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석좌교수]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뜨거운 감성도 없고 빛나는 창의력도 없을 것이라고 지레 치부해 버린다. 또한 일부 나이든 사람들은 이미 늙어서 이런 것도 못하고 저런 것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빛나는 불후의 명작들 상당수가 대가들이 만년에 완성한 작품들이다.
19세기의 괴테, 유고, 비발디, 다빈치뿐 아니라 20세기의 피카소, 가다머, 갈 브레이드, 드러커 등 저명한 예술가, 철학가, 학자들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당당하게 작품들을 발표했다. 우리 역사에서도 황희, 송시열, 허목 등이 여든이 넘은 고령임에도 명재상과 대학자로서 풍모를 견지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예술과 학문 모든 분야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훌륭한 작품과 업적을 창작하고 완성한다는 사실은 노화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꾸게 하는 데 충분하다. 나이가 많다는 단순한 이유로 으레 지적 능력이나 감성이 떨어졌으리라는 선입관은 버려야 하며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지적 및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어본다. 한국인 백세인 조사에서도 백 살이 넘어도 당당하게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면서 연년익수(延年益壽)의 지혜를 배운다.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서 만난 김휴갑 할아버지의 경우는 매우 독특했다. 젊은 시절 소장수를 하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삼팔선 이북 수복지구의 땅들을 사 모아 땅 부자가 됐다. 첩첩산중의 내린천 흐르는 지역이 이제는 인기 관광지대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옹(翁)은 아직도 자신의 재산을 몸소 관장할 뿐 아니라 혹시 자기 모르게 재산상 사고라도 날까 저어하여 매주 면사무소에 가서 지적도를 직접 확인한다고 했다. 백 살이 넘어도 재산 관리를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슬기로운 행동에 감탄했다.
또한 백 살이 넘은 나이에도 읍내 시장에 매 주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쉬는 적이 없이 항상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식들이 조금 쉬도록 하면 “가만있으면 뭘 해” 하면서 오히려 질책하곤 했다. 팔십이 넘은 며느리에게 시아버님에 대한 평을 묻자, 며느님의 단평은 너무도 놀라웠다. “아버님은 웽웽거리는 벌 같아.” 지금도 모든 일에 간섭하고, 쉴 새 없이 참견하는 모습을 단호하게 혹평한 것이다.
실제로 조사단이 찾아뵌 남성 장수 노인들은 거의 대부분 부지런히 일을 찾아 하는 분들이었고, 여러 가지 대소사에 직접적으로 여전히 참여하는 분들이었다. 자식들 입장에서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적극적 참여 의지와 능동적 행동 덕에 이분들이 건강하게 백세를 누리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으레 자식들에게 큰방을 내놓고 문간방이나 건넛방으로 밀려나는 것이 우리 전통사회의 상례였다. 백세인 조사를 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지만 자식들과 같이 살면서 아직도 큰방을 차지하고 있는 분을 뵙기가 실제로 어려웠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전남 곡성군에서 찾아뵌 하현순 할머니는 백두 살이었는데 집을 찾아 들어선 순간 큰 방을 할머니가 아직 쓰고 계셨고 일흔다섯 살인 둘째 아드님 내외가 작은방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님께서 큰방 쓰고 계시군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필자의 말에 아드님은 “우리 어머니는 큰방 쓰실 만해” 하며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궁금했다.
하 할머니는 지금도 꼿꼿했고, 바느질을 하실 정도로 눈도 밝고, 식사도 뭐든지 잘 드신다는 것이었다. 또한 성격은 까다롭지 않으며, 가끔 욱하거나 화를 내도 뒤가 없으시며,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낙관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드님은 어머님이 지금도 술을 마신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손주들이 인사 와서 용돈을 드리면 모아 두었다가 집 앞 구멍가게에 가서 소주를 사와 방에 숨겨 놓고 계시다가 수시로 드신다는 것이다.
술을 한 모금도 못하는 아드님의 입장에서는 어머님의 음주가 보통 걱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드님이 가끔 술병을 찾아 없애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이를 또 교묘히 숨겨 두곤 한단다. 하 할머니는 모자간 재미있는 술병 찾기 숨바꼭질 게임을 즐길 정도로 정정하셨고 여유가 있었다. 할머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아들 내외를 통해 들으며 참 효성이 지극한 분들이라고 감탄했다.
하 할머니는 조사단과의 대화에서도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이러저러한 인생살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면담을 마치고 일어서려는 필자를 할머니가 갑자기 붙잡았다. “내가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이십니까? 말씀하십시오.” “나가다가 우리 며느리 보거들랑, 내가 며느리 칭찬하드란 말 꼭 해주고 가게.” 우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며느님께 할머님이 칭찬하드란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느님은 미소로 답했다. 백세가 돼도 저러한 여유, 그리고 이런저런 상황에서 슬기를 베푸는 당당한 모습으로 여전히 집안일을 주도하며, 큰방에 버티고 있는 백세 여장부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든다는 것의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데카르트가 ‘생각함으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선언한 명제에 대해 최근 뇌신경학자들은 ‘존재함으로 나는 생각한다’라고 반론한다. 사유와 지적 활동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존재한다면 지적 활동은 마땅히 그러하여야 할 바임을 부각하려는 뜻이다.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되고 단조로운 생활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새롭게 대응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임을 <대학(大學)>에서는 ‘날마다 새롭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반드시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지적 활동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생명이 유지되는 한 실제로 인간이 추진하는 모든 활동이 지적 판단과 평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탄하며, 가난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모든 감성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함께 유지돼야 한다.
정말 노화란 무엇이고 나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와 같은 감성과 지적 활동이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백세인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지적 건강이 장수에 갖는 의미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나이든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선한 자극과 동기부여를 주어야겠고 스스로는 물론 주변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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