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제공]
작품의 제목을 보면, 간혹 ‘무제’라고 쓰여 있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제목이 없다’는 뜻이다. 작품 제목을 달지 않는 것이 관객에 대한 작가의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특별한 의미를 내비치길 원하지 않는 게 작가적 의도이기도 하다. 반면 관객 입장에선 제목이 없는 경우에 자유로움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차선 없는 길을 가는 것 같은 묘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경험을 의외로 많이 겪는다.
이진주 작가는 최근 개인전에서 전시 제목을 아예 ‘불분명한 대답’이라고 붙였다. 만약 대답이 불확실하고, 명료하지 않으며, 미지근하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다행히 개별적인 작품 제목들은 있다. 그럼에도 ‘불분명한 대답’이라 한 건 왜일까.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해석을 작품으로 기록하지 않을까요? 저는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이 삶을 지극히 주관적인 한 개인의 일상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불편하고 아프지만 외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혹은 알고 싶은 마음에 그저 예민하게 바라보는 것이죠. 그중에서 ‘오랫동안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지된 평면의 매체인 회화 안에서 다층적인 내러티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은 단지 많은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생각과 기억, 그 시간성에 따라 여러 겹의 확장된 사유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진주 작가의 그림은 굳이 장르를 세분화하자면 ‘한국화(혹은 동양화)’에 속한다. 물론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한국화를 전공했다. 전형적인 ‘천에 전통 채색 기법’을 구사한다. 하나같이 신묘할 정도로 정밀하다. 마치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현대적 감성으로 차용한 것 같다. 조선시대 인물화는 그 사람의 외형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옮기고자 애썼다. 심지어 인물화를 보고 주인공의 학문적 성과와 인품까지 유추해 낼 수 있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 구사보다 내재된 이면의 정신성에 더 주목한 것이다. 이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전통 초상화의 대가로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년)을 꼽는다. 그는 전통 초상화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서양화법과 근대 사진술의 특성을 접목해 독특한 화풍을 개척했다. 이 작가의 그림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사적 내러티브’까지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작품이 지닌 의미와 미학적 형식이 맞는 독창적인 조형 어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 작가 스스로도 작품의 주제의식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솔직하고 날카롭게 내면을 마주하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의 그림이 정밀묘사의 극사실기법을 구사했음에도 결코 익숙하거나 만만한 독화(讀畵)를 허락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작가 작품의 특징을 좀 더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선 몇 가지 관전 포인트가 필요하다. 우선 연상되는 키워드를 나열하자면 은유적 상징, 불안한 균형감, 묵시적 관점 등이다. 그것들은 대개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되며, 그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나 감정이 아닌, ‘우리가 사유하는 삶의 총체적 원동력’으로서의 기억이다. 아마도 그는 특정한 기억의 단편들보다는, 그 기억을 제대로 유추해 내려는 ‘사유의 과정’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기억들은 엄청난 공력이 집중된 디테일을 통해 화면 위에 탄생된다. 그 무엇 하나 허투로 지나친 것이 없다. 대상의 구조나 상태, 질감과 촉감, 심지어 후각이나 대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 관찰한 결과를 아주 작고 예민한 촉수로 끈질기게 그려낸 ‘생활도감(生活圖鑑)’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너무나 디테일하게 표현됐음에도 하나같이 직설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그래서일까. 철저하게 관찰자(관객)의 객관적 시점을 유지한다.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경한 조합의 풍경이나 상황들은 보는 이의 사고를 확장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작품 중에 2016년 제작된 <각오 (Commitment)>를 예로 보자. 얼핏 보면 엉성한 망루 구조물에 뭔가 올려놓은 형국이다. 잠깐만 봐도 매우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네 기둥으로 지탱된 나뭇가지들은 살짝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듯하다. 얼기설기 엮어놓은 모양새도 못미더운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꼭대기에 백지장처럼 얇은 바닥이 깔려 있고, 그 위엔 받친 나뭇가지들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거대한 손과 생강의 형상이 얹혀 있다. 그뿐인가, 상판 모서리엔 중력을 거스른 듯 뾰족하게 깎아 세운 연필 기둥이 자리 잡았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광경이었지만, 볼수록 불편할 정도로 복잡 미묘한 수수께끼를 주문받은 기분이다.
일련의 작품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좀 더 낫다. 이 작가는 먼저 익숙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생경하고 기묘한 순간들이나 상상들을 직관적으로 기록한다. 단편적으로 남겨진 수많은 드로잉들은 어느 순간 뜬금없고 맥락 없이 한 화면에서 서로 복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광목천을 씌운 화판에 자리 잡은 정교한 밑그림은 한국화 수성 채색 재료로 제 모습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완성해 가기보다는, 아주 작은 오브제 하나하나를 먼저 개별적으로 완성한 후 그것들을 이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따라서 웬만한 크기의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까진 적어도 수만 번의 붓질을 필요로 한다. “작업을 하다 보면 끝없는 회의감과 자신감이 서로 엇갈리고 맞물립니다. 간혹 막연하고 끝없는 불안감에 치여 있을 때, 주변에서 작업에 대한 깊은 평가로 강한 확신과 믿음의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합니다. 사실 제 작업에 대해 대체로 불만족스러워 하는 편인데도 말이죠. 왜냐하면 처음 머릿속에 찾아왔던 영감들이 성공적인 표현의 이미지로 옮겨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성공한 작품’보다는 ‘덜 실패한 작품’이란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평가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면에 드러나기 전 머릿속에 있던 그 실체(분명히 경험하고 있던 그 감각과 이미지)에 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마련이겠죠.”
이 작가는 그림을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미술사에 남을 만한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바람이다.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언어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어떤 관점’을 회화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는 젊은 화력(畵歷)에 비해 어느 정도 순항 중이라고 여겨진다. 데뷔 초기부터 갤러리현대 신진작가 발굴 전시를 거쳐 지금은 국내 갤러리 중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아라리오갤러리의 전담 관리를 받고 있다. 또한 서울의 개인전 이후에도 5월 20일부터 7월 20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백아트(Baik Art)갤러리 개인전에 이어 아라리오뮤지움, 인도네시아의 유력 기관 등에서도 개인전 초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손바닥 크기의 소품부터 6m에 육박하는 초대형 크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소품이건 대형 작품이건 극정밀의 세필채색화는 일관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전통 방식의 회화 형식이라도 작가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조형성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해 준다. 2012년 100호(약130×160cm) 정도가 1100만 원이던 가격이 현재는 1500만 원 정도다. 다만 특수한 형태의 캔버스 작품일 경우 10% 정도 높아질 수 있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서울에서 5월 7일까지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자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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