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부여된 상징적 의미
고양이가 사람과 같이 살게 된 것은 선사시대부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숭상하는 풍습이 있었다. 곡식을 먹어 치우는 골칫거리 쥐들을 쫓아주니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풍요와 다산, 보호의 여신 바스테트는 고양이 머리를 가진 인물 혹은 고양이 자체로 표현됐다. 고양이 공동묘지를 조성했으며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기도 했다.
고대사회에서 높은 대우를 받던 고양이는 중세 기독교 시대에 들어와 위상이 추락한다. 중세 사람들은 모든 동물에게 상징적 의미를 붙였는데, 고양이는 특히 이교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제멋대로 집을 드나드는 고양이의 행실은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교도들의 행동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행위는 마치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희롱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악마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마녀들도 고양이로 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교회에 대한 절대 복종과 충성을 중시한 기독교 사회에서 야생동물과 가축의 중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의 속성은 좋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쥐를 잡는 사냥꾼으로서 쓸모가 있었다. 12세기 후반에 나온 <욥기 주해서>의 한 페이지에는 고양이가 쥐를 물고 그 고양이를 또 개가 무는 장면이 있다. 마치 서열관계를 나타내는 듯한 이 그림은 고양이의 사냥 능력은 인정하되 방종과 교만을 징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양이를 이교도나 악마와 연결하는 시각은 근세 이후 점차 시들해졌지만, 고양이가 뭔가 불길한 기운을 풍긴다는 관념은 미신처럼 오래 퍼져 있었다. 완전히 길들일 수 없는 고양이는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바로크나 계몽주의 시대의 그림을 보면, 고양이가 식품을 노리고 있거나 몰래 훔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상반된 본능이 공존하는 서늘한 매력
하지만 사람 근처에 머물면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고양이의 독립심에는 묘한 매력이 담겨 있다. 자그마한 몸집과 부드러운 털, 귀여운 자태로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어느 틈엔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야수 같은 공격성을 발휘한다. 이처럼 상반된 본성을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는 고양이는 근대의 내향적인 지식인이 가장 선호한 동물이었다. 이를테면 에드거 앨런 포는 고양이의 괴이하고 영묘함을 소재로 <검은 고양이>라는 추리소설을 썼으며, 포를 재발견한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에 ‘고양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이나 수록했다. 거기서 시인은 고양이의 차갑게 빛나는 황홀한 눈동자에 빠져들고 탄력 있는 몸을 쓰다듬으며 짜릿한 쾌감에 도취한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깊고 차가운, 투창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떠올리며 그녀의 몸을 감도는 야릇한 분위기와 위험한 향기를 느낀다. 보들레르에게 고양이의 양면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퇴폐와 관능과 생명력이 뒤섞인 여성의 치명적인 매력과 같은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지식인 사이에 퍼진 이와 같은 데카당한 분위기에서 파리의 몽마르트르 거리에는 ‘검은 고양이’라는 나이트클럽이 등장했다. 그곳은 술을 마시며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최초의 근대적 카바레였다. 카바레의 공연을 알리는 테오필 스텡랑(Théophile Steinlen)의 선전용 포스터는 상표인 검은 고양이를 부각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양이의 도도하고 당당한 모습은 남자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자의 관능적이고 독립적인 매력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또한 신비한 비밀을 꿰뚫고자 자유롭게 뜻을 펼치는 능동적인 지식인과 예술가의 모습을 닮았다. 한편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고양이는 일상의 친밀한 동물로 사랑을 받았다. ‘고양이 화가’로 불린 영국의 루이스 웨인(Louis Wain)은 동화책이나 잡지의 삽화로 고양이를 자주 그렸다. 둥근 얼굴과 큰 눈동자, 통통한 몸집이 아주 귀여운 그의 고양이는 식탁을 차리고 자동차를 타며 글을 쓰고 술, 담배도 즐긴다.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하는 고양이들은 표정이나 행동으로 생각과 감정을 더욱 솔직히 드러낸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웨인의 고양이 그림은 20세기 초에 매년 화집으로 발행돼 수집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고양이는 애완동물을 넘어 반려동물로서 친구나 가족처럼 여겨진다. 최근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져 고양이 기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돌보는 소위 ‘캣맘’들도 서울에만 수만 명이다. ‘고양이 트렌드’라는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현대인이 고양이와 비슷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생활을 중시하고 간섭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특징은 독립적이고 혼자만의 시간도 잘 보내는 고양이의 성격과 비슷하다. 또한 싱글족, 딩크족이 증가하고 자폐, 우울증, 치매와 같은 질병이 증가하면서 고양이는 심리적 안정과 치유,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동반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양이의 ‘집사’라고 여긴다. 사람이 고양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부린다는 뜻에서다. 인간이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동물의 입장을 맞춰주고 기꺼이 그 시중을 들게 된 것이다. 그 마력 같은 신기한 능력으로 고양이는 오늘날에도 여지없이 사람들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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