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다 독립을 했으니 난 이제 졸혼을 하려고 해. 신나게 내 인생을 살아볼 거라고.”
“난 벌써 졸혼을 한 거나 진배없어. 벌써부터 남편과 나는 각방을 쓰고, 밥도 자기 먹고 싶은 때 먹어. 누굴 만나든, 언제 들어오든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
최근에 시니어들 사이에 학제의 졸업처럼 결혼을 졸업한다는 ‘졸혼(卒婚)’에 대한 이슈가 활발하다. 결혼에서 해방된다는 뜻으로 해혼(解婚)이라 부르기도 하는 ‘졸혼’은 원래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그의 소설 <졸혼을 권하다>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부부가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뜻한다. 대체로 자식들이 대학 졸업이나 결혼으로 독립해 나가면 ‘졸혼’의 방식을 택하는데,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아마도 여전히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결혼 안에서의 책임이 과중한 탓이겠다. 졸혼 안에서 부부는 아직 배우자로서의 감정적 유대는 남아 있고, 같은 집에 함께 살면서도 각자의 사생활, 취미를 존중해 더 이상 부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혹은 각각의 거처에 따로 독립적으로 살면서 집안의 생일이나 대소사 등 행사를 함께 챙기기도 한다.
대개 60~70대 부부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졸혼’의 형식은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를 깨지는 않지만, 결혼에서의 의무를 더 부담하고 싶지 않고 제2의 독립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오래된 부부들의 열망에서 비롯된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이는 기대수명의 증가로 결혼생활이 전보다 훨씬 길게 연장되면서 양육공동체로서의 끈끈한 결속이 끝나게 되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그동안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해온 나 아닌 가족에의 ‘희생’에서 벗어날 구실을 찾다가 만들어낸 새로운 해결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 시작된 ‘졸혼’ 외에도 스웨덴에는 이와 비슷한 ‘사보(sarbo)’라는 결혼의 대안이 있다. 사보는 자식들을 독립시킨 부부가 각자의 거처에 따로 살면서 배우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서로는 각자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가끔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또 가족의 생일이나 대소사를 함께 챙기기에 독립된 자식들로서는 부모가 이혼하는 것보다는 정서적인 부담이 덜하다. 이 사보는 부부뿐 아니라, 싱글 남녀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배우자 역할을 하는 결혼의 대안으로 발전하고 있다.
◆‘늘 함께’ 대신 ‘따로 또 같이’ 산다는 것
’늘 함께‘의 결혼과 달리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따로 또 같이(living apart together)’ 사는 것이다. 이것은 여자에게는 결혼에 따르는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전통적인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한편, 남자에게는 재산문제에서 자유롭게 하는 일종의 전략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졸혼을 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한없이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형태인 졸혼은 이혼처럼 이제 부부가 아니라는 각오를 하고, 서로를 어떤 식으로든 구속하지 않겠다는 쿨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어렵다. 왜냐하면 졸혼 안에서 서로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사생활의 자유이지만 어쩌면 졸혼의 가장 큰 매력은 ‘배타적 사랑의 부정’, ‘로맨스의 회복’으로 결국 ‘개방결혼’의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졸혼의 관계에서 서로 사생활의 독립을 보장한다면 서로의 연애, 섹스 등 애정생활에 전혀 감정이 흔들리지도 간섭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내가 그 로맨스의 주인공이라면 모르지만, 나는 아닌데, 상대가 로맨스에 빠져 있다면 아주 포기한 상대가 아닌 다음에야 질투라는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 십상이다.
60세가 넘어 무슨 질투냐고 웃을 수 있겠지만, 실제 80세가 넘은 부부도 질투 때문에 심한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것이 내 문제가 되면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졸혼을 하려고 할 때 부부가 서로 진지하게 그 범위와 조건을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법적으로 이혼은 하지 않았더라도 재산을 반으로 나눠 각자의 명의로 해 일단 경제적인 독립이 돼야 심리적인 독립도 쉬워진다. 또 현재도 뭔가 수입을 만들어내고 전념할 만한 보람된 일이 있어야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 시간을 꾸리고 나아가 자기의 독자적인 제2의 인생이 가능해질 것이다.
상대가 사랑에 빠진다면 그 뒤늦게 빠진 사랑 때문에 경제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졸혼을 하기 전 반드시 서로의 경제적 상태를 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갈등의 원인을 없애는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는 독립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심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남편과 아내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 왔던 부부가 혼자 살게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다가 둘이 되는 것도 힘들지만, 둘이 살다가 혼자되는 것도 쉽지 않다.
셋째는 자신이 혼자 아플 때 배우자 말고도(그/그녀에게 애인이 생겼다면 내가 아파도 그때 도움을 못 받을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할 친구들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원했던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갈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결혼제도는 무용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결혼제도의 구속력이 점점 미약해질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래도 같이 살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함께 서로를 보살피며 사는 것에는 많은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생각한다. 졸혼보다는 오히려 오랜 결혼 안에서 친구이며 동반자가 된 부부가 이제는 좀 더 의무와 책임의 울타리를 넓혀서 상대가 그 안에서 더 자유롭게, 또 각자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었던 인생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민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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