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한쪽 벽면을 장식하는 ‘천년의 접시전’이 눈에 들어온다. 고려청자부터 조선 분원의 청화백자까지 우리의 찬란한 예술과 문화를 접시의 변천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을 재현한 공간에는, 조선 목가구의 간결한 절제미가 응축돼 있다. 책상이었던 서안과 경상, 문갑, 반닫이, 함 등이 낮게 배치되고, 그 위의 여백의 벽이 있어 옛 선조들의 좌식 생활과 면벽수행(面壁修行)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이상준 호텔 프리마 서울 대표의 ‘안목’으로 선택받은 한국 앤티크, 다른 말로 고미술들이다.
컬렉션은 또 하나의 창작 활동
“우리의 뿌리와 근본을 찾는 과정이에요. 우리 옛것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 역사를 알게 되고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호텔 프리마 서울 사장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손 안의 작은 도자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의 집무실은 마치, 지상으로 올라온 수장고 같기도 하고 연구실 같기도 했다. 벽면을 채우는 고화 및 서화, 갖은 형태의 도자기들. 바닥에는 불상이며 공예품이 놓여 있었다.
고미술의 세계는 다른 예술품과 비교할 때 ‘고수들의 영역’에 해당한다. 고서화 하나를 보더라도 생산 연도, 작가, 재질, 화풍 등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알 수 있는 게 없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그저 모으는 것이 아니다”(유한준, 1732~1811년)라고 했던가. 알아야 즐길 수 있다. 이 대표가 말하는 고미술의 매력도 이와 같다.
그는 고미술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애호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 ‘좋은 물건’을 찾고 알아보는 몇 안 되는 애호가, 둘째, CEO 중에서도 고미술 컬렉터임을 대중적으로 드러낸 명사다.
이 대표의 컬렉션 중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지난 2007년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7만2000달러(약 12억 원)에 낙찰 받은 18세기 조선백자 대호
<달항아리>다. 고가의 고미술 구입을 쉬쉬하는 컬렉터들이 있는 가운데, 이 대표가 세상에 공개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문화 바로 세우기’라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유구한 역사와 위상을 너무 몰라요. 서양사의 우월주의 혹은 식민사관에 얽힌 한국사를 배워서인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요. 제가 어른이 되고 고미술에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다 보니 이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도자기로 세계 일류라는 자부심
고미술을 통해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건 예를 들어 이렇다. 오원 장승업이 활동한 시기에 유럽으로 가면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약하던 시기는 또한 조선 세종 때였다. 이렇게 시대별 동서양 비교를 통해 시대와 사회상 등을 관찰하면서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한다. 고미술을 공부하는 이 대표의 학습법이다.
그는 도자기 하나를 꺼내 들며, 천년의 역사를 도자기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명심해야 할 게 세계사적으로 우리 도자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기죽지 않을 문화재적 가치와 최고의 우월성이 있다는 겁니다.”
10세기 말 고려는 중국 송나라(960~1279년)의 도자 기술을 전수 받아 청자를 만든다. 이것이 널리 알려진 바라면, 이 대표는 숨은 1인치 스토리를 덧붙인다. “중국에서 비취옥을 만들려 하는데, 고려 사람들이 기술이 좋고 고려국의 대토(도자기 흙)가 남다르거든요. 중국이 돌가루를 갈아 점도를 높이고 변형 없이 단단한 도자기를 만든다면, 우리는 흙으로 빚었어요.”
그는 탁자에서 도자기 하나를 들어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보면 반듯한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 도자기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요. 중국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은은한 빛을 내죠.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음각을 해서 상감청자를 만들었어요. 고려인들이 청출어람을 한 것이죠. 송나라 황제 능에서 고려청자가 출토됐거든요. 중국 사신들이 왕명을 받아 와서 가지고 간 거예요. 이런 사실은 잘 몰랐죠?”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와 조선 후기의 분청사기까지 쉼 없이 천년의 도자사를 설명하던 이 대표는 “지금의 우주산업을 능가하는 하이테크놀로지가 청자 굽는 기술에 있었다”며 “11~12세기 세계사적으로 송나라, 그 뒤의 베트남을 제외하고 세라믹을 구울 수 있는 곳은 없었고, 우리는 중국과 달리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기, 중세시대를 지나던 유럽도, 그때까지 도자기가 생산되지 않았다.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 부르는 조선 찻사발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돼, 일본에서 국보의 가치를 지닌다. 칼을 만지는 사무라이들이 마음의 평안을 위해 다도를 즐겼는데, 이도다완은 여러 그릇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일본의 도자기는 돌가루로 빚어 열전도율이 높은 반면 조선 도공들이 웅천 흙으로 빚은 그릇은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촉감을 준다고 한다. 이 대표는 최근 한 지인의 별장에서 이도다완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이도다완을 들여왔는데, 포장을 열고 닫는 데만 30분이 걸렸어요. 우리는 개밥그릇이라 불렀던 것에 서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미감을 발견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뒤늦게 그것을 알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차를 끓여 마셔보고, 온몸으로 그 의미를 느껴봤어요.”
이렇게 역사적 배경과 가치를 알고, 수집하면서 직접 손 안에서 만져보고, 차와 술을 따라 마시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고미술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컬렉터의 맛이라고 한다.
이 대표가 고미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뜻을 함께하는 ‘도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이소회, 예사모(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등의 이름으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애호가와 전문가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우복 전 대우그룹 부회장,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신성수 고려산업 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이 대표적인 도반들이다. 자주 모여 서로 공부한 내용을 나누고, 또 개별적으로 수집한 고미술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품평회도 연다. 옛 가마터를 찾아가는 등 국내외 문화 탐방도 도반들과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고.
“안목을 높이는 일이 쉽지는 않거든요. 함께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자극도 줄 수 있는 도반을 가까이 둬야 산지식을 얻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쌓은 자신의 안목을 통해 직접 컬렉션을 해보는 게 가장 큰 공부라고 한다. 값을 치르기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시대나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고미술로 아트 경영…매출 5배 상승
고등학교 시절, 수석에 빠져 컬렉션을 시작한 이 대표는 점차 도자기, 고서화, 석물 등으로 수집의 대상을 확장해 왔다. 지금까지 사들인 고미술만 수천 점이다. “300~400년 쓰인 편지 한 통을 통해서도 그 시대에 어떤 병이 유행하고, 가정에선 무엇을 했고, 사람들은 무엇을 입었는지 등을 유추할 수 있어요. 상당히 가치 있는 학문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데 영감을 주죠.”
처음엔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경영에 접목하게 됐다. 호텔을 운영하는 오너로서, 타 호텔과 차별화된 전략을 아트 경영에서 찾게 됐다. 호텔 안팎에 뮤지엄을 열고, ‘뮤지엄 속에 호텔, 호텔 속에 뮤지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아트 경영을 실천한 뒤 호텔 매출은 이전에 비해 약 5배 상승했다.
최근 이 대표는 고미술과 컬렉션을 주제로 하는 외부 강의도 나서고 있다. 또 서예 작품을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100대 서예가를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수집해 후에 전시도 열 계획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간찰을 번역해 책으로 낼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조상들의 기록이자 자손들에게 보배가 되는 인생의 지혜인데 이것을 버리고 우리가 온고지신을 할 수 없거든요. 지금까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끌림의 미학’을 따라왔고,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파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이상준 대표는…
1957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대우통신과 동아알루미늄을 거쳐 1999년부터
호텔 프리마 서울 대표이사로 경영을 맡고 있다. <김정희의 글씨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이상준 대표가 최근 추사 김정희의 한 족자를 두고 그만의 해석을 내놓았다. 내용인즉슨 ‘추사 말년에 불교에 귀의했다’는 것. 이 대표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摩訶毘 雜色寶華嚴 吉帝 略文字禪雲”
마하비 잡색보화엄 길제 부처께서
뜬구름 같은 문자선(文字禪)을 다스리시다.
‘마하비(摩訶毘)’에서 ‘마하(摩訶)’는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며 ‘비(毘)’는 빛, 광명의 뜻으로 여러 부처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이다. 잡색보화엄(雜色寶華嚴)은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의 한 구절인 “저 위쪽 여러 세계에 계시는 범음불,…잡색보화엄신불,…등 헤아릴 수 없는 부처들이(上方世界 有梵音佛,…雜色寶華嚴身佛,…如是等 恒河沙數諸佛)”에서 나오는 부처를 말하며, 길제(吉帝) 역시 ‘신아비길리지제(辛阿毘吉利地帝)’라는 부처를 일컫는다. <법화경>, <묘법연화경> 등에서 이 이름이 자주 발견된다. 문자선(文字禪)은 글을 통해 선학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문장의 속뜻을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뜬구름 같은 문자선을 다스리신다’ 또는 ‘부처 앞에 지식, 학식은 한없이 작아진다’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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