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달러 가치’를 줄다리기하고 있다. 강(强)달러를 끌어내리려는 트럼프와 올해 최대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며 매의 발톱을 내보인 옐런의 기싸움에 금융 전문가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슈퍼 달러’의 흐름이 크게 꺾였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러가 너무 강하다”며 노골적인 약(弱)달러 공세를 펴면서다. 연초 121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2월 14일 1130원대까지 밀렸다. 더 큰 문제는 방향성이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 10원 이상 큰 폭으로 등락하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옐런 의장의 노선이 엇갈린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변국을 위협해 달러 약세로 몰아가면 옐런 의장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매파적 발언으로 다시 달러 가치를 끌어올렸다. 과연 춤추고 있는 환율의 방향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한경 머니가 은행, 증권사, 선물사 등 국내 금융 전문가 12인을 대상으로 ‘2017년 원·달러 환율 전망’을 조사한 결과 “트럼프 쇼크가 진정되면 달러화 강세로 선회할 것”(75%)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이에 반해 “중장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은 25%에 그쳤다. 현재 환율이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 정책 변수에 요동치고 있는 국면이지만, 4월 환율조작국 지정과 프렉시트(Frexit: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등 유럽의 정치 불안이 진정되면 다시 펀더멘털 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연내 저점으로는 12명 중 7명이 ‘1100원’을 하방 지지선으로 예측했다. 1100원대 초반에 이를 경우 달러 매수의 기준으로 삼을 만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점으로는 대체로 1200~1230원에 의견이 모아졌다. 일부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연내 1300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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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강세 여전히 유효하다"
“약달러는 트럼프 100일 효과”
앞으로 달러화의 강세 국면 전환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2017년 환율시장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로 미 Fed의 금리 인상을 꼽는다. 트럼프 대통령보다 옐런 의장의 ‘발언’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약달러 정책으로 인한 환율 하락은 ‘일시적 쇼크’로 해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들이 달러화 전망에 노이즈를 낳고 있다는 것. 그러나 시장 환경의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트럼프의 ‘입’이 달러화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센터장은 “최근 달러 약세는 트럼프 취임 100일 효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 큰 축의 변화가 없고 제2의 서브프라임 시그널처럼 충격이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순 없다는 지적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취임 초기 보호무역 강화 정책으로 일시적으로 달러화가 약세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2분기 중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 달러화는 강세로 선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으로는 달러 약세를 말하지만, 그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오히려 달러 강세를 유발할 요인이 많다. 진유경 한국씨티은행 여의도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재정 지출 확대 및 통화 긴축이라는 정책 조합은 미국 금리 상승 및 달러화 강세를 견인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미국의 경기 개선도 달러 강세 요인으로 꼽힌다. ‘잘나가는’ 국가의 화폐가 강세를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환율시장을 좌우하는 4대 통화는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유럽 유로화인데, 미국의 경기가 단연 돋보이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달러 강세’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달러화 매수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 이후 미국이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기준금리와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올라갈 수 있다”며 “하반기 달러 강세를 염두에 둔다면 3월 이전 원·달러 환율이 연중 저점인 1100원에 도달할 무렵이 달러 매수의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올해 ‘핵폭탄’급 달러 강세 재료는 북한 리스크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일의 경우 환율조작국 지정보다 충격파가 훨씬 거셀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마찰로 한반도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달러 가치는 거침없이 뛰고 원화 가치는 추락할 것이라는 견해다. 박승안 센터장은 북한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원·달러 환율 1200원 이상을, 박정우 연구원은 1300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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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약세를 대비하라"
“금리 인상 시장에 선반영돼” 금리 인상 기대, 프랑스 대선(4~5월),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구제금융 등 유럽 정치 불안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이어지며 달러 약세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약달러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안 요소들이 상반기에 집중돼 있음을 주목한다. 유럽의 정치 이슈가 별탈 없이 넘어가고 트럼프노믹스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하반기에는 달러화 약세가 좀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상반기에는 경기 부양 요인이, 하반기에는 보호무역주의가 우선시돼 연말에는 110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최근 달러 약세가 가파르게 나타나 속도 조절은 있겠으나 하반기에는 원·달러 환율 1100원 선도 깨질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좋지만 원자재 시장에서도 공급 과잉이 완화되고 있어 신흥국 통화 가치가 상승할 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금리 인상 요인은 이미 시장에 선반영 돼 있다는 관점이다. 박해영 KEB하나은행 압구정역PB센터 PB팀장은 “미국은 환율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고 우리나라도 기업 실적이 나쁘지 않아 환율이 아래쪽으로 1100원 선까지는 열려 있다”며 “달러 강세 요인인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는 이미 반영돼 있어 급격한 금리 인상이 아닐 경우 하반기에는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투자 키워드는 ‘변동성’
종잡기 힘든 외환시장에서 주목할 건 변동성이다. 박해영 PB팀장은 “돌발성의 시대를 맞아 환율에 대한 선제적 대응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확한 전망보다 신속한 대응이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근래 하루 10원씩 등락을 거듭하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자산가들의 문의가 빗발친다고. 급락하는 시점에 매입했다가 20~30원이라도 오르면 매도를 반복하는 것. 환율은 급락한 뒤에는 반대급부로 올라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달러 매매로 인한 환차익은 비과세이니, 오래 가지고 있기보다 방망이를 짧게 가져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대체로 1100~1150원 부근에선 분할 매수를, 1200원 접근 시 분할 매도를 추천했다.
달러 강세 혹은 약세를 예측한다 해도 어느 한 방향에 대한 투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진유경 한국씨티은행 여의도지점 PB는 “달러 강세와 약세 상품을 아울러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 강세 추이가 이어질 때는 보유 중인 달러는 분할 환전하고 일부는 달러로 투자할 수 있는 역외펀드로 보유하는 전략을 추천했다. 환차익만 기대하는 경우에는 원화예금이 간편하지만, 달러로 자산을 보유하겠다는 경우 역외펀드로 통화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 진 PB는 “해외 펀드가 3000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있음에도 통화 분산 차원에서 달러로 된 상품에 가입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달러 약세로 전환했을 때는 포트폴리오 위험관리 측면에서 음의 상관관계를 지닌 금을 고려할 만하다. 금리와 달러 가격은 금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환차익을 넘는 고수익을 원하는 경우 이자가 거의 없는 달러예금보다 달러 관련 고수익 채권을 살펴보는 게 좋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기우 센터장은 “달러는 1150원 미만에서 투자하는 것이 좋은데, 달러로 환전해 입출금통장에 보관하기보다는 달러 주가연계펀드(ELF, 연 3~5%) 또는 달러 하이일드채권(연 5% 내외)이나 달러 대출채권(연 4% 내외)에 투자하면 5% 내외의 수익이 가능하고 환차익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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