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 때 들으면 좋은 노래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여행을 결심할 때 가장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날씨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떠나는 여행에서 온종일 먹구름이 드리워져 비가 오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비가 오면 더 운치가 살아나는 여행지도 적잖이 존재한다. 뜨거운 이 여름, 시원한 단비를 맞으며 즐길 국내 여행지 6곳을 소개한다. 도움말 및 자료 제공 한국관광공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큐레이터 DJ Soulscape / 참고문헌 날씨의 맛(알랭 코르뱅)

프랑스의 작가 겸 식물학자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그의 역저 <자연에 관한 연구>(1784년)에서 비를 기분 좋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산책, 방문, 사냥, 혹은 여행 계획이 없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비가 자칫 그것들을 방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이해야 한다면 “정신은 여행을 하고, 몸은 쉬면서 비를 음미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그는 비가 주는 기쁨을 역설했다. “나는 예컨대 소나기가 내릴 때, 이끼가 내려앉은 오래된 담장 위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바람이, 비의 미세한 떨림과 뒤섞여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때 기쁨을 맛본다. 밤에 들리는 이 쓸쓸한 소리들은 나를 달콤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한다.”

프랑스의 수필가 주베르 역시 “비가 오는 동안에는 모든 사물이 과장돼 보이게 하는 어떤 어둠이 있다. 게다가 이 비는, 우리 몸을 얼마간 명상으로 인도해 그 영혼을 보다 한없이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친숙하게 말을 건넨다. (중략) 벽, 나무, 바위에 밴 습기가 자아내는 이런 갈색조는 모든 사물의 인상에 덧입힌다”고 적었다. 그만큼 비는 자연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채색하며, 그 요소들에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8월이다. 가장 완벽한 ‘쉼표’를 찍고 싶은 당신이라면 이 여름, 비에 젖어 더 선명해진 자연의 색채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굳이 먼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만약 당신이 지금 비를 맞고 있다면, 우산 하나만 들고 다음 장소들로 훌쩍 떠나보자. 비가 여행의 ‘방해꾼’이 아닌 가장 완벽한 ‘파트너’가 돼줄 터이니.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비는 산수풍경을 그리는 붓이다. 장대비로 계곡물을 그리고, 궁궐 낙숫물은 단단한 돌에 홈을 파낸다. 도심에 내리는 비는 빼곡한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 청량한 빗소리로 그 풍경을 채운다. 34만490㎡에 달하는 창덕궁 후원의 자연은 그렇게 깨어난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을 걷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다.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자. 한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인왕산자락 수성동 계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콸콸 흘러내리는 풍광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겸재 정선은 이곳 장동(壯洞) 일대를 여덟 폭 진경산수로 담아 <장동팔경첩>을 그렸는데, 수성동 풍경이 그중 한 폭이다. 추사 김정희도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此心雪韻)’라는 시를 남겼다. 수성동 계곡이 있는 서촌은 윤동주 하숙집 터와 통의동 보안여관, 대오서점 등 한국 근현대사가 곳곳에 남아 있어 그 발자취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의 종로구청 관광체육과 02-2148-1852

경기 포천시 영북면 비둘기낭로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비둘기낭은 포천의 ‘은밀한 폭포’다. 현무암 침식으로 형성된 폭포는 독특한 지형과 함께 청량한 비경을 보여준다. 비가 내리면 비둘기낭폭포는 굵직한 아우성을 만든다. 영북면에 자리한 폭포는 천연기념물 537호로 지정됐으며, 한탄·임진강지질공원의 주요 명소로 등록됐다. 폭포는 비둘기낭의 유래를 간직한 하식동굴과 높이 30m 주상절리 협곡으로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며,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비둘기낭폭포 인근에 한탄강 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지질공원으로 연결되는 교동가마소, 지장산계곡 역시 독특한 현무암 지형을 선보이며 시원한 물줄기로 더위를 날려준다. 폭포 주변 교동장독대마을과 비둘기낭마을 등에서 팜스테이와 농촌 체험이 가능하다. 포천 여행 때는 국립수목원, 평강식물원, 허브아일랜드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문의 포천시청 관광과 031-538-3370

강원 화천군 하남면 건넌들길(서오지리)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화천의 여름은 물빛, 하늘빛, 연꽃 빛이 어우러진 풍경화다. 화천과 춘천의 경계쯤 자리한 서오지리는 춘천댐 건설로 마을 앞들이 물에 잠기면서 강변 습지에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부터 연을 심어 연꽃 피는 마을로 변신했다. 15만 ㎡에 이르는 연꽃단지에 백련, 홍련, 수련, 왜개연꽃, 어리연꽃, 가시연 등이 피어 8월 말까지 황홀한 연꽃 바다가 된다. 연아이스크림과 연잎차, 연꽃차, 연잎밥 등 건강한 먹거리도 갖췄다. 화천에서 생산한 목재를 이용한 화천목재문화체험장, 신나는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붕어섬, 아름다운 풍경화 속을 걷는 듯 감동을 주는 숲으로다리, 캠핑과 물놀이에 좋은 딴산유원지, 화천의 상징 산천어를 보고 배우는 토속어류생태체험관 등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볼거리로 가득하다. 서오지리, 숲으로다리, 거례리 수목공원은 화천 3대 감성 여행지로 물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이나 비 오는 날에도 운치가 있다.
문의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033-440-2530, 2329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12길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662년(문무왕 2년)에 창건한 정방사는 절벽 아래 제비집처럼 매달린 모양도 예사롭지 않지만,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압권이다. 정면으로 월악산과 청풍호가 발아래 펼쳐진다. 가장 아름다운 때는 아침 무렵. 월악산 골짜기와 청풍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울려 선경을 빚어낸다. 비 오는 날 분위기는 한결 운치 있다. 법당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노라면 세상 시름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정방사에서 내려오면 다양한 솟대 작품을 전시한 능강솟대 문화공간이 있다. 제천을 대표하는 청풍호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의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박달재, 청풍호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이는 백봉전망대, 1801년 신유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이 숨어 지낸 배론성지도 함께 돌아보면 좋은 명소다.
문의 제천시청 관광레저과 043-641-6707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비 오는 날 진도에 있다면 운림산방으로 가야 한다. 구름숲 속 화가의 방, 쓸쓸한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으면 연못에 물 듣는 소리, 상록수림 속 휘파람새 소리, 이웃 절집의 목탁 소리가 들린다. 비를 맞으며 피어오른 수련을 보노라면, 100여 년 전 이곳에서 지낸 화가가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구름 운(雲)에 수풀 림(林). 진도 최고봉 첨찰산자락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말년을 보낸 집이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며,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관직을 받는 등 조선 제일의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린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세상을 뜨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옆에 소박한 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운림산방과 이웃한 쌍계사는 울창한 상록수림으로 유명하다. 운림산방에서 쌍계사 상록수림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허련의 산책로였다. 아이와 함께라면 진도개테마파크에서 진돗개 공연을 보고, 가까운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무료 공연까지 즐겨보자.
문의 운림산방 061-543-0088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농암종택은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다.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때가 묻은 긍구당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긍구당(肯構堂)은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의 별채로,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다. 넓은 마루에 앉아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퇴계와 이육사의 흔적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촉촉하게 젖은 강변을 따라 퇴계오솔길(예던길)을 걷고, 퇴계가 후학을 가르친 도산서원에 가보자. 도산서당은 1561년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삼간집으로 곳곳에서 퇴계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퇴계가 아낀 제자 김부필의 종택이 있는 안동군자마을, 퇴계의 14세손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 관련 자료를 전시한 이육사문학관도 빼놓지 말고 두루 구경해보자.
문의 안동시청 체육관광과 054-840-6391

비 올 때 들으면 좋은 노래
빗속을 거닐며
김추자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애타게 그리는 그리운 그대여/ 빗속을 거닐며 나는 울었다’라는 가사로 마음을 적시는 1970년 곡.
전통적인 비와 이별의 정서를 가장 처연하게 들려주는 김추자의 보이스야말로 한국 대중악의 정서를 정의 내린 은혜로운 선물이다. 가사의 내용과 정반대로 다소 업템포의 댄서블한 한국적인 솔, 부갈루 리듬으로 편곡된 이 녹음본은 당시 서구권의 팝 뮤직 프로덕션과 견주어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녔다.

비 오는 날 수채화
김현식 외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1980년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김현식, 강인원, 권인하가 함께 한 이 곡은 언제나 가장 친숙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명곡.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며’로 시작하는 이 곡을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 대중음악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히트곡.

Purple Rain
프린스 앤드 더 레볼루션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도시에 내리는 비의 색깔은 무엇일까? 이 앨범이 발표된 1984년 뒤로는 보라색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린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 곡은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는 라이브로 만나볼 수 없는 곡이 되고 말았다. 애절하고 음울한 사이키델리아와 뉴웨이브 펑크가 만나는 1980년대 팝의 완성본인 이 앨범에 대한 전설은 수없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라이브 앨범에 오버더빙을 더해 완성됐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That’s Just the Way I Want to Be
블로섬 디어
비가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빗소리 듣기 좋은 장소
런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안개 자욱한 날씨와 비, 레인코트와 우산이다.그 풍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은 바로 이 앨범에 수록돼 있는 불멸의 히트곡 ‘아이 라이크 런던 인 더 레인(I Like London in the Rain)’일 것이다. 1970년 영국에서 발표된 이 앨범은 재즈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 블로섬 디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진 편. 하지만 전통적인 재즈 팝과 더불어 포크, 재즈 펑크, 솔의 색채가 가미된 독특한 편곡과 프로덕션으로 가장 고급스러운 팝 음악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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