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다. 효도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의 사연과 함께 부모들이 좋아하는 효도 세 가지에 대해 알아보자.
“올해 마흔이 된 직장맘입니다. 제 고민은 70대 중반인 친정아버지에 대한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정말 무뚝뚝한 분이십니다. 어렸을 때, 그리고 학창 시절 길게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저도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을 해 보니 묵묵히 자녀를 위해 돈 벌려고 고생하신 아버지 마음이 이해도 되고 더 늙기 전에 많이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전화라도 드리면 ‘잘 지낸다’며 ‘바쁜데 뭐 하러 전화했느냐’고 무뚝뚝하게 받으셔서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잘 지내시나 보다 했는데 췌장암에 걸리셨다는 것입니다. 숨기고 계셨던 겁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숨긴 아버지가 밉기도 해서 한참 울었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라도 무뚝뚝한 아버지께 효도하고픈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왜 우리 부모들은 속내를 숨기고 괜찮다고만 하실까. 자녀가 걱정할까 염려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산 자녀들은 이 사연처럼 부모가 암으로 투병 중인 것도 몰랐던 불효자가 돼 버린다. 부모의 자녀 걱정은 친밀감에 기반을 둔 깊은 공감이다. 친밀감이 영어로 ‘센스 오브 클로스니스(sense of closeness)’. 말 그대로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거리다. 부모가 느끼는 자식과의 정서적 거리는 거의 제로에 수렴하지 않을까 싶다. 정서적 거리가 제로라는 것은 자식의 고통이 곧 내 고통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암이 있어도 부모 입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내 아픔보다 자녀의 걱정이 더 큰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의 자식 사랑은 거의 한 몸처럼 밀접한 친밀감이 주는 사랑이다. 그래서 희생적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관심과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을 타인에게 주게 되면 마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부모의 ‘다 괜찮다’란 말에는 이중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너희가 걱정하는 것이 싫구나. 그렇지만 너의 사랑을 너무 받고 싶구나’ 하는 마음인 것이다.
효도는 자식의 부모 사랑이다. 효도는 자녀의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효도의 심리적 유용성이라고 할까. 도리를 넘어서 나를 위해 효도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나와 관계있는 대상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그 사람의 약점이나 나에게 섭섭하게 했던 점들이 주로 생각난다. 그러나 대상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사람의 장점이나 나에게 해 주었던 의미 있는 사건들이 주로 기억난다. 평소에 생각했던 부정적인 기억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진심으로 불효자라며 눈물 흘리는 자녀들을 보면 대부분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경우다. 자녀들은 부모 살아생전엔 섭섭한 기억들만 나다가 돌아가시면 바로 그 순간부터 잘 해 주신 기억만 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맙단 말 한 번 제대로 못한 불효의 한이 가슴에 사무치게 된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효의 한은 시간이 흘러도 잘 지워지지 않고 슬픔과 죄책감의 심리를 가져온다.
자 그럼, 부모들이 어떤 효도를 좋아하실지 한 번 생각해 볼까? 부모가 기뻐하는 효도 세 가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본 한 설문조사가 있는데 어떤 것들일까? 등수대로 알아보면 3등이 손주 재롱, 2등이 용돈, 1등은 안부전화나 방문이었다. 부모는 왜 이 세 가지를 특별히 좋아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겠다.
먼저 3등인 손주 재롱이다. 누구나 첫사랑의 가슴 사무친 추억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뇌 안에서 사랑의 반응은 남녀 간 사랑이나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손주 재롱은 첫사랑의 회상 내지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내 자녀를 낳았을 때보다 더 기쁘고 자녀 사랑 이상 손주에게 폭 빠지는 어르신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감성이 순수해진다. 사랑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 분신의 분신인 손주에게 강력한 애정 반응이 일어난다. 거기에 자식처럼 내가 직접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에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사랑만 해 주면 되는 존재인 것이다. 손주 낳아 드리는 것이 인삼, 산삼보다 좋은 보양제다.
용돈은 돈이 좋아서 좋아하실까? 자녀가 준 용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 다시 자녀에게 주는 부모들도 많다. 사람은 사랑이 구체적으로 보일 때 그 사랑을 더 느끼게 된다. 청혼을 할 때 남자가 꽃 하나 준비 안 하고 결혼하자 하면 여성들은 대부분 실망한다. 아무리 사랑의 고백이 진실해도 말이다. 선물의 심리적 의미인 것이다.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감성이 구체적인 것에 담길 때 사람은 그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낀다.
사랑하는 남녀가 눈이 빠지도록 서로 쳐다보는 것, 왜 그럴까? 사람은 눈과 눈이 마주칠 때 사랑이 가장 잘 전달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그래서 부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목소리도 사랑이 전달 된다. 그런데 목소리보단 눈 맞춤이 훨씬 강한 사랑의 소통 방법이다.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눈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쑥스럽다? 사람의 표현이 무뚝뚝한 것과 마음속 감성이 말라붙어 무뚝뚝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자녀가 걱정할까 봐 자신의 암을 숨기는 아버지의 마음속엔 딸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말해 보자.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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