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흔히 인간의 3대 욕구로 식욕, 성욕, 수면욕을 꼽는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탈것을 향한 ‘질주욕’도 빼놓을 수 없는 본능 중 하나일 터. 그중 바이크(오토바이)는 터프가이의 상징이자 남성들의 질주 본능을 충족할 수 있는 가장 화끈한 애마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일까. 나이와 상관없이 남성들의 바이크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듯하다. 다가오는 노년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박민우(50) 씨의 뜨거운 바이크 사랑을 따라가 봤다.
“아내와 바이크로 전국 질주하는 것이 꿈”
첫인상부터 말투, 성격까지 필자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투박한 턱수염, 온몸을 감싼 블랙바이크 의상에서 짙은 남자의 향기가 배어났다. 소위 ‘터프가이’라고 통칭하는 표현이 그에게 꼭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바이크 마니아 박 씨의 첫인상이다. 이제 갓 50세에 접어든 그는 현재 이름도 아름다운 ‘백수’다.

하지만 요샛말로 ‘갓수(god+백수의 합성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터. 그는 2014년 12월 중국에서 10년간 일궜던 기계부품 사업을 접고, 덜컥 무직의 길을 선택했다. 사업 경영상에 특별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갑작스런 부친의 죽음이 그에게 삶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된 것.

“10년간 운영한 사업 전부터 정말 일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하루 3시간 자고 일만 했을 정도니까요. 돈은 정말 많이 벌었죠. 모든 가장들이 그러하듯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게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투병생활 끝에 2014년 10월 갑자기 돌아가신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아버지 생전에 곁에서 더 많이 함께 해드렸어야 하는데 특별한 추억도 없이 이별을 맞이한 거죠. 그때부터 우울감에 시달렸고, 고민 끝에 모든 일은 접고 쉬었어요. 아내의 권유로 심리상담도 3개월간 받았지만 도통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고통의 시간이었죠.”

바이크 통해 ‘자기만족’ 느껴
결국, 그는 2015년 3월 캐나다에 거주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한국에서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다. 캐나다는 그에게 좋은 쉼터가 되지 못했다는 것. 그 대신 그는 혼자 집에서 책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막연하게 해보고 싶었던 바이크 동호회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현재 소속된 ‘프리로드’에 가입하게 됐다. 회원 수 67명의 이 동호회는 ‘금녀의 모임’인 것 외에도 가입 조건이 더 있다. 일단,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한 자여야 한다.

국내 이륜차 면허는 원동기장치 자전거와 2종 소형 면허 등 2가지로 구분되는데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면 배기량 제한 없이 이륜차 운행이 가능하다. 자동차 면허와 마찬가지로 이륜차 면허도 시험을 보기 전 안전교육이 필수다. 면허시험장에선 등록 후 1시간, 학원에서는 5시간 안전교육을 시행한다. 학과시험은 면허시험장에서 개인용 컴퓨터(PC)로 진행된다. 이후 치르는 기능 코스는 굴절, S자, 좁은 길, 장애물 구간 등으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개 굴절과 S자 코스 난이도가 쉽지 않아 낙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한다. 2종 소형 면허를 소지했다고 다 가입되는 건 아니다. 바이크를 최소한 500km 이상 달린 경험이 충족돼야 가입할 수 있다. 한 달의 두 번씩 있는 정식 투어 때에도 절대로 법규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이 동호회의 가장 중요한 수칙이다.

“바이크를 타서 가장 좋은 게 자연을 벗 삼아 달리다 보면 저도 모르는 새 정말 행복함을 느끼게 돼요. 완전한 자유랄까요. 무엇보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벅찬 감동을 느끼죠. 또한 외견상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정식으로 바이크를 즐기는 분들은 굉장히 질서나 매너를 중요시 여기거든요. 안전 문제도 있고, 서로에 대한 예의가 지켜져야 장기 투어를 할 때도 모두가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좋아하는 바이크도 즐기고, 함께 여행도 하니 끈끈한 연대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바이크 라이딩을 통해 제가 외로움을 많이 극복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바이크로 전국 질주하는 것이 꿈”
물론, 박 씨처럼 바이크를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금전적 투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현재 그가 모는 바이크는 미국 할리데이비스사의 에디션 제품으로 바이크만 5500만 원이다. 하지만 꼭 비싼 바이크를 모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1000만 원대 제품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박 씨의 주장이다.

“바이크는 결국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특히, 40~50대 중년들 중 바이크를 즐기는 분들은 절대적으로 바이크 자체를 정말 타고 싶은 분들이 타거든요. 보면 알겠지만 누가 뭘 입듯, 어떤 기종을 타든 정작 크게 다를 것이 없어요. 자기만족이 가장 중요하죠. 바이크 자체 비용보다 어떤 분들은 튜닝비가 더 비싼 경우도 있어요. 그만큼 자기 개성이 중요하지 누가 더 비싼 바이크를 타고, 비싼 옷을 입는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바이크 라이딩을 통해 박 씨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직도 가끔은 앞으로 남은 긴 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걱정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일에만 파묻혀 살면서 묵인했던 진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하고, 배워 가는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간혹 백발의 노인 부부가 함께 바이크를 타는 걸 보고 멋지다고 느꼈어요. 아직 제 최종 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선 귀농을 해보려 합니다. 3년 뒤 아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함께 바이크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싶습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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