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의 가장 큰 역할은 후계자를 체계적으로 훈련해 능력 있는 리더로 키우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자녀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밑바닥에서부터 실무를 배우도록 하고, 중견 간부가 되면 권한과 책임을 주고 도전정신을 가르치며, 후계자가 경영자로서 능력을 갖게 되면 부모세대는 깨끗하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실제 가업승계에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배우지 않았어도 이런 과정을 잘 따르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동신유압의 사례를 통해 가업승계의 성공 비결을 배워보자.
세계 수준의 제품을 선보여라
처음 김병구 동신유압 대표이사를 만났을 때, 그는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하고 필자가 물으니, 그는 “어제 중국 전시회에서 돌아왔는데, 저희 제품이 호평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지난 5년간 노력한 것을 보상받은 것 같다며 직원들과 함께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도 했다. 그의 회사 제품은 성능과 내구성 면에서 유럽 및 일본 제품과 같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았고 가격 경쟁력은 그보다 앞섰다는 평을 받았다. 이는 그가 2011년 회사를 맡고 나서 사운을 걸고 매달려 온 기술 혁신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동신유압은 1967년 부산에서 창업한 사출성형기 제조업체다. 사출성형기란 플라스틱 등 원료를 금형 틀 안에 넣어 제품을 만들어내는 설비다. 창업자인 김지 회장은 20대 때 이 업체를 창업해 지난 50년 동안 사출성형기 제조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50년 동안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온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수출 덕분에 환율 차이가 나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점점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2008년에는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전체 직원의 40% 정도 되는 100여 명의 직원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야 했고, 문 닫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당시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중국산 부품을 떼어다 조립하자”거나 “사출성형기 사업은 이제 끝났으니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자는 ‘한 우물 경영’만이 중소기업의 유일한 생존 방안이라고 판단해 품질 개선에 힘쓰며 어려운 시기를 버텼다. 다행히 2010년 베트남에 공장을 짓던 삼성전자가 대량 주문을 하면서 회사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리고 2011년에 김 회장의 뒤를 이어 후계자인 김병구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목표 설정을 했다. 중국산 제품과 저가 경쟁을 하지 않고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직원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직원들은 “우리가 어떻게 독일, 일본 등과 경쟁할 정도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며 서로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그는 직원들이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가 낡고 성능이 떨어져서 안 된다고 하면 최고 성능의 기계로 교체해주었다. 이렇듯 안 된다고 말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어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김 사장은 품질 개선을 위해 직원 157명 중 20% 넘는 30여 명을 연구·개발(R&D) 인력으로 채웠다. 작은 기업이지만 자체 교육기관인 동신아카데미를 운영해 직원들의 능력 향상에도 힘썼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러자 직원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 “한 번 해보자”며 변하기 시작했다. 직원 모두 한마음이 돼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무시했는가’, ‘우리가 무엇을 잘 몰랐는가’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고 실험했다.
그리고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모든 기술적 노하우를 문서화해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5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드디어 9개의 전략 모델을 개발했고 이번 중국 전시회에 출품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덕분에 김 사장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아버지가 지난 50년 가까이 이루지 못한 세계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18년간의 경영수업
김 사장이 동신유압에 입사한 것은 1993년이다. 유학을 다녀와 20대 후반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닐 때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으니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라는 얘기를 듣고 부산으로 내려와 평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같은 조건으로 사원부터 시작해 대리, 과장 등 체계대로 훈련받고 승진했다.
처음에는 자재부에서 일을 시작해 공장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제조 현장에 대해 익혔고, 그다음은 영업부 책임자로 일하며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했다. 그는 고객이 자주 하는 질문이나 불만 사례 등을 파악해서 공장과 연구직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이 시장의 트렌드를 읽고 기술 혁신을 이끄는 데 힘이 됐다고 했다.
지난 18년의 시간은 그에게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 영업, 관리, 기계 설계와 생산 등 모든 분야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웠고, 어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려고도 노력했다. 필요하다면 어디로든, 누구에게든 배우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야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영학 등 2개의 석사학위를 받았고, 경영학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입사 18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김 회장은 그 시절 보통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엄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모습만큼은 대쪽 같고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한 번도 법인카드를 쓰지 않았고, 회사가 한창 잘나가던 성장기에도 오래된 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 사장은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존경심을 품었다.
1997년 환율 덕분에 크게 성장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김 회장은 6만6115㎡의 공장 부지를 구입하며 제2의 도약을 꿈꿨지만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2009년 김 사장은 아버지인 김 회장에게 한 가지 중대한 제안을 한다. 이미 만성 적자로 회사의 가치도 많이 떨어졌고, 미래도 불투명하니 자신이 전적으로 회사를 맡아 경영해보겠다는 것. 처음 김 회장은 아들의 당돌한 제안에 당황했지만 이내 가족회의를 열어 자녀들 간 협의해 회사의 지분 관계를 정리했다.
김 사장은 2남 2녀 중 장남인데 당시에는 남동생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분리해 두 형제가 하나씩 맡기로 하고 김 회장 자신은 모든 결재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김 사장은 아버지에게 부산 신항에 계획하고 있는 제2공장의 건축을 맡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1997년 노조의 반대로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꿈을 직접 꽃피우기 바랐기 때문이다.
신나는 일터를 만들어라
김 사장이 회사를 맡고 나서 기술 개발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신나는 일터’ 만들기다. ‘중소기업에서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고, 지금 몸담고 있는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교육하면 충분히 인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각 부서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부서원들의 연봉부터 승진, 성과급, 인사고과까지 평가·관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3·3·3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회사 순이익을 성과급, 회사 유보, 배당 등으로 3분의 1씩 배분하는 것이다. 수익의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돌려주자 스스로 일하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고 일부 직원은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 보너스를 받은 적도 있다.
단, 직원 간의 이기주의를 양산할 수 있는 상대평가는 철저히 배제하고 누구나 스스로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정해놓고 절대평가를 했다. 불량률이 줄어들었고 회사 생산성과 매출액이 매년 30% 이상 껑충 뛰며 강성이던 노조 문화도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그는 모든 것이 나눔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의 경영 철학의 핵심은 첫째가 진(眞)·선(善)·미(美) 경영이다. 진은 최고의 품질, 선은 착한 가격, 미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4관 5려’로 이름 붙인 경영 방침으로 직원들과 교류의 폭을 넓혔다. 4관은 관심, 관찰, 관점, 관계를 뜻하며 3려는 독려, 격려, 배려를 의미한다. 이를 행동으로 연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성과 평가와 연계해 강한 기업문화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또 이 회사에는 ‘1·1·1 제안 제도’라는 것도 있는데 전 직원은 의무적으로 매월 1인 1개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대신 회사는 제안 1개당 1만 원을 지급하고, 그중 좋은 아이디어나 제안을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 직원의 창의성을 끌어내고 관심, 관찰, 관점 등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또 ‘칭찬합시다’ 캠페인도 벌여 주변 동료의 칭찬할 점을 찾아 그 사람에게 직접 칭찬하고 그 내용을 게시판에 붙여 전 직원이 공유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 간에 상호 관심이 높아지고 소통도 원활해졌다. 독려, 격려, 배려의 3려를 직접 행동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 덕분이었다. 둘째는 ‘거리 경영’이다. 이는 즐길 거리, 웃음거리, 희망 거리를 만들어내고 불평 거리, 불만 거리 등 부정적 ‘거리’는 없애 회사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달 행운권을 추첨해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고, 명절이 되면 대표이사나 회장에게 들어온 명절 선물을 제비뽑기로 추첨해 직원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반기별로 직원 가족을 초청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매년 4월 1일은 사원들의 기를 살리는 ‘기삼데이’로 정해 그날은 인삼, 홍삼 함유 간식 등을 제공하고, 김장철에는 깜짝 선물로 고춧가루와 마늘을 집으로 보내주는 등 직원들이 웃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거리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 사장이 회사를 맡은 지 4년여 만에 회사의 매출은 그전보다 2배 많은 600억 원 수준으로 올랐다.
동신유압의 지난 50년간의 라이프사이클을 보면, 1967년에 창업해 1970~1980년대 말까지 성장기를 맞았고, 1990년대 들어 성숙기에 이르며 라이프사이클의 정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비즈니스 라이프사이클과 가업승계
만약 김 사장이 기업을 맡고 나서 재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기업은 1세대 라이프사이클의 점선과 같이 쇠퇴하며 유명무실해지거나 폐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신유압은 세대교체에 성공했고, 후계자가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해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을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가업승계의 성공’이란 후계자가 기업을 맡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공을 규정하는 데는 기업의 성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이에 더해 승계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 즉, 부모와 후계자, 가족, 직원들, 주주 등이 만족하는 수준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와 같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에도 동진유압은 가업승계에 성공한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후계자 개발에 필요한 항목들을 정리한 체크 리스트를 제안한다. 현재 후계자를 키우는 데 어떤 것들을 준비했고,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길 바란다.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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