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자존감’이 유행이다
[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자존감이란 단어가 과거보다 일상 대화에서 훨씬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것을 볼 때 자존감이란 심리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자존감과 관련된 서적들이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커져서 이렇게 자존감이란 단어가 뜬 것이라면 좋겠지만 실상은 반대가 아닌가 싶어 서글픈 마음이다.

내 자존감의 강도가 요즘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타인의 충고나 비판에 반응하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충고에도 섭섭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자존감이 약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존감이 삶에 중요한 이유는 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줄 것이라는 자기 확신과 내가 계획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의 혼합물이다. 성취를 해야 자존감이 올라갈 것 같지만 사실은 시작점이 자존감이다. 튼튼한 자존감은 성공 경험에 이르는 지름길이고 그 경험이 자존감을 더 강하게 한다. 또 때론 실패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한다.

반면 성공했는데도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만 강해 보이는 가짜 자존감을 가진 경우인데 항상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고, 관심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도 마음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사람보다 힘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무관심이나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흔히 보인다. 가짜 열등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백화점에나 음식점에서 사소한 일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 하고 분노하는 경우 자존감이 떨어졌을 확률이 높다. 자기 확신이 줄고 자기 불안이 증가하기에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하는 것이다.

열등감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하는 사연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열등감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 이기고자 하는 경쟁 욕구가 있기에, 그리고 이기고만 사는 인생은 없기에, 열등감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이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자존감이다. 입사 1년 차 직장인 사연을 하나 소개하면 실제 업무에는 익숙해져 가고 성과도 있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 직장선배가 칭찬은 없고 열심히 일한 상황에서도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며 기분 상하는 말을 툭툭 던져 열등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기 수용과 긍정적인 관점 갖기
선배의 잘못된 소통이 나에게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느낌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실제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소통으로 실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선배다. 잘못된 소통 방법을 사용한 선배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을 내 자존감과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너무 느낌과 연결시켜 놓으면 오히려 불안정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연인과 헤어지니 자존감이 떨어진다라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정확히는 자존감이 떨어진 상황이 아니다. 연인과 헤어지니 ‘아쉽다’, ‘외롭다’, ‘속상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사랑을 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삶의 소중한 느낌들이다. 어느 누구도 사랑에 있어 긍정적 감정만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자존감과 연결시켜 표현하면 정말 자기 자존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앞 사연으로 돌아가 보면 업무와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며 성공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소통 방법이 좋지 않은 선배 하나가 있어 괴로울 뿐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면 회사에 다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별할 일도 없고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마음 상하게 하는 선배를 만날 일도 없다.

농담이라도 “자존감 떨어져” 같은 말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살아 있는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본질적인 가치다. 실패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속상한 일에 처하고 실패 경험을 한다고 해서 내 본질적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난 소중한 존재다. 그런 자기 확신이 실패를 극복하고 자기 목표에 다다르게 하는 힘이 돼준다.

근육을 키우듯 자존감을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자기 수용과 긍정적인 관점 갖기가 있다. 자존감은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강박적인 완벽주의는 자기 불안의 증거다. 자기 수용은 나와 내 인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누구나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살다 보면 특정 영역에 있어서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기 나름이다. 그때 나도 강점이 있듯이 저 사람도 나보다 잘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인생의 상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의 여유가 자기 수용이다. 그리고 자존감은 주관적인 관점이다. 자기 수용의 여유로움 속에서 내가 가진 긍정적인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할 때 튼튼한 자존감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자기 수용과 긍정적인 관점 갖기 훈련으로 늦은 가을여행을 추천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낙엽을 바라보며 내 삶을 돌아볼 때 역설적인 긍정성의 충전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