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사실혼관계로 연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상대 배우자의 사망 후 직면하게 될 재산분할이나 상속 문제다.
혼인은 ‘가족관계등록법’에 정한 바에 따라 신고해야만 그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812조). 즉, 부부가 혼인의 의사를 가지고 혼인신고를 해야만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돼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를 법률혼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혼인의 의사를 가지고 실제 부부로서 생활은 하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것을 사실혼이라고 한다.
사실혼과 법률혼의 가장 큰 차이는 상속에서 나타난다. 민법상 상속인이 될 수 있는 배우자는 법률혼의 배우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실혼의 배우자는 상대방이 재산을 남기고 사망하더라도 그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
이렇게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규정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 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이 사건 법률 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헌재 2014. 8. 28. 선고 2013헌바119 결정). ◆사실혼 배우자는 어떤 권리 가질까?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은 없지만, 이혼을 할 경우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가진다. “사실혼이란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 관념상으로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이므로, 법률혼에 대한 민법의 규정 중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는 규정은 유추 적용할 수 없으나, 부부재산의 청산의 의미를 갖는 재산분할에 관한 규정은 부부의 생활공동체라는 실질에 비추어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혼관계에도 준용 또는 유추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1995. 3. 28. 선고 94므1584 판결).
나아가 공무원연금법, 사학연금법, 군인연금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된다. 또한 거의 모든 자동차보험 약관에서 부부 한정 특약을 적용받는 배우자에는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중혼적 사실혼도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혼이나 사별 등에 의해 법률혼이 해소되지 않고 존속 중인 상태에 있는 부부 중 일방이 제3자와 사실혼관계를 맺었을 때 이를 중혼적 사실혼이라고 한다.
법률혼주의 및 중혼금지원칙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 우리 가족법 체계를 고려할 때, 법률혼관계와 경합하고 있는 사실혼관계를 보호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법률상 혼인을 한 부부의 어느 한쪽이 집을 나가 장기간 돌아오지 아니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부의 다른 한쪽이 제3자와 혼인의 의사로 실질적인 혼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사실혼으로 인정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해줄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례가 있다. 법률상 아내 을(乙)이 자식들을 두고 가출해 행방불명이 되자 남편 갑(甲)이 조만간 을과의 혼인관계를 정리할 의도로 병(丙)과 동거생활을 시작했으나, 그 후 갑의 부정행위 및 폭행으로 병과의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될 때까지도 갑과 을 사이의 혼인이 해소되지 아니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갑과 병 사이에는 법률상 보호받을 수 있는 적법한 사실혼관계가 성립됐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병의 갑에 대한 사실혼관계 해소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나 재산분할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96. 9. 20. 선고 96므530 판결).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에 관한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생전에 사실혼관계가 해소된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것과 비교해 간과할 수 없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이나 복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적지 않다.
유족의 사후 부양과 상속재산에 대한 기여의 청산이라는 상속제도의 존재 의의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실혼 배우자와 법률혼 배우자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따라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하여도 일정한 경우 상속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도록 입법적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리고 배우자의 사망으로 사실혼이 해소되는 경우 상속권과 재산분할청구권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생존 중에 사실혼이 해소된 경우에 비해 너무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 입법자로서는 생존 사실혼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 보호 및 부양과 관련한 각종 법 제도를 조속히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사실혼 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중혼적 사실혼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사실혼관계에 있는 부부의 경우에는 가급적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후일의 분쟁을 예방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 배우자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할 위험에 처한 경우에는 즉시 사실혼을 해소하고 재산분할청구를 할 것을 강력히 권한다.
대법원은 “사실혼관계의 당사자 중 일방이 의식불명이 된 상태에서 상대방이 사실혼관계의 해소를 주장하면서 재산분할심판청구를 하는 경우 이 사실혼관계는 상대방의 의사에 의해 해소됐고, 그에 따라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9. 2. 9. 자 2008스105 결정).
이렇게 재산분할청구를 하지 않은 채 상대방 배우자가 사망해 버리면 사실혼 배우자로서는 재산분할도 못 받고 상속재산도 못 받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될 수 있으므로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김상훈 법무법인(유) 바른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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