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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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데 그러고 나면 후회가 돼요.” 한 여성의 사연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꺼낸 후 가슴이 더 답답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이 생겨 어딘가에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는데 막상 누군가에게 말하게 되면 괜히 말한 것 같아 후회스럽습니다. 제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서 후회되는 걸까요? 흔히 말하는 ‘답정너’인 건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말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까요? 막상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해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술가가 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미래를 잘 예측하는 능력보다 찾아온 이가 듣고픈 이야기를 해주는 기술이 더 중요하단 말이 있다. 오늘 사연의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말만 하면 돼’의 줄인 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말을 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잘 파악해 해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눌 때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이 주인 경우도 있지만, 오늘 사연처럼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는 정보나 조언을 얻는 것과 더불어 공감이나 정서적 지지를 받고픈 욕구도 같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론 정확한 정보나 판단보다는 공감이나 정서적 지지에 더 치중된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보면 “날씨도 춥고 나이도 들어가니 내 피부 많이 상했지”라고 중년의 아내가 남편에게 질문하는 경우다. 이 질문의 정답은 “아니. 처녀 때처럼 훌륭해”다. “정말이야”라고 아내가 되묻는다면 “정말이지. 좋은 피부 계속 유지되게 피부 관리 잘 받아요”까지 하면 완벽한 ‘답정너’의 완성이다. 정확히 판단해준다고 “젊을 때는 피부 정말 좋았는데”라고 말하면 야단만 맞게 된다.

왜 공감받고 싶어할까

왜 우리는 속내를 상대방과 나누고 공감을 받고 싶어 할까. 누군가에게 공감 받을 때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이 차 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외로움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정체성이 희박할 때 찾아오게 된다. 이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를 공감해주는 관계가 없다면 내 가치를 느끼는 자존감도 떨어지기 쉽고 외로움도 크게 찾아오게 된다. 극단적으로 흐르다 보면 삶을 빠르게 마감하려는 행동까지 나올 수 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의 전화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한 통의 공감 대화가 마음을 다시 사는 쪽으로 돌리는 힘을 갖고 있다. 1분의 공감 대화가 내 자신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 ‘답정너’의 심리가 내 마음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공감이란 소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서다. 행복감에 대한 연구를 보면 행복감을 유지시키는 첫째로 중요한 요소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하는가’다. 여기서 핵심은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고민하는 사연이 많은데, 정답은 털어놓는 여부가 아니라 그런 친구가 존재하느냐가 아닌가 싶다.

일 열심히 하는 직원보다 상사에게 듣기 좋은 말 잘하는 직원이 더 사랑받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론 균형이 깨진 행동이지만 사람 마음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내가 원하는 말만 하는 사람에게 일단 끌려가게 돼 있다. 내가 근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기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균형 잡힌 리더십을 갖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균형 잡힌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결국 본인한테도 해가 찾아올 수 있는데, “가장 믿던 부하 직원에게 배신당했다”고 속상해하는 상사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잘 맞추어주어 모든 걸 믿고 권한을 위임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에게 잘 공감해주던 부하 직원이 자신에게 분노란 공격 행동을 한 것이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그만큼 공감이라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어려운 심리 반응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온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상사는 자신을 잘 공감해주는 부하 직원이 좋다. 그래서 칭찬이나 임금 인상 등 나름대로 심리적, 경제적 보상도 준다. 그런데 사람은 다 자기가 소중하기에 계산을 하다 보면 차이가 날 때가 많다. 상사는 충분히 보상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부하 직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쓰는 감정적인 에너지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울화가 쌓이게 된다. 사람은 내가 마음을 준만큼 상대방에게 받지 못하면 섭섭함이 생기고 이것은 마음에 울화로 쌓이게 된다. 그것이 행동화되는 것이 분노·공격 반응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든 서로 공감을 잘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감정 에너지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잘 유지되는 공감 관계를 보면 내가 좀 더 희생하고 더 주겠다고 서로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보다 더 마음을 주어야 그 사람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가 나를 공감하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다’ 내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가지게 되면 에너지 균형이 깨지고 한쪽이 결핍을 느끼게 되기 쉽다. 따뜻한 공감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선 괜찮은 사람과 마음을 충분히 주고, 또 충분히 받는 연습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