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이혼이란 배우자의 친족과 법적 관계를 끊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오죽했으면 그랬나 싶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겠다’는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황혼의 부부 사이에는 ‘애증의 계산기’만 남게 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20년 이상 함께 한 부부의 이혼율은 30%에 달한다. 이혼 10쌍 중 3쌍이 ‘황혼이혼’을 한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황혼이혼과 황혼재혼은 동시에 늘고 있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들이 점점 더 늦은 나이에, 점점 더 많은 숫자가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황혼이혼과 황혼재혼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삶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황혼이혼과 황혼재혼이 일반화되면서 이에 따른 법률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황혼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문제, 황혼재혼과 관련한 부부간의 재산 갈등, 황혼재혼 후 배우자 일방이 사망할 경우 생존한 배우자와 사망한 배우자의 자녀들 간의 상속 분쟁이 그것이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들 중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황혼이혼의 이유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권위에 대한 인내력의 한계, 남편의 정년퇴직, 자녀의 독립,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 완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998년 가정폭력법의 시행으로 가정 폭력을 일반 폭력 범죄와 같이 취급하고 공권력이 개입하면서 황혼이혼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 쌍방의 이혼에 대한 책임과는 별도로 재산분할이 이루어진다.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생활을 해 오면서 형성한 재산을 나누는 일이다. 협의이혼을 한 경우에도 배우자 일방이 다른 일방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재산분할에 관해 협의가 되지 아니하거나 협의할 수 없는 때에는 가정법원에 재산분할을 청구하기도 한다. 가정법원은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 결혼 기간, 기여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해 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한다.
통상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가정법원에서는 재산분할의 비율을 30% 내지 50% 정도로 결정하고 있다. 지난 1999년에는 분할연금제도가 도입됐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이혼했을 때 가입자의 배우자가 노령연금 수령액의 절반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는 민법 제839의 2에 규정한 재산분할청구권을 준용한 것으로 혼인 기간 동안 재산 형성에 공동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고, 이혼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노후 생활 불안정, 특히 이혼 여성들의 노후 빈곤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와 같이 이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황혼이혼은 더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황혼이혼은 결국 황혼재혼으로 이어진다. 이는 앞으로 재혼이 결혼의 한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재혼의 모습은 ‘황혼재혼’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많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나이가 50대 이상이고 이전의 배우자와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해 왔던 당사자들의 결합은 재산 문제에서 여러 가지 이견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황혼재혼, 상속 갈등 막을 안전장치는
황혼재혼에는 부모가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재산 문제로 자녀가 혼인신고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경우에는 자녀들과의 마찰을 고려해 정식 결혼보다는 동거만 함으로써 사실혼관계로 남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재혼하는 배우자와 미리 상속권 포기 약정을 한다면 이는 효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효력이 없다. 민법상 배우자 생전에 한 어느 일방 배우자의 상속권 포기 약정은 어떤 경우든 무효이기 때문이다. 상속권을 포기할 수 있는 시점은 배우자가 사망한 이후다.
황혼재혼을 한 배우자의 상속분은 어떻게 될까. 황혼재혼을 한 후 배우자가 바로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생존배우자의 상속분은 민법에서 정한 대로 자녀의 1.5배다. 즉 자녀가 2명인 경우 새 배우자의 상속분은 자녀가 각각 1일 때 1.5의 비율이므로, 새 배우자는 3.5(1+1+1.5)분의 1.5, 자녀들은 각각 3.5분의 1의 비율로 상속재산을 분할하게 된다.
황혼재혼한 배우자가 다시 이혼하는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은 당연히 인정된다. 다만, 재산분할 대상은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므로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이 인정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인 기간이 상당하고 배우자가 상대방의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 재산을 유지하거나 가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서도 재산분할이 인정된다.
재혼 전에 미리 부부 재산에 대해 계약을 해서 재산분할 대상 및 방법을 미리 정할 수도 있다. 일정한 재산을 사전에 증여하고 재산분할에서는 제외하는 약정 등이 부부재산계약에서 가능하다. 단, 부부재산계약은 혼인 전에만 할 수 있고, 혼인 중에는 변경하지 못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직원연금의 경우 유족연금 수급권은 상속 순위에 따르게 돼 있으므로, 상속법에서 규정한 대로 배우자와 자녀가 공동으로 갖게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유족연금은 배우자가 단독으로 받는다. 다만, 군인연금의 경우 퇴직 후 61세 이후에 혼인한 배우자는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녀들의 반대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사실혼관계 배우자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민법상 재산 상속권은 없다. 다만,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직원연금, 국민연금의 경우 사실혼배우자도 유족연금은 받을 수 있다. 그 외에 산재보험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사실혼배우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다.
황혼재혼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므로 법률적 측면에서는 이혼 시 재산분할의 문제와 일방 배우자의 사망 시 부모와 자녀들 간의 상속 분쟁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쌍방 배우자의 모든 자녀들이 황혼재혼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재혼 전에 재혼 중 이혼에 대비해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하는 것, 그리고 재혼 전 재산에 대한 상속 대상이나 비율을 명확히 하는 유언장을 작성함으로써 자녀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언장의 작성 등으로도 재혼 배우자의 생활 보장이 미흡한 경우가 생긴다면, 재혼 배우자를 생명보험에서 새로운 수익자로 지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에서는 부부 중 일방이 사망할 경우 생존배우자에게 우선 상속분의 50%를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 50%를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하는 내용의 ‘배우자 선취분’ 제도에 관해 법안을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입법이 되지는 못했다.
배우자 선취분 제도가 입법이 된다면 생존배우자의 생활 보장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나 자녀들의 혼인신고에 대한 반대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순기 법무법인 한중 대표변호사·상속 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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