 가진 어린아이 키 정도 크기의 요괴다. 오이를 좋아하고 인간의 항문에서 혼구슬을 빼간다고 알려져 있다.
오니는 머리에 뿔이 나고 몸이 붉은 건장한 남자의 모습으로 손에는 돌기가 있는 방망이를 들고 있다. 일본 요괴들의 모습이 무척 구체적이고 시각적이라는 느낌을 받으셨는지? 요괴는 그 이미지나 외형이 중요하다.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 모습을 통해서 현상을 이해해보려는 것이 요괴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괴 현상은 더 이상 우리 삶에서 유효하지 않다. 아주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어떤 기이한 현상을 요괴의 짓이라고 여기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요괴들은 사라졌을까? 아니다. 요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그 이미지들은 남아 있다. 어두운 곳에서 살던 요괴들이 외형을 중시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로 세상에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개를 치는 호시절이 된 것이다.
이제 요괴들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그리고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가져오는 캐릭터 산업의 총아가 됐다. <포켓몬스터>로 <요괴워치>로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나츠메 우인장> 같은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매력적인 연인 캐릭터가 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목욕탕으로 놀러오는 손님들이 되기도 한다. 요괴가 즐거운 놀이의 대상이자, 거대한 문화 산업의 킬러 콘텐츠로 부상하며 되살아나고 있다. 요괴는 살아 있고 요괴 산업은 돈이 되는 ‘춤추는 요괴의 시절’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box 애니메이션 속 요괴들
일본에는 헤이안 시대부터 ‘햐쿠모노가타리’라고 하는 요괴담을 즐기는 놀이 문화가 있다. 그 영향으로 일본에는 많은 요괴담이나 요괴화들이 인기리에 제작, 판매됐으며 이런 고문서 중에 여러 종류의 <백귀야행도>가 남아 있다. 백귀야행이란 요괴들이 출몰하는 봉마각(저녁에서 밤이 돼 가는 어스름의 시간)에 솥단지, 빗자루, 거문고나 책상 같은 물건들이 변한 쓰쿠모가미(사물 요괴)들이 열을 지어 행진하는 것으로 이 장면을 화폭에 그린 것이 <백귀야행도>다. 쓰쿠모가미들은 인간이 자신들을 혹사하고 착취하기만 하는 것에 원한을 품고 요괴가 된다.
<백귀야행도>의 요괴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살아나는 작품들은 많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속 요괴들의 퍼레이드는 직접
<백귀야행도>를 응용한 것이다. 현대 일본 요괴 이미지를 주도적으로 그려온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원작 <게게게노 키타로>를 1968년에 처음 동명의 TV 시리즈로 만든 이래 일본의 요괴 애니메이션 전통은 유구하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에도 전래되는 요괴들이 등장하고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일본의 대표 요괴 갓파가 주인공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에도 다수의 요괴들 혹은 거대한 짐승신들이 나온다. 장편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시리즈 애니메이션들도 매력적인 요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누야샤>, <나츠메 우인장>, <누라리횬의 손자> 등이 최근에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들이고 요괴를 전면에 내세우는 <요괴워치>는 새로 부상하는 이 장르의 애니메이션이다. 중국 <산해경>에 기원을 두고 있는 <포켓몬스터>의 나인테일이나 시라소몬, 파이어 같은 여러 캐릭터들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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