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석원 여행전문기자]언제부턴가 이른바 북유럽풍 디자인이 리빙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디자인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되 실용적이고 고고한 아름다움이 국내에 알려지면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여행이 특별한 이유도 북유럽 스타일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열풍이 불고 있는, 심플하고 모던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북유럽 스타일의 발상지인 스웨덴.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14개 섬들로 이뤄진 북구의 베네치아 스톡홀름. 그곳으로의 여행은 예술과 생활의 완벽한 일체화를 경험하게 한다. 스웨덴 여행의 시작점이자 마침표는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 Stan)이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칼 라르손 고덴 부근의 전원 풍경 가득한 저수지]

깊고 좁은 골목들은 500년의 시간을 타임워프 한다. 북유럽에서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는 왕궁을 비롯해 대성당과 대광장, 그리고 문화적 위대함을 자랑하는 노벨박물관까지 감라스탄은 북유럽 최강국 스웨덴의 자존심이다.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좁고 긴, 깊고 은밀한 골목들을 천천히 헤매다 보면 쉬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 평온함이랄까? 거친 돌바닥과 높은 건물의 벽조차 부드러운 속살처럼 여행자들의 지친 몸을 보듬어준다.

하지만 감라스탄이 늘 지금처럼 아름답고 평온했던 것은 아니다. 30년 전쟁 이후 급격히 피폐해 가던 스웨덴. 19세기에 이르러 600년을 지배했던 핀란드와 라트비아를 러시아에 빼앗긴 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다. 감라스탄은 비참한 가난의 삶이 찌든 통증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통증이 깊어지던 곳에서 칼 라르손이 태어났다.

알코올 중독에 생활 무능력자인 아버지는 칼 라르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온 동네 잡일을 하면서 칼에게 지극 정성을 보인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칼을 왕립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시킨다. 마치 우리나라 1960, 1970년대를 보는 듯한 이 풍경은 결국 흔하지만 아름다운 스토리가 돼 지금의 칼 라르손을 만들었나 보다.

라르손을 찾아가는 여정은 스톡홀름에서 북동쪽으로 230여 km, 자동차로 전원을 천천히 감상하며 3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 순드보른(Sundborn)이다. 라르손은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집안 살림을 보태기 위해 신문의 삽화나 코믹 일러스트를 그린다. 그러다가 1877년 프랑스 파리로 진출하고 그곳에서 아내 카린 베르구(Karin Bergoo)를 만난다. 파리 생활을 접고 스웨덴으로 돌아왔을 때 라르손의 장인이 그들에게 작은 집 하나를 마련해주는데 그게 순드보른에 있는 칼 라르손 고덴(Carl Larsson-gården)이다.

라르손 부부는 이 집에 ‘릴라 히트너스(Lilla Hyttnäs)’라는 이름을 붙이고, 8명의 자녀를 낳고 살면서 조금씩 가꾸어 나간다. 나중에 이 집은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이 되고,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의 표본이 된다. 장인에게서 물려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시골의 초라한 오두막에 불과했던 이 집을 라르손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가꾸었다. 작은 호수로 이어지는 마당에 꽃을 심고, 싱그러운 울타리를 만들고, 크고 작은 나무들을 심어 집을 둘렀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맨위: 장인에게 물려받은 작은 오두막을 정겨운 예술가 가족의 집으로 바꿔 놓은 라르손. 그의 집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테리어 돼 있다. (가운데) 라르손은 벽난로를 직접 만들면서 딸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공간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아래) 라르손 부부의 손길이 세심하게 닿아 있는 집 안은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 있다.]

스톡홀롬, 스웨덴 미술의 심장
무엇보다도 마음을 쓴 것은 집 안 내부다. 라르손은 화려함보다는 평온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벽난로를 직접 만들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딸들의 몸을 따뜻하게 덥히는 것뿐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테이블보와 커튼은 그의 아내가 직접 수를 놓았고, 자녀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고쳐지는 집은 그의 가족들이 안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갖추며 완성됐다.

그리고 라르손은 자신의 집과 아내와 아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언뜻 만화 같기도 한 라르손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그의 집과 가족에 의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라르손 부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가구들, 그리고 벽지와 각종 소품들은 그대로 스웨덴 전통의 북유럽 장식이 됐고, 이후 스웨덴 디자인의 초석이 되는 예술 수공예 운동(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으로 이어진다.
라르손의 집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면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실리안 호수(Siljan sjö)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모라(Mora)가 나온다. 스웨덴을 상징하는 붉은 말 달라 호스(Dala Häst)의 고장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웃도어용 칼인 모라 나이프(Mora Knife)의 원산지다.

모라가 속한 달라나 지방은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라 모라는 작은 마을임에도 매년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매년 3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 최대 스키 크로스컨트리대회인 바사로펫(Vasaloppet)의 종착지가 모라다.

모라는 라르손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의 고향이자 그가 생을 마치고 묻힌 곳이다. 1853년생인 라르손보다 7년 늦게 태어난 소른은 스톡홀름으로 상경해 라르손과 같은 학교인 왕립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한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후 파리에 정착한다. 하지만 역마살일까? 소른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고 거기서 2명의 미국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쌓는다. 소른은 라르손과는 달리 초상화에 비범함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37세의 나이에 고향인 모라로 돌아온다. 모라는 전원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소도시의 인상이 강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유럽의 건축을 지배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실리안 호수와 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있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위 : 안데르스 소른 뮤지엄과 모라교회 사이에 있는 소른의 집. 달라나 지방 특유의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이 집에서 그는 태어나고 죽었다. (아래) 달라나 지방 모라에 있는 안데르스 소른 뮤지엄. 소른의 대표작들이 전시돼 있다.]

도시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른이 태어나고 죽은 집은, 지금은 안데르스 소른 뮤지엄(Anders Zorn Museum)으로 꾸며져 있다. 그의 그림들이 상설 전시된 멋들어진 미술관 옆에 잘 정돈된 그의 생가는 ‘팔룬 페인트’라고 불리는 달라나 지방 전통의 붉은빛 페인트로 칠해져 눈에 띈다. 소른은 이 집에서 그의 아내 엠마 램(Emma Lamm)과 평생을 살다가 바로 옆에 있는 모라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라르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기가 너무 많았던 소른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도 자신의 모델들과 늘 스캔들을 뿌렸다는 것.

같은 집에 살면서 남편이 모델들과 동침을 일삼는 걸 지켜보고 있던 램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짐작되는 일이다. 길을 다시 되돌려 스톡홀름으로 돌아온다. 멜라렌 호수 위 14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진 스톡홀름은 스웨덴 미술의 심장이다. 스톡홀름에는 또 한 명의 아티스트 칼 밀레스(Carl Milles)의 집이자 스톡홀름의 조각 공원인 밀레스고(Millesgården)이 있다. 밀레스는 1906년 파리에서 돌아와 부지를 구입하고 1908년 건축한 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웨덴, 소박함 속 독창적 아름다움
밀레스고덴이 있는 위치는 스톡홀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부촌 리딩외(Lidingö)다. 스톡홀름의 전통적인 귀족 출신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은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인데, 말 그대로 ‘전통’적인 부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방이 30개씩이나 되는 엄청난 저택들이지만 겉에서 봤을 때는 오래된 아파트 같은 느낌들이 대부분인 데다, 특별히 아름다운 전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밀레스고덴이 있는 리딩외는 말하자면 신흥 부촌이다. 젊은 부자들이나 연예인들, 그리고 외국의 대사관저 등이 모여 있다. 얼마 전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스웨덴에 왔을 때 최고 시설의 그랜드호텔을 마다하고 리딩외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저택을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라인에 ‘밀레스고덴’이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가족으로 완성되는 인간, '스웨덴, 북유럽 스타일을 완성하다'
[(맨위)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 중 가장 큰 포세이돈은 호수 건너 실야 라인의 대형 크루즈를 바라보고 있다. (아래) 밀레스의 집 내부도 칼 라르손과 같이 전형적인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차가운 스톡홀름의 겨울 호수 바람도 막아주는 따뜻함이
함께 배어 있다.]

밀레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성경을 소재로 한 야성적인 아르카이즘을 표방하는 조각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밀레스고덴에 모여 있는 작품들을 봐도 제우스나 포세이돈, 페가수스 등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소재나 신의 손 위에 놓인 인간의 모습 등 신앙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본관을 지나 네드레 테라센(Nedre Tarrassen)이라고 이름 붙여진 중앙 정원에 들어서면 발트해로 이어지는 멜라렌 호수의 탁 트인 전망이 시야를 해방시킨다. 호수 너머 핀란드 헬싱키와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향하는 113년 역사의 초대형 크루즈인 실야 라인(Silja Line)의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항구의 배를 포세이돈이 바라보고 있다.

포세이돈의 오른쪽으로 높은 기둥 위에 전시된 밀레스의 작품들은, 근접 불가의 안타까움이 위대한 작품에 대한 경외로 변이된다.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없고 목 아파라 올려다봐야 하는 작품 중에는 밀레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신의 손(Gods Hand)>도 있다.

밀레스가 주로 작업을 했던 공간인 ‘쿤스트내르스헴멧’(Konstnärshemmet, 예술가의 집)은 전형적인 근대 스웨덴 부잣집의 정원으로 시작한다. <황소>와 <댄서> 등 밀레스의 또 다른 대표작들이 늘어선 마당, 작지만 편안한 느낌의 연못과 분수는 왜 스톡홀름 시민들이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도 이곳을 즐겨 찾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초상화를 주로 그렸던 화가인 아내 올가는 밀레스가 이곳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특히 집 안 꾸미기에 관심이 많았던 올가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스웨덴의 전형적인 실내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오스트리아 부잣집 딸인 올가가 꾸민 밀레스고덴의 실내는 북유럽의 차가운 겨울에도 따뜻함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정겨움까지 느끼게 하며 밀레스고덴의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스웨덴의 매력은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프랑스나 독일,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의 나라들이 중세시대 거대하고 찬란한 문화를 뽐냈던 것과는 달리 스웨덴은 화려한 듯 정겹고, 웅장한 듯 소박한 특별함을 보여준다. 칼 라르손이나 안데르스 소른, 그리고 칼 밀레스까지 스웨덴의 근대와 현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보여준 그들의 미술 세계는 지금 스웨덴의 사회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 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인의 나라 스웨덴을 만든 원초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