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오후, 조신한 처녀 마리아는 정원이 딸린 테라스에 독서대를 내놓았다. 평소처럼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건물 밖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나무들 뒤로 등대가 보이는 잔잔한 항구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날, 마리아의 정원에도 작은 풀꽃들이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야외에서 책을 읽기 참 좋은 날씨다. 마리아가 독서에 몰입한 순간,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일며 천사가 날아와 폭신한 잔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천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마리아는 읽던 책의 페이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우고 있다. 천사는 채 날개를 접기도 전에 벌써 손짓으로 마리아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가 다급하게 전한 말은 마리아가 아기를 수태하게 된다는 하느님의 전갈이다. 무척 당황스런 소식이지만 마리아는 의연하게 손을 들어 화답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표시다.
이 장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스승 베로키오의 합작인 <수태고지(성모영보)>라는 그림이다. 수태고지란 성처녀 마리아에게 대천사 가브리엘이 예수의 잉태 사실을 전하고 마리아가 받아들인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수태고지 장면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백합이다. 백합은 주로 가브리엘 천사가 들고 있거나 꽃병에 꽂힌 형태로 표현된다. 다빈치의 그림에서도 백합은 천사의 손에 들려 있다. 수태고지에 백합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에서 백합은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통용된다. 성경의 ‘아가’서에서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혹은 장미,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백합의 꽃잎은 안쪽 세 개, 바깥쪽 세 개가 엇갈리게 포개져 별 모양을 닮았는데 별(스텔라)은 성모를 찬미하는 비유 중 하나로 성모의 별칭이기도 하다. 세 갈래 꽃잎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와 믿음, 소망, 사랑의 세 신덕을 가리킨다. 또한 백합의 흰 꽃은 성처녀 마리아의 순결과 무죄를, 곧은 줄기는 신앙심을, 밑으로 처지는 작은 잎들은 겸손함을, 그리고 진한 향기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수태고지에서 백합은 마리아의 성정을 하나로 함축해 보여주는 훌륭한 상징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특히 다빈치의 그림에서처럼 가브리엘 천사의 손에 들린 백합은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은 곧 잉태의 효력을 발생하며 그것은 백합이라는 이미지로 가시화된다. 즉 천사는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마리아의 뱃속에 자리할 아기 예수를 동반했으니 그것이 바로 손에 든 백합이 아니겠는가. 백합을 그린 두 정물화
백합이 인물과 함께 나오지 않고 온전한 정물화로서 그려진 것은 1480년경 한스 멤링(Hans Memling)의 작품이 처음이라고 본다. 그 그림은 백합과 다른 꽃들이 꽂힌 도자기 화병 하나가 동양풍 식탁보로 덮인 탁자에 단정하게 놓인 작품이다. 이 정물화의 뒷면에는 기도하는 남자의 초상이 있는데, 그는 그림을 의뢰한 후원자다. 원래 두 폭이나 세 폭으로 만든 제단화였으리라고 추정되지만 나머지 폭은 소실됐다. 정물화의 오른쪽 면에는 아마도 성모 마리아나 성모자가 그려진 패널이 연결돼 있었을 것이다.
멤링의 꽃 정물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얀 꽃 세 송이가 핀 한 줄기 백합이다. 꼿꼿한 백합 줄기 밑으로 짙푸른 아이리스 세 송이와 매발톱꽃 세 송이도 보인다. 아이리스는 백합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이후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주 사용됐다. 흰 백합이 마리아의 순결, 순수의 상징이라면 짙은 색의 아이리스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성모의 고통과 슬픔을 뜻한다. 또 매발톱꽃은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성령의 은총을 의미한다. 꽃들에 암시된 종교적 상징은 그것을 지탱하는 화병과 식탁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꽃병은 이탈리아에서 만든 고급 도자기로, 예수라는 이름을 라틴어로 표기한 첫 세 글자 ‘HIS’가 십자가 형태와 결합해 선명히 새겨져 있다. 또한 식탁보는 반복되는 기하학 무늬로 직조됐는데, 각 패턴은 중심의 십자가 모티프를 발전시켜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 꽃 정물화는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부분을 세심하게 선택해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구성의 정점에 자리한 백합은 순결한 성모 마리아를 칭송하며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가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다. 한편 백합은 실용성에 있어서 꽃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뿌리의 효능이 우수한 식물이다. 백합의 알뿌리는 열을 내리며 기침을 다스리고 소화와 이뇨, 정신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16세기 독일 화가 루드거 톰 링 2세(Ludger Tom Ring the Younger)는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는 백합의 약효를 정물화 속에 암시해 표현했다.
그의 그림 <꽃병>에는 탐스럽게 핀 흰 백합과 적갈색 아이리스가 꽂혀 있다. 화병에는 비스듬히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신은 말씀 속에, 식물 속에, 돌 속에 계신다”라는 문장이다. 풀이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영혼을 깨끗이 치유하듯이 하느님의 창조물인 식물과 광물이 육체의 질환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식물과 광물의 효능을 강조한 것은 그 시대에 새로운 약재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틀림없이 부유한 약제업자가 주문해 상점에 걸어놓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그림은 백합이 가진 종교적 상징성과 식물의 실효성을 결합해 표현했다. 꽃병 속 일곱 송이 흰 백합꽃은 성령이 내린 일곱 가지 은총을 떠올리게 한다. 백합의 의약 효과가 신이 내린 영험함이라면 그보다 더한 보증이 어디 있겠는가. 그림의 소유자는 백합의 효능을 확실하게 선전하는 동시에 그 효과를 신의 은혜로 돌림으로써 신앙심을 표출할 수 있었다. 약제상을 방문해 이 그림을 본 사람들도 영약의 힘을 믿고 몸과 마음을 말끔히 치료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갖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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