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불확실성이다. 비단 투자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예측하려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뿐,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은 당연히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투자 의사결정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는 매우 다양하지만, 지금의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2008년 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주로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이에 따라 저금리 환경은 장기간 지속되고 있으나, 성장세 역시 크게 확장되지 못한 채 전반적인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좀 다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가 글로벌 전반의 위험 선호를 이끌고 있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재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이머징마켓(EM) 국가들과 일본, 유럽까지도 경기 부양을 위한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하다. 그러나 이 상황의 지속 및 성공 여부는 여전히 정책 이벤트에 달려 있다.
현시점에 투자와 관련해 점검해야 할 정책 이벤트는 크게 세 가지다. 트럼프의 정책 방향성, 브렉시트 이슈, 중국의 정책 기조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고려 사항들이 있지만, 이러한 이슈들과 관련이 있거나 파생된 이슈가 대부분이다.
① 트럼프의 시대, 전환(pivot)의 기로
트럼프는 취임사를 통해 모든 무역·세금·이민·외교정책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했다. 취임 직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재협상을 주장하는 가운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보호무역주의로 전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반이민법에 대한 행정명령 등 빠르게 본인의 선거운동 시절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주로 경제정책이 아닌 경제 외 정책들에 대한 입장 표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취임 이후 시행한 보호무역주의 및 반이민정책 관련 행정명령에 의해 불확실성이 대두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적극적인 공약 이행 의지로 해석되면서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기대감 또한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인프라 투자 확대, 감세, 금융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로, 미국 주식시장은 견조한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대체로 100일 이내에 구체적 정책을 제시했던 경험을 되돌아볼 때 트럼프가 제시한 6대 국정 과제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며 당분간 기대감이 유지될 수 있다.
② 브렉시트, 유럽을 자극
연초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유럽연합(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선언했다. 그리고 2월 첫날, 영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브렉시트 발동안은 의회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메이 총리는 3월 말까지 EU 탈퇴 방침을 통지했는데, 지금의 분위기대로라면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경제지표가 오히려 견조한 양상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를 반영해 2월 정례 통화정책위원회에서 영국은행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 제시한 1.4%에서 2.0%로 대폭 높이는 한편, 기준금리와 자산 매입 한도 역시 동결로 유지했다.
아직까지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돼 실제 EU와 영국의 협상이 진행되면 그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 내수 소비 등이 둔화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유럽은 여전히 취약한 경제 성장을 보이는데 브렉시트와 관련해서 주목할 부분은 유로존 내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 정치적 이벤트가 다수 예정돼 있어 올해 역시 유럽의 정치적 리스크 부분은 반드시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
③ 중국, 성장보단 안정 선택
지난 1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는 시진핑 지도부가 2017년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6.5%로 낮출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2017년은 온건한 성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공급 측 구조조정을 심화할 것임을 시시한 바 있는데,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뉴스로 판단된다.
2016년 GDP 성장률은 6.7%로, 정부 목표치였던 6.5~7.0%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 올해는 구조조정 및 부동산 규제로 인해 이보다 낮은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나 최소한 6.5% 성장률은 지키려는 정책 조합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시진핑 정권 2기의 시작점으로 안정적인 경제 성장 및 구조조정 완성을 위해 지난해에 비해 재정·통화정책은 중립적인 수준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있지만 미국의 보호무역, 자금 유출 압력 및 구조조정에 대한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 이벤트까지 감안한 올해의 경제 환경을 전망해볼 때 현시점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리플레이션 환경이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기 회복을 수반하는 물가 상승 기대가 높아지는 환경. 위험 선호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정책 이벤트를 전제로 하는 전망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론적 검증을 거친 경기 사이클 관점의 전망이 아닌 정책 이벤트에 근거한 기대감은 예상치 못한 어떤 이유로든 한순간에 방향을 달리하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인위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며 결과다. 따라서 기대감에 편승해 자산을 한곳에 베팅하는 무모함은 여전히 경계해야 할 투자 판단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여전히 포트폴리오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균형감은 투자 손실을 방어하는 최선의 장치다.
한태희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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