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소금이 빠진 고기와 교정 받지 않는 아이는 부패한다”는 덴마크 속담처럼 교육은 우리 사회가 병들지 않도록 주입해야 하는 백신과도 같다. 이혜정(46)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말하는 인성교육의 핵심가치도 그와 같았다. 그는 인공지능(AI)의 통제권이 대중에게 분산되는 AI 시대에서 올바른 판단력을 결정하는 인성교육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존폐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인성교육이 ‘백신’처럼 필요해요”
물질 만능주의와 무한 경쟁이 낳은 갑질 논란, 패륜 범죄 등으로 우리 사회가 곪아 가고 있다. 그중 올해 세간의 공분을 일으킨 ‘부산 여중생 폭행’, ‘인천 여야 살인’ 사건에서 마주한 청소년 범죄의 참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청소년들의 반인륜적, 비도덕적 행각이 일상생활에서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최근 청소년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인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인성교육이야말로 창의적인 사고, 코딩교육과 함께 다가올 AI 시대의 아이들에겐 미래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라며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점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AI 시대의 인성교육이 왜 중요한가요.
“그간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였죠. 다만, 핵무기의 경우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지원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일반 국민에게 통제권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어요. 또한 핵무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군통수권자 외에도 수많은 참모들의 의사결정이 수반되기 마련이죠.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해킹이 가능할뿐더러 다가올 AI 시대에서는 개인마다 로봇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즉, 미래에는 AI 사용에 대한 통제력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자칫 핵무기 이상으로 인류를 자멸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AI 시대에는 반드시 보편적인 인성교육이 우리 사회 ‘백신’처럼 필요한 겁니다.”

일각에서는 인성교육이 미래 아이들의 경쟁력이 된다고도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타인과의 다름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관용’의 자세가 핵심이죠.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아이의 사회지능(SQ)이 높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그 비율이 80% 이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실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교육 미션을 보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과 글로벌 마인드, 그리고 협업과 소통 능력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어요. 이 협업과 소통 능력은 대개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교육과정에서 발휘돼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실험인가요.
“최근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 학생들의 협업 태도에 관한 비교 실험을 토대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주고, 양측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일을 분담하고 수행할지에 대한 실험이었죠. 그 결과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경우, 거의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이 리더를 자처해요. 이들은 각 팀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일을 분담하죠. 특이한 점은 각 팀원들이 수행한 결과를 리더가 수집한 뒤, 아쉬운 부분은 대개 혼자서 싹 뜯어고치더란 거죠. 일종의 희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시간낭비를 줄이고, 팀 전체에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래요. 결과물도 굉장히 매끄럽고, 수준이 높아서 이런 작업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이상적인 협동(cooperation)이라고 생각한대요.
반면, 미시간대 학생들의 협업 과정은 서울대 학생들의 그것과 상당히 달랐어요. 이들 상당수는 분업은 최소화하고, 거의 모든 작업을 함께 진행해요. 매 과정마다 상이한 구성원들 간 합의가 필요하다 보니 프로젝트 수행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과물의 수준도 오히려 떨어졌어요.”
“AI 시대, 인성교육이 ‘백신’처럼 필요해요”


















그런데 왜 미국에서 그런 교육 방법을 고수할까요.

“그 점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미시간대 학생들의 팀 작업보다 서울대 학생들의 그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국 학생들의 팀 작업은 불평등한 부분이 있다는 거였어요. 가령, 한 학생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을 맡고, 일일이 다 뜯어고친다면 그 학생은 그 일의 전체를 경험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분만 학습하게 된다는 거죠. 일종에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거예요. 물론 저도 반론을 제기했어요. 각자가 잘하는 부분을 모아서 그중 최고를 선택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이죠. 그런데 그건 학교를 벗어나 현업에서의 일이지, 학교에서의 협력(collaboration)은 그 과정을 학습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거였어요. 아이들은 협동(cooperation)이 아닌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서로 의견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치열하게 논의해서 의견일치(consensus)에 이르는 과정을 배우는 거죠.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오히려 결과물은 투박할지라도 이런 과정을 겪는 친구들의 경우 미래의 리더로서 협업 및 소통 능력이 더 발현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교육 시스템이 우리나라 교육 체계에서는 불가능한가요.
“안타깝게도 그간 우리 교육 시스템 자체가 관용의 미덕을 약화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초·중·고교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이나 암기식 교육을 받죠. 정답 하나만 고르기를 강요받고 그렇게 길들여진 학생들은 철학적 사고나 창의적 사고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서울대에서도 교수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는 반면, 창의적인 답변을 제출한 학생들은 학점이 좋지 않았죠. 심지어 교수와 자신의 의견이 다른 것을 학생들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이분법적이고 획일화된 평가 시스템 자체를 먼저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물론, 창의적인 사고력도 담보될 수 없어요.”

평가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평가를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꾸고,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학습 과정을 지양해야 하죠. 그것 자체로도 창의적 인성교육이 이뤄지거든요. 국제적 공인 교육과정인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를 도입한 우리 공교육에서의 학교가 있어요. 경기외고죠. 이 학교 국제반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소설 <광장>과 <홍길동전>에서의 공간의 의미’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어요. 특이한 점은 학생들 대부분 그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대개 일반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사용은 ‘딴짓’을 할 수 있다며 금기시하잖아요. 그런데 이 수업에서는 이런 디바이스들이 ‘딴짓’의 도구 자체가 될 수 없더라고요. 모두가 토론에서 참여자로서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죠. 좀 신기해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었어요. 서로 반론을 제기하면 친구들끼리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 않느냐고 말이죠.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놀라웠어요. ‘왜 다른 의견이 반대 의견인가요’라는 게 아이들의 답이었죠.
되레 이들은 친구의 의견이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피드백들을 통해 자신의 지식이 더 확장되는 걸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학습하기 때문이죠. 또한 이런 과정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죠. 가령, 아이비 같은 경우에는 교차채점뿐 아니라, 내신도 랜덤으로 샘플을 골라서 채점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성적을 부풀리다 적발되면 학교 자체의 점수가 떨어져요. 이런 제도가 마련돼야 학생들도 평가 체제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있고요.”

또 다른 대안책을 제안하신다면요.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길러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것 역시 관용의 일환이죠. 공감이야말로 타인의 다름을 계속해서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잖아요. 대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사고의 방식이 굉장히 협소하고, 자기 생각만 맞는다고 생각하죠. 그런 이게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역사적으로도 큰 전쟁마다 결국 ‘인식의 차이’, ‘생각의 차이’가 발단이 됐잖아요. 종교전쟁이 대표적이죠. 나와 다르면 선이 아니고 악이라고 규정하는 인식 자체가 배타와 증오를 낳죠. 이 간극을 줄이려면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해요. 덴마크의 경우,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일주일에 1~2회 공감 능력을 기르는 수업이 있어요. 특별히 정해진 주제는 없어요. 어떤 이슈든 아이들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질문하고, 얘길 들어주죠. 미국의 한 전문 사립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교육 커리큘럼을 봤어요. 이른바 ‘서클타임’이라는 수업인데, 매일 3타임씩 30분간 진행해요. 단, 여기는 주제가 있고, 월간·주간·일간 테마로 나뉘어요. 가령, 월간 주제는 ‘나답게 사는 것(Being me)’이라면, 첫 주에는 가족에서의 나, 둘째 주에는 친구 속의 나 이렇게 세분화돼요. 일별로는 ‘가족에서의 나’의 경우, 월요일은 엄마가, 화요일은 아빠가, 수요일은 고양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해 아이들 간 서로 이야기를 하는 식이죠.”

말을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지 않나요.
“저도 그 부분이 이해가 안 갔어요. 대개 말을 안 하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해결 방안이 꼭 없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가령, 수잔은 말하길 좋아하고, 에이미는 반대의 아이죠. 당연히 에이미는 처음에는 말하길 꺼려해요. 이럴 땐 되레 수잔이 에이미의 이야기를 대신해준대요. 에이미가 수잔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러다 수잔이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때서야 에이미가 ‘그건 사실이 아니야’라면서 말을 시작한대요. 놀랍죠. 이런 작은 과정들이 아이들의 소통 능력을 길러주고, 나아가 공감과 관용의 자세를 배우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인성교육이 아닐까요. 우리 교육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미래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