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는 개인과 지역사회의 상호작용 결과다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 석좌교수] 인간의 장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장수도(長壽度)의 증가를 보면 장수의 결정 요인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 변화와도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에서도 20세기 초에 평균수명이 50세에 불과했던 것이 20세기 말에 80세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인간 수명의 사회적 요인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발전 요인 중 20세기의 단 100년 만에 수명 증가를 급속하게 증가시킨 요인에 대한 학계의 분석은 매우 다양했다.
1999년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개최한 ‘인간의 수명 증가 요인’ 학술대회에서 제안된 결론은 20세기에 이룬 상하수도 관리, 전기 활용, 의료 발전 등으로 요약됐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즉, 인간의 평균수명 증가에는 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최대 수명 증가의 패턴은 크지 않았다. 125세 한계설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이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현재의 환경적 개선이나 의료적 처치 방법만이 아닌 개체의 유전자부터 생리적 기능을 보완하는 장치의 부착이 필요하다고 제안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백세인 연구에서 밝혀진 장수에 기여한 개인과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개인적인 요인으로는 사람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정리해보면 건강, 일, 사랑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건강은 나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해주고, 일은 돈도 벌고 생존과 번영의 바탕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가도록 해주며, 사랑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정을 주고받고 하면서 사람다운 삶을 향유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장수를 위해서 이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고르라면 무엇보다도 건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의 소중함을 오로지 건강이 훼손돼 고통과 불편을 겪게 됐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건강은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남의 탓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지속적인 삶, 변함없는 생명을 책임지고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건강의 일차적 책임은 바로 당사자 개인에게 있다. 백세인들은 바로 이 점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백세의 노구에도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노력이 바로 백세장수의 기본 충분조건이 된다. 이러한 개인적 노화(private aging)는 개개인의 책임이다.
장수도, 지역 간 차이 상당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건강에 지역사회가 지켜야 할 의무도 있다. 사람이 혼자만 잘한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한 가정, 건강한 직장, 건강한 마을을 주창함으로써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개인과 지역사회의 노력의 결정체는 바로 지역 주민의 장수도로 표출되고 있다.
장수도를 비교해보면 지역 간의 상당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세인의 비율이 군 단위를 기준으로 해 인구 10만 명당 30명이 넘는 장수 지역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명도 없는 단명 지역도 있다. 지역의 장수도를 65세 이상 주민 중 85세 이상 노인의 비율로 비교해보면, 그 비율이 8% 이상 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4%도 되지 못하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장수가 지역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별로 장수도가 높은 곳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평야나 해안 지대보다는 중산간 지방이 장수한다. 기후가 온난한 지역의 장수도가 추운 지방보다 높다. 가난한 지역보다는 중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곳의 장수도가 높다. 그뿐만 아니라 도로망, 상수도 등의 사회 안전망이 적절하게 갖추어진 곳의 장수도가 그렇지 못한 지역보다 높다. 보다 깊이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습관들을 비교해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게 된다.
환경적, 생태적 차이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문화적, 사회적 생활 패턴의 차이점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족 간의 관계, 부부 관계, 이웃 관계를 비롯한 관계망의 차이는 물론, 식생활 특성, 일상생활 패턴이 지역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러한 차이가 장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구례, 곡성, 순창, 담양을 지적해 ‘구곡순담 장수벨트지역’이라고 명명했다. 이렇듯 지역의 문화, 풍습, 생태환경에 영향을 받는 지역의 노화 패턴을 공중노화(public aging)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개인들의 건강을 극대화해 장수로 이끌어 지역사회를 건강장수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는 개인은 개인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야 하고 지역사회는 지역사회대로 환경, 생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점을 해결하고 개선해야만 생명이 소중하게 대접받고 인간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장수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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