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일 터. 하지만 자신이 평생 일궈 놓은 기업의 영광을 무한히 원하는 것이야말로 오너라면 누구나 애타게 바라지 않을까. 그 간절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자들이 은퇴 전 대비해야 할 기업 경영 전략을 짚어보자. 기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로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와 노년기를 거쳐 사망에 이르는 것같이 기업도 창업을 해서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를 맞는다. 이와 같은 기업의 성장 과정을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30~40대에 창업을 하는 경우 은퇴를 앞둔 60대가 되면 대부분 성숙기나 쇠퇴기에 이르게 된다.
이때가 되면 대부분 성장기를 이끌던 폭발적인 열정은 사라지고 기업가적 활동도 감소한다. 그래서 대부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현재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며 지속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이 변화를 거부하고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쇠퇴기로 접어들어 유명무실해진다. 기업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창업자가 60대에 접어들면 기업의 다음 단계를 대비해야 한다. 여기서 다음 단계란 라이프사이클에서의 단계가 아니라 창업자의 은퇴 후를 의미한다. 즉, 창업자가 자신의 은퇴 후 기업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하는 점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오너의 선택 1 출구전략인가? 계속기업인가?
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창업자들은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의 미래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하고 스스로 질문을 해보라. 더 이상의 능력도 없고, 환경의 변화를 감당할 만큼 젊지도 않으니 손을 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없더라도 평생 동안 이루어 놓은 기업이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유지되길 바라는가? 물론 이러한 질문은 40대든 50대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기업이 쇠퇴기로 접어들어 유명무실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경영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2가지다.
첫째, 후계자를 잘 훈련시켜 대를 이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아주 일찍부터 후계자를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하고, 미래에는 자신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성숙기에 승계에 성공해서 재도약을 하는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이미 성장기 때부터 새로운 제품이나 자회사 인수, 해외 진출 등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기업들이다.
즉, 기업이 한창 잘나갈 때에도 자만심을 갖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는 제품의 라이프사이클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하나의 제품이나 기술이 수명을 다하면 대체되는 제품이나 기술로 갈아타야 기업의 생존이 보장된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그것을 준비하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얼마나 앞서 투자하고 그 시간을 인내하느냐 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려면 능력 있는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경영 철학, 신념, 기업가 정신 등을 계승하고 다음 세대에게 위험을 넘기지 않는 전문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사전에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자신을 이을 후계자가 없거나 후계자의 능력이 부족해 기업을 재성장시킬 자신이 없다면 출구전략(exit plan)을 세우는 것이다. 출구전략이란 기업을 매각하거나 합병, 폐업 또는 상장 등을 통해 기업을 현금화하고 기업에서 손을 떼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가장 보편적인 출구전략은 대부분 인수·합병(M&A)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전략을 염두에 둔다면, 은퇴를 바로 앞에 두고 고민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 쇠퇴기에 접어든 기업이나 라이프사이클이 짧고 기술력이 필요한 정보기술(IT) 기업의 경우 시기를 놓치면 기업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져 매각하기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창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창업자의 건강 상태나 의지, 활동력 등을 감안해 기업이 잘나갈 때 또는 늦어도 쇠퇴기에 들어가기 전 성숙기 단계에서 M&A를 검토해야 한다.
매수자 입장에서 본다면 미래 성장성이 있으면서 현재 가치가 있는 기업을 사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있다가 은퇴를 앞두고 기업이 매각되지 않아 폐업하는 사태가 점차 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평생을 함께 일했던 임직원들의 일자리까지 없애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던 기업을 그렇게 끝내고 싶은 경영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하게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바람과 다른 일을 겪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너의 선택 2 전문경영인가? 가족경영인가?
대부분의 오너경영자들은 후계자로 외부인보다는 자녀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기업을 대물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껏 족벌경영,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주가 조작이나 탈세 등 장점보다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기업체를 개인 소유물로 여기고 유산을 상속하듯 승계하는 모습들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워 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구성원들과의 공동 재산으로 인식하고 경영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과연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과 가족 중 누가 더 후계자로 적합할까? 경영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만일 아래와 같은 후보군이 있다면, 당신은 이들 중 누가 후계자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 충분한 능력이 있는 아들 또는 딸
•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위
• 충분한 능력이 있는 내부 관리자
• 능력이 특출한 외부 전문경영인
• 능력 없는 자녀
답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외부의 능력 있는 경영자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으로, 검증 안 된 가족보다는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외부 경영인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족 중에서 후계자를 선발하자는 의견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가족기업은 그 기업만의 고유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암묵지(暗默知)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식과 오너의 경영 철학, 가치관은 외부인이 아닌 가족에게 전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기업에 대해 보고, 듣고 자라므로 기업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자연스레 갖추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가족이 외부인보다 유리하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가족기업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어떤 가족기업이 그 기업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후계자로는 능력 있는 아들이나 딸이 가장 적합하다. 설령 외부에 더 뛰어난 후보자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자녀에게 승계할 여건이 안 된다면? 그다음으로 적합한 후보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위’다.
일본에서는 아들이 능력이 없거나 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 데릴사위에게 가업을 잇게 하는 전통이 있다.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이 3대까지 존속하는 비율이 극히 낮은데도 일본에는 100년 넘는 기업이 약 5만 개, 200년 넘은 기업이 3000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가족기업이 수세기에 걸쳐 생존하는 이유는 바로 데릴사위제도에 있다.
만일 자녀나 사위 등 가족 내에서 승계가 불가능한 경우, 그다음으로 적합한 후계자는 능력 있는 내부 관리자다. 이들은 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암묵지와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외부인보다 후계자로 더 적합하다. 그런데 가족이나 회사 안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때는 외부인을 후계자로 선정하는 것이 좋다.
만일 기업 규모가 작아서 외부에서 능력 있는 경영자를 영입할 수 없다면, 억지로 능력 없는 후계자에게 맡기기보다 차라리 기업을 매각하거나 M&A 등을 검토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다. 이 경우 직원들의 일자리가 보존될 가능성이 커지고, 만일 매각 대금으로 자녀들이 원하고 잘하는 분야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도록 돕는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실제 능력 없는 후계자가 사업을 맡아 기업뿐만 아니라 후계자의 인생까지도 망가진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므로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녀라는 이유로 기업을 승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기업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자원이 충분하고 지식을 조직화할 수 있으므로 자식들보다 더 유능한 외부 인력이 있다면 외부의 전문경영인을 선발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볼 때 중소기업의 경우 자녀에게 기업을 성공적으로 계승할 수 있도록 후계자 선발과 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오너의 선택 3 부의 대물림인가? 책임의 대물림인가?
부모가 현재 운영하는 기업을 팔아서 자녀들에게 현금으로 나누어주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해보라고 하는 것과 가업승계를 통해 기업을 유지하고 직원들의 고용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 중 후계자들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더구나 그 기업이 창업한 지 30년 넘어 성숙기나 쇠퇴기에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어떨까?
기업을 놓고 형제간의 법정 다툼도 불사하는 대기업과는 달리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의 후계자들은 아마 전자를 선택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고 곱지 않은 눈으로 보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녀들이 기업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해서 세대교체의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꽤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기업을 물려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할까?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부동산이나 현금성 자산을 상속받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수많은 직원들과 그들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 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유형자산 등 기업은 유기체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 또한 그 안에는 오너 개인의 사적 자산을 담보로 한 부채도 있고, 급격한 외부 환경의 변화라는 위험요소도 동시에 존재한다. 더구나 대부분의 승계 기업들은 성숙기나 쇠퇴기에 놓여 있어 후계자가 기업을 맡아 제2의 도약을 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가업승계를 한다는 것은 기업을 맡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든지 생존시켜야 하는 과중한 책임을 맡는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후계자들을 만나보면 승계를 부를 이어받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모가 이루어 놓은 기업을 자신의 대에서 지켜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하는 창업자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생을 바쳐 이루어 놓은 기업이 계속 기업으로 이어가기를 원한다. 결국 가업승계를 한다는 것은 바로 부모세대의 기업가 정신과 책임을 이어가겠다는 자녀세대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표현보다는 ‘책임의 대물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기업가는 혼자 먹고 살기도 빠듯한 시대에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직원을 고용해 그들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각종 세금을 내는 등 국가적으로 큰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지속돼야 한다. 후계자들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이어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에게 후계자로서 회사를 발전시켜야 하는 대의명분을 심어줘야 한다. 후계자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안정적인 경영을 통해 사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그들이 가족과 함께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후계자가 겸손한 마음자세로 간부를 비롯한 사원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후계자 역시 회사를 맡기로 결정했다면 이 일은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면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정신력이 없으면 경영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글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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