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 지지율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전선 후보의 집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는 의원과 장관 시절 자신의 아내와 자녀를 보좌관으로 채용해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르펜과 중도파 전진당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지지율이 1, 2위로 급등했다.
현재 르펜 후보의 지지율은 50%에 미치지 않아 2차 결선 투표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르펜과 마크롱의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르펜이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프랑스판 트럼프’라 불리는 극우 세력의 상징인 르펜 후보의 경우 유럽연합(EU) 탈퇴, 수입 규제 강화 및 자국 기업 보조금 지급, 이민자 통제는 물론 프랑화 재도입, 관리변동환율제도로의 전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 브렉시트보다 더 충격이 클 수 있는 ‘프렉시트(Frexit: 프랑스의 EU 탈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오는 9월에 예정돼 있는 독일의 총선도 변수가 생겼다. 아직까지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과 같은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네 번째 연임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현재 총 630명으로 구성된 연방의회는 메르켈 총리의 기민·기사연합당(CDS/CDU),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SPD)이 각각 310석, 193석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과정에서 안정적인 경제 성과를 이끌어 왔던 CDS와 메르켈 총리가 네 번째 연임이 유력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유럽 난민 수용 정책과 계속된 그리스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빠른 속도로 AfD의 지지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AfD의 반이민, 반이슬람 성향은 유권자들의 흥행을 이끄는 데 성공했으나, 유럽통합 반대, 유로존 폐기 공약은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마틴 슐츠, 전 EU의회 의장을 앞세운 SPD의 지지율이 가파른 속도로 높아지는 추세다. AfD의 집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총선에서 상당 의석을 확보하게 될 경우 향후 독일 의회 내에서 각종 법안 통과를 둘러싸고 대립이 예상되고 있다.
올해 3월 이후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일정은 길게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통합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EU와 유로존은 각각 초기 7개, 11개 회원국으로 출발해 그동안 ‘확대(enlargement)’ 단계를 거쳐 현재 28개, 19개국 체제를 확립했다. 계획대로라면 ‘심화(deepening)’ 단계를 통해 미국처럼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올해 예정된 유럽 정치 일정에서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이 득세할 경우 EU 탈퇴 목소리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 붕괴 위험을 나타내는 센틱스 유로존 균열 지수는 2015년 영국의 총선과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유럽 대선·총선 시즌 본격화
유럽통합의 붕괴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유로화의 필요성과 가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9년 도입하고 2001년 실제 생활에서 유통된 이후 유로화 가치는 한때 유로당 0.8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그 이후 ‘1유로=1달러’의 등가 수준 위에서 움직이며 비교적 견실한 움직임이 유지됐다.
유로화가 등가 수준을 상회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는 EU가 전 세계 지역무역협정 중에서도 역내교역 비중이 높아 유로화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EU의 역내교역 비중은 68%에 육박했던 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동남아자유무역협정(ASEAN)의 경우 각각 44%, 23%에 머물렀다.
우려와 달리 유로존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유로존 성장률은 1.7%로 미국의 1.6%보다 높았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다. 올해 2월 구매관리협회지수(PMI)도 유로존이 56으로 미국의 54.2를 6년 만에 초월했다. ‘미국 경제가 좋다’는 선입견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양적완화, 초저금리로 상징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일관된 금융완화정책의 힘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ECB의 최대 정책 목표인 2%를 달성하기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들어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해 2〜5월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마이너스 영역을 기록했으나, 그 후 국제유가 상승과 경기 회복 기대로 상승세로 반전돼 올 1월에는 2013년 1월(2.0%) 이후 가장 높은 1.8%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2013년 중반 12.1%를 기록한 이후 감소 추세에 들어서며 지난해 12월에는 2009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인 9.6%로 떨어졌다. 하지만 유로존 실업률은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실업률에 비해 여전히 2배가 높은 수준이다. 회원국별로도 독일, 프랑스와 같은 핵심국이 10% 밑으로 떨어졌으나 그리스, 스페인과 같은 취약국은 여전히 20%에 근접해 편차가 심하다.
유로화 사용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심화됐던 국가별 경제적 불균형 현상에 대응해 구제금융 지원과 금융완화정책을 펼치는 데 용이하게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유로랜드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유로화 사용 수요와 필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대신 독자 통화 도입 요구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통화 유로화 도입은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가 제기한 최적통화지역이론(Optimal Currency Area Theory)에 근거를 두고 있다. 최적통화지역이란 단일(통합) 화폐를 도입하면서 얻는 이득이 자국 화폐 주권을 활용하는 비용보다 커서 단일 화폐가 도입되기 이상적인 지역을 의미한다.
먼델 교수는 EU와 같이 상품과 서비스, 금융 및 물리적 생산요소, 노동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지역에서는 단일통화 도입이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후 브렉시트 결정, 정치적 포퓰리즘 확산 등 유럽통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유로화 사용에 따른 이익과 필요성은 감소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의 정치 일정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유로화의 등가(1유로=1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로화 환율은 ECB의 통화완화정책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펀더멘털 개선은 물론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흑자, 해외투자 자금 유입에 따른 수급 측면에서의 개선 흐름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고 있는 주요국에서의 경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 EU 결속력 약화로 인해 지난 6개월 동안 유로화 환율은 6% 가까이 하락하며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유럽 정치 일정에서 포퓰리즘 정당 및 후보 집권이 현실화될 경우 EU는 물론 유로화 존속에 대한 우려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 및 통상정책에 따른 유로존 경상수지 흑자 축소는 유로화 약세 현상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주요 투자은행(IB)에서 내다본 미국 달러·유로화 환율은 올해 3분기 유로당 1.04달러를 저점으로 내년 말 1.1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올해 안에 등가 혹은 등가 수준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은행은 현재 13개까지 늘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전체적으로는 올해 말 유로화 환율은 1.05달러로, 지난해 말 1.10달러보다 더 떨어질 것(유로화 약세)으로 투자은행들은 내다봤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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