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 제작실에는 목재와 가죽,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다. 공간 소개를 부탁하니 “이곳에서 90% 이상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구비해 놓고, 자재가 들어오면 가공부터 시작해 재단하고 붙이고 마감까지 해서 배송을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시범을 보이듯 기다란 자재 하나를 들어 올려 장비 사이에 끼우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나무를 다듬는다는 것은 자칫하는 순간 다칠 수도 있는 작업이라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특히 동그란 기둥을 깎는 목선반 작업은 유독 무아지경에 빠지기 좋아요. 머리가 복잡하다가도 나무가 도는 곳에 칼이 닿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 재미와 몰입에서 일의 의미 찾아
이곳의 가구는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호기심 연구소(큐리어스 랩)라는 타이틀처럼 ‘규정되지 않은 가구’를 만들고 싶은 신 대표는 매번 새로운 디자인 실험에 도전한다. 홀로 모든 과정을 이끄는 1인 시스템으로 작업 기간은 꽤 긴 편이다. 짧으면 3주에서 길면 5주 정도로, 일이 몰릴 땐 한 달의 반 이상을 공방에서 먹고 잔다.
“바쁠 때는 한 달 내내 집에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하고 또 없을 땐 아주 놀기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일을 하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치 않아요. 지인들이 공방에 와서 가구 만드는 일이 어떤지 물어보면 ‘삶은 즐겁고, 생활은 어렵다’ 이렇게 말해줘요.”
계단을 따라 2층 사무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문을 받고, 디자인을 하고 손님을 맞거나 쉬기도 하는 공간이다. 책상 앞쪽으로 가운데 자리가 푹 꺼져 있는 3인용 가죽 소파가 있다. ‘기계와 머리는 굴려야 산다’, ‘나에겐 빚이 있다. 나가라 일터로’라는 바른 생활 포스터는 홀로 일하는 자신을 독려하는 문구다. 주변에 크고 작은 도마, 여러 모양의 롱 보드, 집 모양의 연필깎이 등 직접 만든 소품들이 보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문화와 취향 이론의 교과서 격인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 ‘만드는 일이 곧 생각의 과정이다’라고 강조한 리처드 세넷의 <장인>,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하고 절제된 미감의 미국 가구 셰이커 퍼니처(shaker furniture)에 관한 책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밖에 이탈리아어로 된 서적들도 꽂혀 있다.
“목수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그는 한때 럭셔리 산업의 최전방인 요트 산업에 몸담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명문 디자인 학교인 IED (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운송기기 디자인을 공부하고, 밀라노의 도무스아카데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토리노의 IF디자인에서 요트 디자이너로 활약한 바 있다. 귀국 후 한 대학의 겸임 교수로 일하기도 했던 그가 가구 디자이너이자 목수로 변신한 이유는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서 일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면서다.
그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요트 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외부적 요인으로 번번이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상황에 끌려다니는 현실에 지쳐 있을 당시 알게 된 가구 제작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내 몸 하나 부지런히 놀리면 맞출 수 있는 일”이었다.
가구를 만드는 일은 디자인을 그릴 뿐 아니라 직접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의 과정이다. 목수는 그에게 고집스런 장인정신, 그리고 못다 피운 내면의 디자인 열정을 일깨우는 일이었다. 그는 디자인에서부터 배송까지 A to Z를 자기 손으로 끌어가고 일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나무를 만지만 동안,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재미와 몰입을 경험하며 더욱 일에 빠져들어갔다. 이와 같은 진심이 통했는지 그가 만든 가구를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었다.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빛나는 성과도 나왔다. 맞춤 제작 가구로서의 차별성은 기술(기능)보다 손의 감각을 담은 예술(감동)에 있다.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작업 방식이 목수의 장인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면, 수익 창출을 위한 운영을 위해 도입한 방법은 '작업장 공유'다.
큐리어스 랩은 1인 공방이면서 동시에 회원들이 함께 꾸려 가는 회원제 공방 클래스로 운영된다. 회비를 내고 작업장을 나눠 쓰는 방식이다. 이곳에는 가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방을 드나들며 목공을 배우고 실습한다. 회원 중에는 이미 전업을 했거나 전업을 할 계획인 이들이 적지 않다. 현직 대기업 패션 디자이너인 한 회원은 최근 반려동물 전용가구를 만들면서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1인 공방의 실험정신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바로 협업이다. 신 대표는 큐리어스 랩을 운영하면서 또 하나의 브랜드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는 금속 디자이너인 이상민 작가와 함께 만들고 이끄는 가구 브랜드다. 2013년 ‘공예트렌드페어’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국제가구박람회, 중국 국제가구박람회 등 국내외 전시에 출품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반경을 넓히는 중이다.
“이상민 작가는 금속으로 조명 작업을 많이 하던 친구인데 갤러리 큐레이터인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책상에 조명을 올려놓고 보니 조합이 참신해서 그 후로 공동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시너지를 내면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선 금속과 나무의 조합을 풀어가는 데 좀 더 적극적인 데 비해 한국은 원목 가구에 철제 다리를 씌우는 정도로 소극적이었거든요. 조금 더 적극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는 미니멀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가구를 지향한다. 신 대표가 “제 디자인 감성의 또 다른 자아다”라고 말할 정도로 큐리어스 랩과는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낸다. 나무와 금속이 가진 장점이 다르고 하나의 아이템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이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통념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한다. “투박하지 않은 다리를 만들어보자고 할 때, 나무의 한계 때문에 얇게 만들 수 없거든요. 이럴 때 일정 이상의 경도를 가진 금속을 가져오면 느낌이 나오는 것이죠. 서로 생각하는 게 다르고, 또 작가들이 흔히 가지는 고집 없이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이다 보니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다양한 작업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그니처 모델이 된 조명이 있는 책상의 경우, 가구 자체로도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데서 접점을 찾았다. 책상은 벽에 붙어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벽을 등지고 앉거나 집 한가운데 두고 쓸 수 있는 아트 오브제이자 실용적인 가구를 콘셉트로 삼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부하거나 일만 하는 책상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조명이 있지만 스탠드가 아닌 무드 등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죠. 또 테이블은 예쁜 것을 샀지만 스탠드를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일체형으로 만들어 버리면 이 또한 해결되겠다 싶었습니다.”
신 대표는 패브릭, 가죽 등 다른 소재를 사용할 때에도 주로 협업 방식을 선호한다. 전시가 많은 크래프트 브로 컴퍼니의 디자인은 고유의 넘버가 있지만, 100% 주문 제작인 큐리어스 랩의 가구는 고정되지 않은 유연한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 “주문 제작이 재밌는 건 반복되는 작업이 거의 없어서죠. 어떤 스타일을 규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오래 두고 써도 질리지 않을 만한 가구, 시중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가구를 만들자는 원칙하에 열심히, 정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작업할 때 짜증을 내면 가구에 짜증이 담길까 봐 늘 행복하게 작업하려고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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