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테 하는 배려 반만 내게 하면 업고 다니겠어요.”
“내가 무거운 거 들고 다니는 것은 무심히 보면서 친구 부인이 조금이라도 무거워 보이면 자기가 냉큼 들어주는 걸 보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흔하게 들어본 불평이다. 아니면 어제 당신이 겪은 일인지도 모른다. 참 이상하게도 커플이 되면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냉랭해진다. 긴장감 넘치는 남남이었다가 그야말로 아군인 커플이 되면 더욱 위해주고, 돌봐주는 게 맞건만 왜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그리 무심해지는가?
커플 상담을 하면서 점점 더 ‘결혼하고 나서 사랑하기는 정말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단 상대를 결혼 안에, 혹은 안정된 두 사람만의 공간에 묶이고 나면 그다음은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 생각하는 게 함정이다. 관계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돌보지 않으면 메마른다. 사랑이란 감정은 고여 있거나 머물러 있는 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지만 사랑은 변하고 흘러가는 거다. 연애를 할 때는 그야말로 세계의 중심이 상대방에게 가 있기 때문에, 또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둘 사이에 사랑이 안전한가’를 늘 체크한다.
그러다 둘에게 남들이 인정하는 울타리가 쳐지면 그때부터는 눈을 상대로부터 밖으로 돌린다. 둘만 살 수 없는 인생이니 남과의 관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순위는 늘 내 파트너여야 한다.
◆사랑은 관심을 만들어낸다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늘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하게 된다. 역지사지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뜻이다. ‘내가 그 입장이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를 잠시 생각하기만 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부부관계에 가장 도움이 될 말이다. 남의 입장이 돼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연습을 자주 하고, 관계를 점검하는 일은 너무나 필요하다.
“어제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가 너무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더니 손가락 하나 없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말이야 맞지만 얼마나 속상하든지, 그런데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의사 마음에 드네’라면서 이죽거리는 거예요. ‘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구나’ 생각하니 내가 한심해지고 그와 산다는 게 쓸쓸하대요.”
얼마 전 어느 중년 여성에게 들은 말이다. 이때 남편이 ‘역지사지’를 했으면 아내가 얼마나 속상했을지에 대해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한 편이 돼서 의사를 욕하든지 아내를 위로했다면 그러잖아도 아픈 아내는 얼마나 남편이 든든하고 고마웠을까.
우리는 남이 내게 친절을 베푼다든지 배려를 하면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파트너가 자기에게 하는 배려나 친절에는 당연시 여기고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심해서이기도 하고 아마 표현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이미 알 것이라는 믿음(?)에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별로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플에게 필요한 건 ‘And you?’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라서 내가 남에게 준 것을 그에게 내가 받은 것보다 항상 두 배로 계산한다. 그래서 내가 배려를 한 것은 그가 내게 한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정도의 친절에는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되갚음은 항상 뒤로 밀리는 게 문제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상심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늘 높은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반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항상 ‘우선순위’, ‘특별한 존재’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기에 실망과 상처가 더욱 깊다.
또 커플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And you?”다. 그것은 “너는 어떠냐?”고 되묻는 것이다. “식사했어요?”라고 묻는 질문에 “응. 했어”라고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응. 나는 했는데 당신은?”이라고 묻는 것이 ‘And you?’다.
출장 때문에 여러 날 못 보았을 때 “잘 지내요?”라고 물어보면 “응. 잘 지내고 있어요. 무척 바쁘네”라고만 대답하는 게 아니라 그 대답과 함께 “그런데 당신은 잘 지내?”라고 되돌려 물어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무뚝뚝한 것은 장점이 아니다. 상대를 아주 힘들게 한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걱정해주면 상대에게도 그 마음을 돌려주는 것이 예의이고 애정이고 관심이다. 사랑은 관심을 만들어낸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당신의 사랑 전선에는 ‘노란불’의 경계경보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게 자신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로를 무시하고 살게 되고 두 사람을 잇는 관계의 끈은 점점 가늘어진다. 부부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도록 더욱 친절의 장작을 아끼지 않아야 하며, 감사의 표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스스로가 늘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친절하기 어렵다. 또 존중하고 배려하기는 더욱 어렵다. 행위의 섹스에서조차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성감대는 ‘내가 생각하는 상대의 성적 이미지’인데 이것은 결국 ‘내가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나?’에서 결정된다. 내가 상대를 좋아할수록 상대는 내게 섹시하고, 그 존재로 감사하고 존중하며 배려와 친절을 아끼지 않게 된다. 배려와 친절을 받게 되면 상대의 나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진다.
이런 감정을 결혼 안에서 죽이지 않으려면 내가 상대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을 자주 일깨워야 한다. 상대의 장점, 상대방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점 등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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