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성에 대해 문제를 느끼는 이들이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성적 욕구가 사라져 섹스를 하고 싶지가 않다는 사람, 섹스를 하기는 하는데 즐거운 일이라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의무 차원의 행위라는 부부, 별로 좋은 느낌도 없는데 남편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거짓 오르가슴을 연기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아무 즐거움도 못 느낀다는 아내들이다.
또 아내는 좀 더 남편과 섹스를 자주 하고 싶고, 남편이 먼저 요구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자기가 요구해야만 마지못해 남편이 응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부부, 혹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속궁합이 안 맞는 것 같아 차라리 일찍 헤어지는 게 낫겠다며 이혼을 결심하고 온 부부 등이다.
이렇게 결혼에 있어서 섹스는 문제의 원인일 때도 있고, 결과일 때도 있다. 그만큼 결혼에서 섹스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섹스는 그저 몸이 만나서 말초신경을 자극해 쾌락을 느끼는 단순한 감각적 접촉이 아닌 서로의 마음과 몸과 영혼이 교류되는 전적인 소통이기 때문이다.
◆스킨십, 몸과 마음 여는 시동 버튼
상담 과정에서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건 의외로 부부들이 서로를 전혀 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쓰다듬기, 어깨를 감싸 안기, 허리를 휘감아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기, 상대의 뒤에서 다가가 안기, 얼굴을 만지며 키스하기 등 애정이 담긴 신체 접촉은 부부간의 애정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소통 방법이다.
그런데 밤에 부부관계를 맺을 때가 아니면 평소에는 전혀 서로를 만지지 않는 부부들이 정말 많다. 그래도 요즘 젊은 부부들은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서, 평소에도 손을 잡는다든지, 밖에서라도 서로의 뺨에 뽀뽀를 한다든지 팔짱을 낀다든지 하는데 나이든 부부일수록 평소에는 종일 같이 지내도 손 한 번 잡지 않는다는 부부들이 많다.
어떤 부부는 그저 상대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잡거나 팔이나 어깨를 어루만지거나 하는 신체 접촉을 하면 다른 상대는 그것이 섹스에 대한 강요라고 생각해 부담스러워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커플 간 신체 접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점점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하고, 만지거나 만져지는 것을 피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스킨십이 없어진다는 것은 관계에 경계경보가 켜지는 것이므로 긴장해야 할 일이다.
한번은 사랑의 경험이 많고, 그래서 섹스 파트너가 많았던 한 사람에게 “사랑이 없어지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그의 대답은 “그와의 섹스가 재미없어지고, 만지고 싶지 않아지면 사랑이 사라졌다고 느낀다”였다.
신체 접촉이 없어지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먼저 두 사람이 너무 친숙해져서 사랑하는 연인이라기보다는 친구나 남매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 또 집안일이나 아이 양육으로 너무 각자 바쁘기 때문에 아예 신체 접촉을 중단해 버린 경우다. 우리나라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 자녀들이 너무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부모인 그들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로 거절하는 것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지만, 섹스, 애무, 키스 등 성적인 행위에 대한 거절은 여간 부드럽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거부당하는 것 같아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어떤 젊은 부부는 남편의 요구를 아내가 단 한 번 강한 어조로 거부했을 뿐인데 남편이 자존심을 크게 다쳐 그 후로 한 번도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고, 결국 이혼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
또 부부 중 한 사람이 성에 대해 너무 완고한 가정교육을 받았거나, 혹은 성적인 학대나 강압적인 성행위를 당해서 신체 접촉에 두려움이나 강한 부담을 느끼는 경우다.
필자에게 상담하러 왔던 한 부부는 남편이 너무나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 “키스나 섹스는 밤에만 하는 것이고, 낮에는 손잡기나 키스, 팔짱 끼기 등도 불편하다”며 아내의 신체 접촉을 거절하고, 1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한 번도 먼저 아내의 손을 잡거나 하는 스킨십을 시도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내는 낮에는 철저히 냉랭한 남으로 살고, 혹시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냉정하게 싹 손을 거두어 가는 남편의 태도에, 밤에만 덤벼드는(?)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안 든다며 밤에도 남편을 거절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부부의 친밀감을 높이는 데 애정이 담긴 스킨십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살이 닿으면 닿을수록 서로의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지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육체적 거리도 가까워진다. 살이 닿을수록 외로움은 줄어들고 상대와의 친밀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로 살려면 부부간에 스킨십을 회복하고, 자주 만지고 만져지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스킨십에 자연스러워지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따뜻한 손으로 상대의 손을 애무하는 것이다. 손은 노골적인 성적 부위가 아니라서 마음의 경계가 좀 낮아지며, 이런 접촉에 익숙해지면 그다음 좀 더 깊은 접촉은 더 쉬워진다.
손가락으로 상대를 천천히 부드럽게 어루만지되 마음으로는 ‘당신은 정말 내게 소중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떠올린다. 놀랍게도 마음의 기운은 손으로 전해진다. 손을 문지르고, 꼭 잡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이때 말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침묵 속에서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손을 어루만지면 효과가 더욱 크다. 상대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그러나 다정하고 조용한, 성적인 스킨십은 상대의 몸과 마음을 여는 시동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실제로 이런 손 애무를 신체 접촉에 불편해하는 상대에게 시도했더니 “손으로도 멋지게 섹스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그 후로는 스킨십에 있어서 훨씬 자연스러워졌다는 경험을 전해 온 이도 있다.
파트너와 함께 손이나 팔을 잡고 걷기, 팔로 어깨를 돌려 감싸주기, 키스하기, 머리·볼·등을 다정하게 쓰다듬기를 자주한다면, 당신은 상대의 몸과 마음을 여는 열쇠를 가진 것과 다름없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민아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