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담이 아니다. 중국에는 “논마지기도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고, 미국에서는 “셔츠바람으로 시작해서 3대 만에 셔츠바람으로”라는 속담이 있다. 1세대는 외투조차 못 입을 만큼 가난한 형편에서 시작해 혼신의 노력으로 부를 이루지만 결국 3대에 가면 부를 잃고 다시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공통적으로 생긴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족 재산 지켜 갈 사회적 자본을 물려줘라
한 연구에 따르면 한 가족이 3대까지 부를 유지하는 비율이 고작 13% 정도밖에 안 된다. 더구나 이 비율이 어느 나라에서나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각국에서 발견되는 3세대 함정에 관한 속담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족기업 연구의 대가인 제임스 휴즈는 ‘부자가 3대를 못 가는’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힘든 일만 하면서 검소하게 살았던 1세대가 고생 고생해서 마침내 큰 재산을 모았다. 2세대는 대학을 나와 유행하는 비싼 옷을 입고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시골 부동산에 투자도 해 마침내 상류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3세대는 어릴 때부터 사치스럽게 자라서 일도 거의 하지 않고 돈만 물 쓰듯 하다가 마침내 물려받은 재산을 날려 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이것이 이 속담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3단계 공식이다. 즉, 1단계는 재산 형성기이고 2단계는 안정 또는 현상 유지기, 3단계는 탕진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순환 단계와 같다. 물리학에 ‘엔트로피(entropy) 법칙’이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가 점점 증가한다는 원리다. 원상 그대로 보존되는 것은 없다. 깨끗한 집이라도 아무도 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져 흉가가 된다.

반면, 사람들이 살면서 쓸고 닦고 가꾸면 수백 년 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사회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나, 그냥 놔두면 무질서가 증가해 결국은 효율이 떨어진다. 이는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과 같은 보편타당한 자연의 법칙이다. 우리 삶도 인위적인 의지가 부여되지 않으면 삶이 흐트러지고 엔트로피가 높아져 결국 무질서하게 된다. 그러므로 엔트로피를 낮추고 내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내부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대를 이어 자산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까.

가족 재산에 대한 새로운 관점
일반적으로 ‘부(wealth)’라고 하면 사람들은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 등 유형 자산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자산관리나 상속 계획이라고 하면 대부분 투자 수익이나 절세 등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대를 이어 부를 유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최근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가족의 재산은 경제적 자본(economic capital)을 넘어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자본이 부를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은 유기적으로 결합돼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대를 이어 자산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자본이 통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경제적 자본이란 기존 자산관리의 대상이 되던 금융 자산, 부동산, 가족이 보유한 사업 등과 같은 유형 자산으로, 주로 투자 수익, 절세 전략 등과 관련이 되는 자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적 자본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식은 가장 중요한 인적 자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지식은 더 이상 최고의 인적 자산은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며 지식 못지않게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품, 도덕성과 윤리의식 등의 역할이 점차로 커지고 있다.

예컨대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 사건이나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소위 ‘갑질 사건’들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일들은 모두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품, 도덕성 등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만약 자녀들이 이런 종류의 인적 자본에 취약하다면 대를 이어 재산을 지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인성이나 품행, 도덕성 등을 잘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재산 지켜 갈 사회적 자본을 물려줘라
해외 성공한 기업가들은 은퇴 후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기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자선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 그들은 자선활동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삶뿐 아니라 자기 가족의 삶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후손들이 좋은 가치관과 인품, 도덕성 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이제까지 자산관리의 대상이었던 높은 투자 수익률과 절세 전략만으로는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속담을 뛰어 넘어설 수 없다. 결국 가족의 인적 자본이 커지면 대를 이어 자산이 보존될 확률이 높아지고, 인적 자본이 취약하면 재산을 지킬 가능성이 낮아진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사회적 자본
뉴욕 맨해튼에는 다이아몬드 도매상이 밀집한 거리가 있는데,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절반가량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이 지역에는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전통의상을 입은 유대인들이다. 그들이 이곳 다이아몬드 유통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함께 유대교 회당에 다니고, 유대인들 간 결혼을 통해 가족관계로 맺어져 서로 가깝고 특히 종교적 결속이 강하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신뢰’다.
다이아몬드가 도매로 거래되려면 딜러들이 구매 전에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가서 품질을 확인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고가의 다이아몬드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계약서나 보험도 없이 단지 신용으로 오간다. 그들에게는 신용이 보험인 셈이다.

그들 사이에서는 거래가 빠르고 쉽게 일어난다. 만일 신뢰가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오갈 때마다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보험을 들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거래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 유대인들이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신뢰관계에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콜먼은 신뢰를 자본의 한 형태로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다. <트러스트>의 저자 후쿠야마도 신뢰를 사회적 자본과 동일시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 간에 서로 신뢰하고 협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신뢰가 높은 사회는 거래가 안정되므로 상업이 발달한다. 또한 신뢰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즉 신뢰는 국가나 사회, 기업, 그리고 개인 등 모든 차원에서 자원으로서 큰 영향력을 갖는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 서로 신뢰하고 협조적인 가족들은 자산을 지킬 가능성이 높지만, 불신과 분쟁으로 인해 사회적 자본이 파괴되면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자산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미국의 윌리엄 그룹은 1975년에서 2001년 사이 상속을 통해 유산을 보유한 1000가구를 관찰했다. 관찰 결과 전체 가구의 70%인 700가구가 상속에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패한 700가구의 실패 요인의 60%는 가족 내 신뢰와 대화의 단절에 기인한다.

25%는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책임감을 준비시키는 데 실패했다. 세금이나 법적 문제 등 다른 원인으로 실패한 경우는 단지 15%에 불과했다. 결국 재산 상속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족들의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제적 자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그 밑에서 부를 형성하는 것인데, 만일 이것이 깨지면 경제적 자본은 가라앉게 된다. 우리는 수십억 또는 수백억 원의 복권을 타고서도 몇 년 후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적 자본이나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상태에서 경제적 자본이 주어지면 지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녀들에게 부를 물려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투자수익률이나 절세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녀들의 바른 가치관과 인성, 윤리의식 등 인적 자본과 가족들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 협력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 즉, 가족들의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가족 간 신뢰는 가족의 자산이 되고, 가족 간 부정적 감정을 갖거나 함께 일하면서 갈등이 확대된다면 이런 가족관계는 가족의 부채가 된다.

가족 간 신뢰를 구축하는 법
그렇다면 가족 간 신뢰를 높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족 간의 사회적 자본을 높이는 검증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들과 미래 꿈과 비전을 공유하라. 만일 기업을 경영하는 가족들이 기업의 성공에 대해 같은 수준의 관심과 비전을 갖는다면 강한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화 과정을 배우게 되는데, 응집력이 강한 가족의 경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부모의 바람이나 자녀의 미래 계획을 토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만약 가족들이 함께 가족 공동의 꿈과 비전을 세울 수 있다면 가족 간의 신뢰와 결속은 더욱 강화된다.

둘째, 철학이나 핵심 가치를 계승하라. 우리나라에서 400년 동안 부를 유지한 경주 최 부자의 성공 비결은 바로 그 가문에서 계승되고 지켜 온 육훈(六訓: 여섯 가지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에 있다. 이처럼 가족들이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계승한다는 것은 가족들의 정신적 결속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기업에는 경영자의 철학과 가치 체계를 확고히 해서 기업의 정신을 통합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가족의 경우에는 가훈 등을 마련해 가족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도록 한다면 갈등을 줄이고 신뢰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셋째, 가족 간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라.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가족 간 정직하게 어떤 문제도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해외의 성공한 가족들은 대부분 전 가족이 참여하는 가족회의를 정례화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가족들 간 충분한 토의를 통해 결정한다. 특히, 가족이 합의하는 가족규정을 마련하는 경우 가족 간의 갈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가족구성원 간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족여행이나 가족모임 등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오랜 시간 꾸준히 반복하라. 신뢰는 오래 시간 투자된 관계로부터 형성되며, 신뢰를 쌓는 데는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앞서 소개한 세 가지 방식을 오랜 시간 꾸준히 반복해 가족의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