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은영 문학박사·서울하우스 편집장] 새벽을 가장 먼저 알리는 닭은 예로부터 태양과 희망을 뜻하는 길조로 여겨지며 신성시됐다. 또한 달걀은 풍요와 다산, 생명과 부활을 의미한다.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닭들의 수난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전국을 휩쓴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살처분 된 닭이 3000만 마리가 넘는다. 달걀 값은 두 배 이상 폭등해 급기야 수입까지 하는 등 사상 초유의 달걀 파동을 빚고 있다. 달걀은 서민들이 고기 대신 싼 값에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식품이다. 하지만 최근 치솟은 달걀 값을 보면 예전에 달걀이 비싸서 서민이 쉽게 먹지 못했던 시절의 일화들이 떠오른다.
게오르그 플레겔, 달걀부침이 있는 간식, 1600년대, 아샤펜부르크 국립회화관
게오르그 플레겔, 달걀부침이 있는 간식, 1600년대, 아샤펜부르크 국립회화관
미술작품 속 달걀이 주는 교훈
바로크 시대의 미술작품에서는 귀한 달걀이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일상의 장면 속에 나타나곤 했다. 독일 화가 게오르그 플레겔(Georg Flegel)은 과일, 꽃, 음식이 놓인 식탁 정물화의 전문가였다. 플레겔의 그림 <달걀부침이 있는 간식>에는 고급 도자기 접시에 달걀프라이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고 주위에는 커다란 빵과 포도주가 든 유리잔, 활짝 핀 카네이션이 꽂힌 유리병이 보인다. 부유층의 간식 테이블을 그린 듯한 이 그림은 신중하게 표현된 사물 하나하나가 보는 이의 눈과 코와 침샘을 자극하며 뿌리칠 수 없는 감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 속에는 감각적 즐거움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빵과 포도주는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가 나눠준 음식으로 예수의 살과 피, 즉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상징이다. 카네이션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땅에서 처음 피어났다는 전설이 있고 톱니 모양의 꽃잎과 뾰족한 잎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된다. 이런 상징들처럼 맨 앞에 놓인 달걀의 의미도 예사롭지 않다. 알은 형체가 불확실한 유동적인 물질에서 새라는 동물이 형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달걀이 생명의 탄생이나 부활을 나타내는 의미 깊은 대상이다. 또한 요리된 달걀은 고기 대신으로, 다른 생명의 희생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달걀을 부치는 노파, 1618년,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
디에고 벨라스케스, 달걀을 부치는 노파, 1618년,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도 달걀을 소재로 상징적인 그림을 그렸다. <달걀을 부치는 노파>라는 그림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노파와 심부름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달걀은 귀한 음식이므로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요리하는 중이다. 소년의 손에는 포도주병과 멜론이 들려 있는데 그것도 손님에게 가져갈 것이다.
17세기 세비야 지방에서는 이처럼 소박한 정물을 한두 명의 인물과 함께 단순하게 배치한 보데곤(bodegón) 회화라는 양식이 유행했다. 주로 부엌이나 선술집, 식당 같은 일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그 속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통해 교훈을 전달한다.
<달걀을 부치는 노파>에 나오는 늙은 여인은 아마도 하녀로서 평생을 보냈을 테지만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밝은 표정을 짓는 꼿꼿한 태도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한 손에 온전한 흰 달걀을 쥐고 소년에게 보여준다. 늙고 죽는 인생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알처럼 새로운 탄생이 준비돼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요리하려고 깨뜨린 달걀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가깝고, 깨지 않은 달걀은 부활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소년이 들고 있는 붉은 포도주와 멜론의 과즙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멜론에 묶인 십자형 끈이 예수의 수난을 더욱 강조한다.
한편으로 멜론의 형태는 지구본을 닮았는데, 스페인이 적극 지원했던 해상 탐험과 지리상의 발견을 연상시킨다. 바로 이곳 세비야에서 콜럼버스는 인도를 향해 출발하지 않았던가! 그림 속의 달걀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린다면 과도한 상상일까?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을 때 콜럼버스가 달걀껍질 한쪽을 깨뜨려 세웠다는 유명한 일화는 발상의 전환을 뜻하는 비유로 널리 사용된다.
요아킴 베켈라르의 제자, 달걀 바구니를 든 소녀, 17세기 전반,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요아킴 베켈라르의 제자, 달걀 바구니를 든 소녀, 17세기 전반,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젊은 여성과 연결된 달걀의 의미
달걀이 젊은 여성과 연결되면 또 다른 상징적 의미를 띤다. 17세기 전반 북유럽 플랑드르 지방에서 나온 <달걀 바구니를 든 소녀>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에서 젊은 여인은 하얀 달걀이 가득 담긴 커다란 바구니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반대편에는 알을 낳은 암탉이 웅크리고 앉아 마치 동업자처럼 지키고 있다. 당시에 닭을 키우는 일은 여자들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생산활동으로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여기서 달걀은 경제적 생산뿐 아니라 생명의 출산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풍부한 달걀은 풍요와 다산을 뜻하며 희고 온전한 달걀은 여성의 순결을 의미한다. 즉 달걀 바구니와 함께 있는 소녀는 이만한 생산성을 지닌 건강한 여성이라는 뜻이다.
그림 속 오른쪽 아래에는 깨진 달걀이 하나 보인다. 깨진 달걀은 상품으로서 실패한 불량품인 동시에 여성의 잃어버린 정절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여성의 건강미와 순수함을 제시하는 동시에 순결이 깨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그림 속 여인은 뭇 남성을 향해 성적인 유혹을 던지는 것이다.
생명을 배태한 달걀을 깨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생명을 살찌우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면 달걀은 깨져야만 하는 법, 그 적절한 때가 중요하다.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정유년 벽두부터 우리는 새로운 탄생을 위해 진통을 겪고 있다. 그 노력이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묵은 껍질을 벗고 건강한 생명을 맞이하는 과정이 되기를 새해 소망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