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박은영 문학박사·미술사가] 마을 개울가에 나란히 서 있던 포플러들은 해마다 한두 그루씩 사라져 갔다. 태풍이 유난히 몰아치던 어느 여름, 마지막 남은 한 그루마저 쓰러지고 마을에선 더 이상 포플러를 볼 수 없었다.
포플러가 있는 들판, 1875년, 보스턴미술관
포플러가 있는 들판, 1875년, 보스턴미술관
여름의 끝자락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에 무더위가 물러감을 안도할 즈음, 간혹 바람결에 나부끼는 가로수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올 가을 앞에서 지는 여름을 아쉬워하듯 몸을 흔드는 나무를 보면 어릴 적 흔히 보았던 포플러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포플러는 특히 성장이 빠르고 정화 능력이 우수하며 나뭇결이 부드러워 성냥, 젓가락, 인견사, 종이 등을 만드는 데 두루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국가 정책으로 품종을 개량한 이탈리아 포플러를 전국에 보급해 육성하도록 했다. 농촌에서는 가로수나 하천 정비 용도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익을 위해 대량으로 포플러를 심었다. 그 수익금으로 지역의 학생들을 후원하는 ‘포플러장학회’가 설립될 정도였다. 마을의 신작로나 들판의 개울가에 키가 큰 포플러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은 그 시절 흔한 풍경이었다. 여름철 포플러 밑에 가면 머리 위에서 수많은 이파리들이 햇살을 받아 은빛을 내며 팔랑거렸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나뭇잎들은 서로를 스치며 우수수 소리를 냈다. 제철을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생명의 소리처럼. 속성수로 불리는 포플러는 그 대신 뿌리가 깊지 못해 강풍이나 침식에 약하다. 그런데 큰 나무들이 태풍에 쓰러진 후 동네에서는 웬일인지 새 묘목을 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무의 성장처럼 급부상한 ‘포플러 붐’이 그만큼 빨리 삭아들었던 것이다.
1980년대부터 도시 미관과 생활환경이 중시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포플러는 사라져 갔다. 봄철에 꽃가루가 날린다는 이유로 마구 베어졌고 가로수는 계속해서 다른 수종으로 대치됐다. 이제 포플러는 추억의 나무로 회상 속 아련한 풍경의 한구석을 차지할 뿐이다.


클로드 모네의 포플러 그림들
19세기 프랑스에서도 사라져 가는 포플러를 붙잡아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든 화가가 있었다. 그는 인상주의 화풍을 주도하며 수많은 풍경화를 그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였다. 1875년, 인상주의 활동이 한창 물이 오를 때 모네는 <포플러가 있는 들판>을 그렸다. 이 그림은 모네 가족이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로 이주해 살 때 그린 것으로, 화창한 여름날의 전원 풍경이 신선하게 펼쳐진다.
모네에게는 끊임없이 자연의 인상을 바꾸는 햇빛이야말로 작품을 결정하는 제일 큰 요소였다. 이 그림에서도 태양은 화면 전체를 비추며 밝은 빛 속에 모든 사물을 녹일 듯이 하나로 통합한다. 모네는 가벼운 잔 붓질과 두꺼운 물감의 질감으로 형태를 모호하게 표현했다. 햇빛 아래서는 눈이 부셔 모든 것을 분명히 구분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하늘과 구름, 초목의 원색들이 더욱 선명해진다. 야생화가 가득 핀 들길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멀어져 가고, 키 큰 포플러는 지평선에 수직으로 맞서며 그림에 힘과 균형과 생기를 주고 원근을 형성해 시선을 유도하며 깊이감을 부여한다.
나무 밑 들꽃 사이에 모자를 쓴 한 여인이 앉아 있는데 아마도 모네의 부인 카미유일 것이다. 밝고 따뜻한 이 풍경은 자연의 평화로움과 삶의 잔잔한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포플러는 모네의 풍경화에서 마치 든든한 기둥처럼 일생 동안 자주 등장한다. 모네가 40대에 노르망디 지방 지베르니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다음부터 포플러는 더욱 빈번히 그림의 소재가 됐다. 지베르니에는 센강의 지류인 엡트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강변에 포플러들이 긴 대열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엡트강의 굽은 길, 1888년, 필라델피아미술관
엡트강의 굽은 길, 1888년, 필라델피아미술관
그림 <엡트강의 굽은 길>을 보면 그가 좋아한 빛과 바람, 물이 포플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강가에 서 있는 포플러 나무들은 녹음을 이루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린다. 화면에 낮게 깔린 강물이 이들을 조용히 비춰 청량한 분위기를 더한다. 흐드러진 나뭇잎들은 태양과 바람에 아낌없이 몸을 맡겨 춤추듯 흔들리며 반사된 빛을 사방에 흩뿌린다. 살랑거리는 바람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생기가 넘치는 쾌적한 풍경이다.
모네는 특히 1891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집중적으로 포플러 그리기에 매진했다. 그 연작들에서 포플러는 구부러진 강둑을 따라 에스(S)자를 그리며 멀어져 가기도 하고, 서너 그루가 수직으로 서서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가기도 한다. 모네는 강물 위에 배를 띄워 작업실로 삼고 강둑 쪽을 바라보며 포플러들을 그렸다. 물에 비친 나무들의 반영을 제때 포착해 날씨와 시간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자연의 조건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엡트 강둑의 포플러 네 그루>는 곧게 뻗어 오른 나무들을 클로즈업해 아래쪽만을 묘사한 작품이다. 강변의 무성한 잡초가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그 밑 강물에 반영이 비쳐 위쪽과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네 그루의 나무줄기는 반영으로 이어져 수직으로 화면을 분할하며 수평과 수직의 균형 있는 구도를 완성한다. 강변과 나무들은 역광을 받아 짙은 색을 띠면서 마치 견고한 창살처럼 그 너머의 풍경을 내다보게 한다. 그곳에는 맑은 하늘이 온화하게 펼쳐지고 가을빛에 물든 황금색 포플러들이 곡선을 그리며 멀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앞에는 어두운 색과 무뚝뚝한 직선이 만드는 기하학이, 뒤에는 달콤한 파스텔조와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서정성이 서로 충돌하고 보완하며 조화롭게 공존한다. 이 대담한 작품은 화가가 자연의 변화와 함께 자신의 시점 변화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조율해낸 예지와 노력의 성과다.
엡트 강둑의 포플러 네 그루, 1891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엡트 강둑의 포플러 네 그루, 1891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모네의 포플러 연작에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깃들어 있다. 엡트 강변의 포플러들은 원래 마을공동체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모네가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경매에 붙여졌다. 나무들이 베어질 위기에 처하자 모네는 스스로 나무들을 전부 구입했다. 그리고 작품을 마저 완성한 뒤 목재상에게 다시 팔았다. 이 이야기는 예술을 위한 화가의 무한한 열정을 말해준다.
그 덕에 포플러들은 모네의 그림 속에 영원히 남았다. 하지만 실제 포플러들은 결국 목재상에 넘어갔을 것이다. 빨리빨리, 높이높이 자라서 사랑을 받는 포플러는 그만큼 빠르게 사람들에 의해 수명을 다하곤 한다. 그래도 모네의 그림처럼 포플러는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 때면 어린 날 왠지 기대고 싶던 키 큰 포플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