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관계를 아래 그림과 같이 도식화해 봤다. 필자는 경영자나 후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아무 설명 없이 이 그림을 보여주며 “승계를 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일까요” 하고 질문하곤 한다. 이때 대부분은 4번을 가장 바람직한 관계로 꼽는다. 사실 필자가 의도했던 답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먼저 각각의 그림이 어떤 관계를 뜻하는지 살펴보자. ①번은 부모와 자녀 간 의견 충돌이 잦고 갈등이 심한 경우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이 하는 일을 못마땅해 하거나 자녀가 부모세대의 경영 방식 등에 불만을 갖는 등 서로 의견 충돌이 잦은 관계다. ②번은 세대 간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서로를 외면하는 경우다. ①번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②번으로 전환된다. ③번은 후계자의 성장에 따라 적정한 권한이 부여되지 못해서 후계자가 부모의 그늘 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크게 성공한 경영자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성공한 부모 눈에는 자녀가 미숙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승계 초기 단계에서는 ③번의 관계가 돼야 한다. 그런데 자녀가 중견간부가 돼도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한 경우 아버지가 90세가 넘고 자녀가 60대로 자녀세대가 승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까지도 실권을 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④번은 세대 간 소통이 잘되고 세대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관계다. 이 경우 대부분 기업 경영에 대한 경영철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기업 경영의 청사진이 분명하다. 물론 그 바탕에서 세대 간 상호 신뢰가 깔려 있다. 만약 승계 과정에서 ①~③번 관계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후계자가 능력 있는 경영자로 성장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모의 경영철학이나 노하우, 암묵지를 전수하는 데도 차질이 생긴다.
극단적인 경우 후계자가 회사 일에 흥미를 잃고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릴레이 도중 바통을 떨어뜨려 경주에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실제 승계를 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①~③번 관계가 의외로 많다. 가령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부모와 자녀를 각각 만나보면 대부분 양쪽이 동시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물론 후계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훨씬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①~③번 관계를 ④번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까. 강점을 키워주는 코치가 되라
리더십 측면에서 본다면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기업을 일군 성공한 부모의 눈에는 자녀들의 장점이나 강점보다는 단점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단점만 나무라면 후계자가 성장할 수 없다. 일단 성품이나 자질을 고려해 후계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해 회사 일을 시작했다면, 부모세대는 후계자의 리더십 개발을 돕는 코치가 돼야 한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긍정심리학 연구원들은 2개의 볼링 팀을 선정해 그들의 경기 모습을 여러 차례 녹화했다. 녹화테이프를 보며 경기력을 향상시킬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팀의 녹화테이프를 다르게 편집했다. 한 팀은 선수들이 공을 도랑에 빠뜨리는 등 실수하는 모습과 스트라이크를 하거나 경기를 잘했을 때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리고 다른 한 팀은 실수나 잘못하는 모습은 삭제하고 경기를 잘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훈련을 받은 두 팀 모두 이후 경기력이 향상됐다.
그렇다면 두 팀 중 어느 팀의 경기력이 더 많이 향상됐을까.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르게 강점과 단점을 모두 다 보여준 팀보다 장점만을 보여준 팀의 성적이 훨씬 더 많이 향상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단점을 본 선수들은 장점을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단점을 개선해서 더 완벽한 선수가 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단점을 계속 떠올렸고 그것이 오히려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 장점만 본 선수들은 자신들이 경기를 잘하던 모습만을 떠올리며 그때와 같은 느낌이나 행동을 반복하려고 노력하면서 단점도 자연스럽게 개선된 것이다.
과거 리더십 훈련이라고 하면 단점을 개선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부하들의 강점을 강화시키려는 리더와 약점을 보완해주려는 리더를 비교해보았을 때 부하직원들의 동기부여 정도는 전자가 73%, 후자가 9%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이와 같이 최근 다양한 연구를 통해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강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밝혀졌다.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낸 스포츠 선수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코치가 있다. 이와 같이 창업자는 후계자의 코치가 돼야 한다. 그리고 후계자가 리더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보완해줄 인적자원이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후계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후계자 교육은 부모들이 직접 가르치거나 훈련시키는 것도 좋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스스로 코치의 역할이 어려운 경우, 외부 전문가와 연계한다면 후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후계자에게 자사와 후계자를 잘 아는 다른 회사의 성공한 경영자를 멘토로 둔다면 그들로부터 이상적인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경영의 청사진을 일치시켜라
세대 간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규모나 산업 심지어 국가와도 관계없이 그 패턴이 매우 유사하다. 자신이 해 오던 방식을 보존하려는 부모세대와 기술이나 제품 개발, 생산시설 확충 등을 통해 변화를 꿈꾸는 자녀세대 간의 대립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를 1만 마리 정도를 키우는 한 농가는 지난해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을 겨우 달래 양돈업을 이어받기로 했지만 부모의 걱정은 여전하다. “양돈장에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해 돼지 입식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아들과 “지금 시설로도 충분하며 무모한 투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아버지의 의견 충돌로 부자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 갈등의 본질은 변화(change)냐 보존(preserve)이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보존을 주장하는 부모세대와 변화를 추구하는 자녀세대 중 과연 누구 말이 옳을까?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에서 “핵심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을 추구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공적인 영속기업은 핵심 가치와 기업의 목적을 철저히 추종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크고 담대한 목표를 세우고 많은 것을 시도해 그중 잘되는 것을 취해 발전시키고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결국 보존과 변화 모두 중요하지만 동시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속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어라”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킬 것은 무엇이고 바꿀 것은 무엇인가. 왼쪽 그림과 같이 핵심 가치와 기업의 목적은 지키고 보존해야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환경에 맞게 지속적으로 바꾸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기업의 목적 즉,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가’와 같은 기업이념 등이 체계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기업의 운영 방식이나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한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 안에 담긴 철학이나 경험, 암묵지 등을 배우려 하기보다는 잔소리로 듣게 된다. 또한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다를 경우 매사에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이 심화된다. 결국 갈등은 세대 간 공유된 기업경영의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100년 이상 가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대를 이어 지속 가능한 기업을 원한다면 모두를 한 방향으로 이끌 경영설계도를 작성해야 한다.
대를 이어 물려줄 견고한 집을 지으려면 무엇보다도 지반을 잘 닦아야 하는데, 경영 설계에 있어 지반에 해당되는 것이 핵심 가치와 기업이념이다. 앞서 얘기한 ‘지켜야 할 것’ 즉, 보존해야 하는 것이 이 부분이다.
이것은 창업자의 철학과 가치관에서 비롯돼 대를 이어 유지되고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미래의 꿈과 5~10년 이후의 비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비전을 세워 기업을 성장시켜 가는 것이다. 이는 ‘바꿔야 하는 것’ 즉, 변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변화와 보존은 함께 균형을 맞추어 공존한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