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구 네패스 회장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반도체 시장이 ‘슈퍼 호황’을 맞고 있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반도체 시장은 다시 중흥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이에 국내 반도체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병구(72) 네패스 회장에게 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저력을 들어봤다.
AI 시대, 반도체 신화 쓴다
반도체가 명실 공히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9월 13일 발표한 ‘반도체의 수출 신화와 수출 경쟁력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1~8월 중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보다 52% 증가한 595억 달러를 기록했다. 앞으로 연말까지 월간 80억 달러(최근 3개월 평균)를 유지할 경우 연간 900억 달러를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수출이 ‘슈퍼 호황’을 맞이한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인공지능, 음성인식 서비스, 자율주행 시스템, 사물인터넷 등의 수요가 늘어나며 빅데이터용 서버나 클라우드 컴퓨팅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1세대로 손꼽히는 이병구 네패스 회장은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지금처럼 국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네패스는 1990년 설립돼 2000년 반도체사업부를 출범시키면서 독자적인 패키징 기술을 토대로 반도체 산업 전반에 걸쳐 높은 신뢰도를 쌓아 가고 있는 기업이다. 네패스의 성공에는 무엇보다 이 회장의 새로운 것에 대한 날카로운 호기심과 일에 대한 열정이 뒷받침 됐다.

그의 열정은 명예로운 훈장들로 꽃을 피웠다. 1995년 ‘500만 불 수출의 탑’ 수상을 시작으로 이듬해 1996년엔 ‘1000만 불 수출의 탑’ 달성, 2006년엔 벤처기업으로선 최고의 영광인 벤처기업대상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올해도 지난 8월 ‘한국 경영학회 강소기업가상’을 수상하는 등 지난 27년간 수십 회 넘게 굵직한 수상과 연구 업적을 남겼다.

올해 7월에는 지난해 미국 뉴로모픽 설계 업체와 기술협약을 통해 개발해 온 뉴로모픽 인공지능 칩을 공식 출시, 또다시 반도체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네패스가 그간 탄탄하게 성장한 배경으로 네패스 고유의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꼽는다. 실제로 이 회사 사원들은 서로 ‘슈퍼스타’라는 말로 인사하고, 아침에 출근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또한 네패스는 직장 동료,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자체 개발했는데 한 달에 이를 통해 약 3만 건의 감사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 같은 ‘그래티튜드(gratitude, 감사) 경영’ 문화는 네패스가 작은 벤처기업에서 직원 2000여 명의 중견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주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이 밖에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시 명예시민, 이화여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쉴 새 없이 뛰고 있는 이 회장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활동량이 굉장하십니다. 에너지의 원천은 뭔가요.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관리가 필요하죠. 그중 제가 최고로 꼽는 것은 끊임없는 ‘호기심’입니다. 지금도 해외에서 신기술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관련 내용을 바로바로 챙겨보고, 각종 조찬이나 세미나에 참석해 지식을 쌓는 편입니다. 종종 피곤할 때도 있죠. 하지만 급변하는 산업생태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만 (비즈니스) 감각을 유지할 수 있어요. 누구나 아는 무딘 지식보다는 최첨단 지식들을 통해 스스로를 감각적으로 날카롭게 다듬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이 도움이 돼요. 그 밖에 종교생활 등 영적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를 꿈꾸셨나요.
“전혀요. 사실 어린 시절 제 꿈은 (외교)대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대사가 되려면 말을 잘해야 될 것 같더라고요. 곧바로 중학교 1학년 때 웅변을 배우기 시작했죠. 웅변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어요. 물론, 지금은 그 꿈과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는 제가 그 꿈을 일부 실현했다고도 생각해요. 가령, 정치 대사는 아니지만 일종의 경제 대사는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컨퍼런스를 할 때마다 테이블에 각 나라 국기를 꽂고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럴 때마다 ‘아 어릴 적 꿈이 다른 형태로 이뤄졌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만큼 어린 시절 꿈이 알게 모르게 삶에 의식적으로 작용이 되는 것 같아요.”

현재 반도체 시장은 어떤가요.
“앞으로 최소 5년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호황일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반도체는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될 것입니다. 기존의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非)메모리 반도체로 나뉘었어요. 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후자는 미국 기업이 강세였죠. 생산은 대만이 주류였고요. 사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분야는 크게 대접받지 못했죠.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판도가 바뀐 거죠. 이제는 여러 가지 센서를 통해 입력된 정보들을 저장하는 메모리 능력이 필요해요. 그에 비해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회사는 한정돼 있죠.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일본 도시바, 미국 마이크론 정도예요. 그렇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죠. 물론,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돈을 들이붓고 있지만, 아직 인프라와 각종 장비들이 구축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점에서 국내 반도체 제조사엔 큰 호기가 온 거죠. 중장기적으로 이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패스는 독특한 기업문화로도 유명한대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처음부터 기업문화를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어떻게 회사를 경영해야 좋을지 고민은 늘 했죠. 기본적으로 회사란 사람이 모인 공동체잖아요. 공동체가 잘되려면 구성원마다 지닌 고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함께 있을 때 시너지를 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가치관’이 확립돼야 해요. 또한 그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분위기도 더해져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격이 없는 소통과 나눔이 필요해요. 사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고급 정보를 공유하기 꺼리죠. 자기만 공개해봐야 손해를 보는 느낌을 받잖아요. 그렇게 각자 자기만 소유하다 보면 결코 시너지가 나올 수 없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자세가 우리 회사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AI 시대, 반도체 신화 쓴다

27년간 사업하면서 힘든 일도 있으셨을 텐데요.

“많았죠.(웃음) 그런데 참 묘한 게 창의력은 늘 길이 막힐 때 나와요. 그만큼 절실해야 창조적인 발상들이 생기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저도 사업을 하면서 크게 위기를 겪어봤죠.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2000년도 같아요. 그때가 창업 10주년 때였는데 사업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신규 사업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죠. 그러다 찾은 사업이 TV 화면을 비추는 형광등 제조업이었죠. 그때만 해도 관련 기술이 일본에만 있었거든요.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큰돈을 투자해서 양산 설비 등을 다 갖췄는데 잘 안 됐어요. 당시 국내 광학기술자도 별로 없는 데다, 그 형광등을 만들려면 가느다란 튜브 속에 형광체를 코팅해야 하는데 그 코팅 기술이 부족했어요. 그 이후로도 몇 번 실패의 쓴 경험이 이어졌죠. 참 신기한 게 늘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듯이 그때는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어요. 그렇게 완전히 회사가 벼랑 끝에 몰리고, 속으로 ‘이제 회사 문을 닫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 절박한 순간 떠오른 게 반도체였어요. 네패스를 하기 전 LG반도체(주)에서 10여 년 이상 했던 일이기도 했고, 제가 잘 아는 분야였으니까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제조업을 시작한 거예요. 어쩌면 그때 제가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전 지금 반도체 말고, 케미컬 회사를 꾸리고 있었겠죠.(웃음)”

이번에 개발한 뉴로모픽 인공지능 칩 ‘NM500’은 어떤 제품인가요.
“일종의 인공지능 반도체죠. 뉴로모픽 인공지능 칩 ‘NM500’은 576개의 인공 뉴런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뉴로모픽 칩의 특징은 뉴런의 개수가 증가하더라도 응답 속도가 일정하며, 반응이 강한 뉴런만 활성화되고 낮은 반응을 보이는 뉴런은 자체적으로 경쟁에서 제외시키죠. 또 뉴로모픽 칩은 사람의 뇌와 같아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면 추가 학습을 실행하고, 잘못된 학습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칩을 활용해 이미지, 음성, 환경 등 모든 센서와 접목시켜 반도체 검사 장비, 자동차 전장, 로봇청소기, 가정용 인지센서, 의료 분야 등 다양한 앱에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반도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중견기업 오너로서 애로사항이 있으시다면요.
“우리나라에서 중견기업은 참 애매해요. 물론, 중견기업을 어떤 한 카테고리로 나눠서 제대로 육성해서 대기업으로 키워보려는 정부의 의도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줄 법적 보호가 딱히 없어요.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는 거죠. 가령,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매출 1조 원을 넘는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과 연계된 것이 현실이죠. 따라서 언제든 다양한 변수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는 구조거든요. 그저 기계적으로 매출에 따라 중견기업을 분류할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제도 도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제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입니다. 제1·2·3차 산업혁명보다 더 급격하게 삶의 모습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모든 분야에서 지금 이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금 인공지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도 그런 시대적 맥락과 맞닿아 있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진 이승재 기자

이병구 네패스 회장은…
1978년 LG반도체㈜ 입사
1990년 LG반도체㈜ 생산기술센터장
1991년~현재 네패스 그룹 대표이사 회장
2007년 한국정밀화학산업진흥회 회장
2013년~현재 충북경제포럼 회장
한국LED보급협회 부회장
2015년~현재 월드클래스300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