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부부 상속전쟁]남녀 600명 설문조사…상속 동상이몽
중·장년 남녀, 600명 설문조사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청 기준으로 2016년에 28만1600쌍이 결혼하고, 10만7300쌍이 이혼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다소 민망한 격언이다. 부부의 속내가 궁금한 대목이다.

부부의 재산 문제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부부가 갈등을 겪으며 갈라서거나, 일방 배우자가 사망하게 되면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지급, 상속 등의 핫 이슈들이 끊임없이 상자 밖으로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의미하는 조(粗)이혼율을 기준으로 봤을 때 2011년 한국은 2.3건을 기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34개 회원국 중 9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회원국 중에선 1위에 해당한다.

다행히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조이혼율은 2.1건으로 1997년(2.0건)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최근 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평균 이혼 연령이 남성(47.2)과 여성(43.6) 모두 동반 상승하고,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10년 전 대비 1.4배 증가하는 등 이른바 황혼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및 상속재산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은 새로운 고민거리도 생겼다. 고령화로 인해 자녀에게 상속하는 시기가 늦춰지고, 피상속인이 사망한 뒤 생존배우자가 홀로 지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이른바 ‘노노(老老)상속’에 대한 갈등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가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해 상속관계로 전환되는 사례도 상당하며, 이혼·재혼 가정이 늘며 상속재산의 배분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에 한경 머니는 리서치 전문 업체인 글로벌리서치의 도움을 받아 지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에 걸쳐 중·장년(40~60대) 남녀 600명(남녀, 세대 동수)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4.0%포인트)를 실시해 이혼과 재혼, 상속 등에 대한 생각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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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내 재산’ vs 여성 ‘부부 재산’

민감한 주제인 이혼·재혼, 상속 등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수준으로 아주 동떨어진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녀의 시선은 분명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우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누구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중·장년 남녀 모두 ‘가족’이라는 답변(남성 46.0%, 여성 38.0%)을 제일 먼저 내놨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했던 남녀는 두 번째 선택부터 갈렸다. 남성은 ‘본인’(29.3%)을, 여성은 ‘부부’(35.7%)를 두 번째로 꼽은 것이다.

이는 미묘하지만 상당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부공동재산제의 개념이 희박하고, 부동산이나 동산을 남성 명의로 해 두는 경우가 많아 남성 배우자의 경우 재산분할이나 상속 시 상대 배우자에게 재산을 분배해준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여성 배우자는 ‘부부 재산’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에 대한 생각은 남녀가 상반된 답변을 내놨다. ‘부부 사이 갈등 심화 시 이혼을 고려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은 ‘이혼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를 47.3%로 가장 우선적으로 꼽은 반면 여성은 48.0%가 ‘이혼을 고려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우선순위에 올렸다.

이 같은 남녀의 생각 차이는 통계청의 ‘2016년 사회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조사 내용 중 ‘가족관계 만족도’에서 남편은 부인에게 71.3% 만족하는 것에 비해 부인은 남편과의 관계에 58.5%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나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렇다면 재혼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이번 설문에서 남녀는 재혼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재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중립적 답변을 남성(70.3%)과 여성(70.7%)이 가장 높게 내놓은 것이다.

이는 통계청의 ‘2016년 사회조사’와 비슷한 결과다. 조사에서 62.3%(남성 61.7%, 여성 62.8%)가 ‘(재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중립적 의견을 가장 높게 꼽았다.

‘이혼이나 재혼 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남성이 ‘가족 화합’(35.7%)에 이어 ‘재산분할’(28.0%)을 선택한 반면 여성은 ‘재산분할’(32.3%)에 이어 ‘자녀 양육’(28.7%)을 꼽아 이견을 보였다.

이쯤에서 중·장년 남녀들의 상속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진다. 과거에는 장남이 부모를 봉양하고 조상의 제사를 주관한다는 이유로 상속재산을 독점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딸과 부인은 상속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1960년 민법이 제정되고, 1991년부터는 배우자 상속분이 1.5이고, 아들과 딸, 장남과 차남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상속분이 1로 균일해졌다. 더구나 최근에는 고령화로 인한 고령 배우자의 생활 보장 등을 이유로 배우자의 상속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고 보면 남녀의 생각에는 상당한 변화가 감지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선 설문에서 ‘상속·증여 시 자녀 간 차별을 두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중·장년 남녀 모두 ‘차별(구별)을 두지 않는다’는 답변(남성 63.3%, 여성 64.0%)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부모에 대한 기여분을 고려한다’는 답변(남성 20.0%, 여성 21.0%)은 2순위였다. 40대(60.5%), 50대(62.5%), 60대(68.0%) 등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답변에 무게를 두었다.

‘차후 이혼, 재혼, 입양 등으로 가족 구성에 변화가 생길 경우 상속·증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의에 대해서는 남성(43.3%)과 여성(41.0%)이 모두 ‘가족에게 균등하게 상속하겠다’는 답변을 택했다.

상속과 관련해 줄곧 공감대를 보이던 남녀의 답변은 혼외자와 사실혼관계의 상속과 관련해 미묘한 균열을 보였다. ‘혼외자에 대한 상속 차별’을 묻는 질문에 여성이 ‘차별을 두어야 한다’(41.7%)는 뜻을 내비친 반면 남성은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42.3%)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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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상속 문제 공감?…“소통 없다”

‘사실혼관계의 상속 배분’에 대한 질의에서 남성의 경우 ‘상속권을 주어야 한다’는 답변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49.7%가 첫손가락으로 꼽은 반면 여성의 1순위 선택지는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56.7%)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에 대한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이혼 시 통상적인 재산분할(5:5)과 법정상속분(배우자:자식=1.5:1) 사이의 차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해 남녀(남성 52.7%, 여성 51.0%), 연령대(40대 45.5%, 50대 53.5%, 60대 56.5%) 모두 ‘합리적이다’라는 답변을 첫 순위로 꼽았다. ‘불합리하다’는 답변(남성 26.3%, 여성 27.0%)은 후순위였다.

지난 2014년 피상속인의 재산에서 먼저 50%를 선취해 배우자에게 분배하는 민법 개정안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다가 재계의 반발로 좌초됐던 것에 비하면 다소 밋밋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당시 생존배우자 상속분의 확대가 추진됐던 것은 대체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수명이 길고, 재산 소유가 남성 명의로 집중돼 있어 부부 중 남성이 먼저 사망할 경우 생활 보장 대책이 없는 노년의 여성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근간이 됐다.

이어진 ‘생존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라는 질문에서는 남녀 모두가 ‘재산 기여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답변(남성 46.7%, 여성 48.7%)을 제일 많이 선택했으며, 뒤이어 ‘상속재산의 절반 정도가 적당하다’라는 답변(남성 34.7%, 여성 36.3%)을 두 번째로 선택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합리적이다’라고 응답했던 ‘법정상속분에 따라야 한다’에 대해서 남성과 여성이 각각 18.7%와 15.0%밖에 지지 응답을 하지 않은 다소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남녀 모두가 우선순위로 선택한 ‘재산 기여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대목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부 사이에 이견이 많은 부분이 결혼생활 중 각자의 기여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6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기여분결정청구 소송은 230여 건으로 6년 만에 2.4배나 늘었다.

부부간 상속에 대한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상속 플랜의 수립 여부’를 묻는 질의에 전체 설문자의 66.5%(남성 67.3%, 여성 65.7%)가 ‘없다’는 답변을 한 가운데 ‘가족들과의 상속·증여에 대한 소통’에 대해 가장 많은 남성(44.0%)이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여성의 경우 ‘가끔 대화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라는 답변(45.3%)을 가장 많이 했다.

‘향후 상속 문제로 가족 간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 남녀의 54.5%가 ‘약간 있을 것이다’라고 답하며 적지 않은 불안감을 전했다.

한편 선호하는 상속 방법과 관련해 전체 응답자의 52.5%가 사전증여를 1순위로 꼽았으며, 이어 유언장 공증(35.2%), 재산 기부(5.3%), 유언대용신탁(5.0%) 등의 순으로 답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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