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닮은 고목에 의지하며 경영을 배우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오너(경영인)는 외로운 존재죠.” 이런 말을 하는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의 눈도 잠깐 외로워 보였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다. 도전하는 인간은 더 외롭다.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예상 못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황무지에 씨앗을 뿌려 패션타운을 일군 성공 신화인 홍 회장도 그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찾은 곳이 바로 그가 20년 동안 정성을 다해 조성한 ‘마리오 정원’이다. 지난 4월 중순 충남 당진에 있는 마리오 정원을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까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좁은 농로를 한참이나 따라 들어가니 소나무로 둘러싸인 야산이 보였다. 대문이 열리자 깜짝 이벤트처럼 ‘반전의 공간’이 나타났다. 작은 폭포를 시작으로, 산책길과 길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이 한눈에도 잘 가꿔진 정원이었다.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평소 ‘개인 농장’이라 표현했던 그의 정원은 입지 면에서 특별했다. 정원은 삼면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쪽은 높지 않은 산으로 연결돼 있다. 꽤 넓은 논과 산이 만나는 지점이다. 산은 자연 그 자체이고, 논은 사람들의 땀으로 자연을 일군 산물이다. 마리오 정원은 우리네 삶과 동떨어진 별천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터전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홍 회장은 ‘논도 정원이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잘 만든 나무가 작품이 되듯이, 잘 지은 농사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정원 앞의 논둑 주변으로 소나무와 메타세쿼이아를 심어 놓았다. 홍 회장은 “3~5년 후에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웃었다.
대지 5만㎡(약 1만5000평)에 조성된 정원에는 소나무, 팽나무, 향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무와 크고 작은 연못, 개와 사슴과 닭, 세월을 견딘 돌들과 곳곳에 핀 야생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정원을 설계하고 수종을 선택하고 나무를 심고, 또 가지를 치고 풀을 뽑고 잔디를 깎는 등 정원 일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홍 회장은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원을 걷다 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식물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그들도 서로 경쟁을 하죠. 가지를 제대로 뻗지 못하면 괴로워하는 게 보여요. 또 꽃밭에 풀이 무성하면 꽃들이 양분을 뺏기면서 힘들어 해요. 그럼 주인이 가지를 쳐 주고 풀도 뽑아 주고, 물과 퇴비도 주면서 해결해 줘야 하는 거예요. 그들도 고마워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이 곳에 올 때마다 일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누군가에게 정원은 새로운 영감이 꽃피는 장소다. 또 누군가에겐 중요한 인생의 가치와 삶의 좌표를 찾는 곳이다. 자연의 차분한 조언을 듣는 장이기도 하며,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는 ‘영혼의 샘’이 될 수도 있다.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원의 힘을 잘 알고 있다. 홍 회장은 정원이 주는 선물 중 하나로 ‘노동을 통한 몰입의 힘’을 꼽는다. 그는 “이른 아침 정원에 나와 한두 바퀴 돌아보면 할 일이 계속 생겨 매번 해질 때까지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언제부터, 왜 나무 심기를 시작했을까. 그가 처음 나무를 산 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무렵이었다. 20대 후반 맨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패션과 아울렛으로 광폭 성장을 한 성공 스토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 0에서 1을 만드는 일은 창조적 발걸음인 동시에 인내와 연단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나무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다.
“엄청 의지했죠.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원에 와서 마음을 달랬는데,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불이 꺼진 공단에서 죽을힘을 다해 아울렛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을 때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농사를 짓고 싶었어요.”
그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동기는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그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무를 마음껏 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정원을 공개하기 전 “내 마음대로 꾸며서 부끄럽다”며 겸손하게 말한 것도, 오롯이 그만의 정서와 의도가 담긴 분신 같은 정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족과 일부 지인 외에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는 비공개 정원이다. 그 또한 “혼자 와야 진짜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마리오 정원은 홍 회장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돼 녹아 있는 공간이다. 20년 전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부터 정원 설계와 자리 배치, 구석구석 그의 손길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공들여 가꿔 왔다. “내 손때가 묻은 곳이잖아요. 남에게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볼 때는 인생과 철학이 담겨 있죠.”
마리오 정원에 있는 나무와 돌은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다. 그가 한 그루 한 그루 꿈을 가지고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마다 그 사연을 되새기고, 미래를 그려 본다고 한다. 잔가지 하나도 허투로 자르는 법이 없을 정도란다.
태풍 곤파스에 넘어져 버려질 뻔한 200년 된 은행나무를 되살렸고, 마리오 아울렛 1관의 첫 삽을 뜰 때 옮겨 심은 소나무는 지금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500년 이상 된 참나무도 4~5년의 적응기를 거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파릇파릇한 잎으로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있다.
홍 회장은 고목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나무 앞에 서면 자연이 주는 진한 생명력 앞에 압도되고 만다고 한다. “이런 게 감동이죠. 몇백 년 동안 자연의 법칙 속에서 온갖 풍파를 견디며 큰 건데, 때로는 꺾이고 휘어지고, 그러다 언덕이 있으면 안간힘을 다해 다시 올라가고, 고생하면서도 또 자라는 거죠. 반듯한 나무들보다 이렇게 힘들게 큰 나무들에게서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아요.”
특히 최근 2년 사이 공들여 조성한 ‘감나무 존’은 그가 100년 이상의 고목이 된 감나무 50그루를 수집해 만든 걸작품이다.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다. 바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산과 들이 온통 그 자체로 정원이었다는 그의 고향 마을에는 고목들이 많았다. 그중 감나무도 있었다. “제가 감을 좋아하는데, 다른 집에는 감나무가 있는데 우리 집엔 없었어요. 얼마나 따먹고 싶었겠어요. 가끔 운이 좋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얻어먹었어요. 내 고향 땅에 원 없이 감나무를 심어 질릴 정도로 먹어보고 싶었어요.”
100년이 넘었지만 키가 크지 못하고 쭉쭉 뻗지도 않은 데다 몸통이 이리저리 꼬인 소나무 6그루도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나무다. 험악한 산세의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들이다. “바람을 견디고 가뭄도 이겨내고, 끊임없이 물을 찾아 뿌리를 뻗어나갔을 소나무를 보면,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꽃을 피운다는 인생의 교훈을 얻는 것 같습니다.”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세계의 명원들을 봐 온 홍 회장은 기억에 남는 세계의 정원으로 일본의 소나무 숲을 꼽았다. 1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광경이었다. 또 탁 트인 전원 지대로 가로수 길이 방해물 없이 뻗어 있는 영국 정원의 풍경에서도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
특정 국가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반영하는 세상 단 하나뿐인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의 꿈의 정원은 산속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자연의 순리대로 큰 나무들과 그의 손길을 거친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는 자연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나무를 심고, 다시 옮겨 심으며 정체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 또 언젠가 외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특히 지역의 학생들에게 마리오 정원의 문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정원이 미완성이라고 했다. 50년 후, 100년 후 어떤 정원을 후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명원으로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 더 많은 사진은 한경 머니 5월호 빅스토리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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