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씨는 자신 혹은 법인 명의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임대업을 영위하는 자산가다. A씨는 많은 재산을 축적한 다음 아내 B씨와의 불화로 이혼 후 재혼을 했고, 전처와 사이에 아들 C씨가 있지만, 새 아내 D씨와 사이에는 자식을 두지 않았다.
A씨는 아들 C씨에게 거의 모든 재산을 주려는 마음으로 나중에 유언공증이라도 할 생각이지만, 마흔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 부동산이나 주식을 미리 줄 생각은 없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에는 유언을 할 생각도 없다.
아들이 버릇없는 행동을 할까 봐 염려되고, 이혼한 전처가 상당 부분 이득을 보지 않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반면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성년 아들 C씨는 새어머니 D씨와 사이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일흔을 넘긴 아버지 A씨가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불안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새어머니가 더 많은 상속분을 가져가거나 유류분을 주장할 것이라면서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있다.
A씨는 유언공증을 하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법정 지분대로 상속이 이루어져 D씨는 남편 명의의 재산 중 5분의 3 지분을, 아들 C씨는 5분의 2 지분을 갖게 된다. 아들이 1차적으로 우려하는 상황이다.
반면 A씨가 아들 C씨에게 모든 재산을 유증한다는 공증을 지금이라도 하면, 새어머니 D씨의 소송 제기에 따라 C씨는 새어머니에게 유언으로 받은 재산의 10분의 3 지분을 유류분으로 반환해야 한다.
이러한 유류분 문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A씨가 사망한 이후 새어머니 D씨와 의붓아들인 C씨 사이에서 수백억, 수천억 원의 재산을 두고서 상속재산분할이나 유류분 분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아들 C씨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재산 축적에 전혀 기여하지도 못한 새어머니 D씨가 상속재산분할이든, 유류분이든 재산을 가져가는 것이 못마땅한데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A씨가 애당초 재혼을 하지 않고 D씨와 사실혼관계만 유지했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데, 현재 아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재산은 아버지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 C씨에게만 그동안 모은 재산 대부분을 주고 싶다면, 적절한 위자료 지급과 재산분할을 통해 D씨와 이혼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 입장에서 두 번째 이혼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선택일까? D씨가 형식적인 협의이혼이라도 선뜻 응할지도 의문이다. ◆이혼·재혼 빈번…복잡해진 상속재산분할
이처럼 재산의 가액이 몇 천만 원부터 몇 천억 원까지 다양하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앞선 사례는 이혼과 재혼이 빈번한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문제다. 더구나 A씨가 D씨와 사이에 자식을 둔 경우에는 배다른 동생에게도 상속분과 유류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부모가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누구에게 증여나 매각을 하든, 그 처분의 자유를 인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유류분이라는 제도는 사후적으로나마 이러한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해 상속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TV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얘기지만, 아버지가 소위 치매기가 있어 의사 판단 능력이 흐려진 시점에 새어머니에게 재산 전체를 유증한다는 유언공증이 실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넉넉히 예견되는 법적 분쟁을 최소한으로 예방하는 열쇠를 가진 사람은 아버지 A씨다.
A씨가 아들 C씨에게만 재산 대부분을 주고 싶으면, D씨와 적절히 협의해 이혼해야 한다. 이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유류분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아들에게 재산의 10분의 7 정도를 증여하거나, 적어도 이를 유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공증사무실에 가서 빨리 공증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증여나 유언이 법적 분쟁을 원천적으로 예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2. 남편 E씨는 자수성가해 35억 원의 부동산과 35억 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업주부이던 아내 F씨의 명의를 빌려 그 주식을 보유하면서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는 어떻게든 증여세나 상속세와 같은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2명의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주변 조언에 따라 E씨는 아내 F씨와 협의이혼하면서 재산의 절반 정도인 3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재산분할 형태로 아내에게 이전했고, 이러한 재산분할과 관련해 증여세나 양도소득세와 같은 세금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남편은 협의이혼 과정에서 조그마한 회사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주식 명의를 아내 F씨로부터 자신에게로 환원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혼 후에 남편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한 여자와 사실혼관계를 맺게 됐는데, 다만 사실혼의 처에게 많은 재산을 줄 생각은 없다.
한편 과세관청은 E씨가 그 소유 주식을 F씨에게 명의만 신탁했다는 이유로, F씨에게 증여세 약 20억 원을 부과했고(주식을 명의신탁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의수탁자에게 증여세가 나온다), F씨는 재산분할을 받은 부동산을 처분해 그 세금을 납부했다.
E씨의 사실혼 사실을 알게 되며 감정이 악화된 F씨는 납부한 20억 원의 세금을 전남편이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남편을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고, 4년의 기다림 끝에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가장이혼은 일시적으로나마 법률상 이혼 의사가 있다고 보아 실무상 유효하게 취급된다. 그래서 남편의 이혼 및 사실혼은 법률적으로 적법하고, 문제 삼을 수 없다.
전처 입장에서 남편의 사실혼이 괘씸하지만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처럼 이혼에 따른 세금 절감의 이익보다 더 큰 불이익이 발생해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세금 줄이려 가장이혼, 결과는?
남편이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리대로 그 명의로 재산을 보유한 상태에서 사망할 경우, 별다른 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아내는 법정상속분(차명주식이 상속재산으로 인정될 경우 30억 원) 7분의 3을 가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F씨가 협의이혼 후 당장 35억 원 상당의 재산을 재산분할 형태로 가져온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반면 차명주식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F씨는 외관상 15억 원의 부동산을 상속받을 수 있어, 종국적으로 50억 원의 재산(상속세를 감안하면 약 44억 원)을 보유하게 되므로, 재산분할이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세금 부담 측면에서도 과연 유리한 것이 맞을까? E씨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해 배우자가 적어도 법정상속분 7분의 3을 상속받게 되면, 차명주식이 드러날 경우 70억 원에서 30억 원(혹은 차명주식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35억 원에서 15억 원)의 배우자 상속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혼한 상태에서 E씨가 협의이혼 후 35억 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망 시 이론상 35억 원에 대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결국 이론상 협의이혼으로 차명주식이 드러날 경우 그때의 상속재산 35억 원과 이혼하지 않았을 경우 공제 후 상속재산 40억 원과의 차액인 5억 원에 대한 상속세(최대 2억5000만 원)의 절감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명주식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할 때 오히려 이혼 이후의 상속세가 과다하게 산출된다.
나아가 F씨는 E씨의 사실혼 이후 차명주식과 관련해 20억 원의 증여세를 납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재산분할로 받은 부동산을 양도했고, 그 양도차익은 E씨의 당초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산정돼 양도소득세를 제법 납부했다.
반면 이혼하지 않은 채 부동산이 상속된 후 양도됐다면, 그 취득가액은 상속 당시의 가액을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양도소득세가 훨씬 적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는 협의이혼 과정에서 차명주식임을 자인해 증여세 20억 원이 추가로 발생됐는데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당사자들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금만 많이 납부하게 된 꼴이 됐다.
결국 E씨와 F씨는 세금 절감을 목적으로 가장이혼을 하면서 경제적 가치만을 따져서 재산분할 방식을 정했는데, E씨는 결과론적으로 차명주식으로 인한 증여세 20억 원을 포함한 55억 원 정도를 지출해 당초에는 불필요했던 가장이혼을 마무리 짓게 됐다.
F씨는 전남편과의 민사소송 과정에서 약 4년에 걸쳐 마음을 졸이면서 힘겹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명목으로 35억 원의 재산을 최종 확보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부동산 처분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납부하게 됐다.
과세관청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협의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 협의 내용에 착안해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됐다. 결국 당사자들은 당초 꾀한 세금 절감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채 자녀들에게 상속할 현실적인 재산만 줄어들었고, 가족이 해체되는 기이한 결과까지 발생했다.
참고로 협의이혼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상호 협의한 재산분할의 조정안을 들고 올 때 법원에서는 그 법률적 집행 가능성만 염두에 두고 이를 확인하지만, 협의이혼 시 재산분할 내용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이 책임지고 정하는 내용이다.
재판상 이혼 과정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결국 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명목의 재산을 이전할 때에는 재산 이전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재산 정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세무 문제를 사전에 면밀하게 따져보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적 집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족관계의 형성 및 해체의 기초가 되는 혼인, 이혼과 재혼, 그리고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된 분쟁은 상속분 혹은 유류분의 다툼 문제와 각종 세금 문제다. 사적 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이 영역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의 원만한 합의로 해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법률적 문제를 생전에 예방할 수는 없을까? 첫째, 상속분 내지 유류분 문제를 사전에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 자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상속재산분할 분쟁이든, 유류분 분쟁이든 모든 재산의 가치평가는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데, 재산의 종류가 다양해 현재 기준으로 장래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망 시점 당시까지 각각의 가치 변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속분 혹은 유류분 침해액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어 적절한 증여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 침해액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민사 분쟁은 증여 당시의 기준가액으로 증여세나 상속세가 산출되는 세금과 다른 구조를 취하는 민법에서 발생한다. 결국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는 상속 분쟁 예방이 100%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둘째, 이혼이나 재혼, 상속 과정에서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혼이나 재혼, 상속이라는 각각의 시점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장기간을 고려해 다양한 재산에 대한 종국적인 세금 부담액이나 그 가능성을 따져보아야만 다음 세대에게 적정한 재산을 승계시킬 수 있다.
전영준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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