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라고 하는 방송을 보면 대개 ‘건강, 음식(요리), 무속’에 대한 것들이다. 특히 ‘먹방’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요리사들이 방송의 주역으로 나서고, 맛집을 탐방하고 소개하고 평가하는 먹방 프로그램은 시청률에 있어서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먹방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이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필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비고 외로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식욕과 성욕을 느끼는 신경중추는 거의 옆에 붙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이 고프면 배가 고픈 것으로 착각을 하고, 마음이 비었는데 엉뚱하게도 배를 채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행복한 사랑을 해보았다면 그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에 그야말로 거의 먹지 않고도 늘 행복하고 배가 부른 듯한 느낌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반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늘 배가 고프고 뭔가 헛헛하고 자꾸 슬퍼졌다는 것도.
필자는 성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자주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이 둘 중 무엇이 더 강한 욕구라 생각느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면 “식욕”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아주 적은 수가 “성욕”이라고 멋쩍어 하며 대답한다. ‘식욕보다 성욕’이라고 답하면 남들이 자신을 ‘아주 성을 밝히는 사람’으로 볼까 봐 그러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식욕’은 자신을 살리는 욕구고, ‘성욕’은 생식, 유전자를 보전하고자 하는 욕구다. ‘식욕’이 없어지면 자기가 죽을 테니 성욕은 그 뒷전이라는 대답이 정답인 듯도 하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만약 내가 10분 후면 죽을 것을 알고 있다면 밥을 먹을까, 앞에 있는 사랑하는 이와 섹스를 할까”라고 바꾸어서 물어보면 좀 더 많은 이들이 “죽기 전 소중한 시간을 밥보다는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채우겠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결국 식욕보다 성욕인가?
◆죽음 앞에 섹스가 간절해지는 이유
왜 죽음을 앞둔다면 섹스가 간절해지는 것일까? 필자는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그야말로 의식되지 않은 본능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 욕구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이토록 번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숙연해진다.
식욕보다 성욕이 더 강하다는 증거는 사마귀나 문어, 연어 등 다른 생물을 봐도 알 수 있다. 연어는 알을 낳고 수정을 해서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향한다. 거친 폭포를 거슬러 가며 헤엄쳐 올라와 결국 하는 것은 산란이고 그 위에 정액을 뿌리는 수정을 위한 활동이다.
또한 문어는 새끼가 알에서 깨어 나와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자라도록 자신을 희생한다. 사마귀는 생식을 위해 사랑을 나누면서 자신의 몸을 암놈에게 제물로 바친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세계에서는 식욕 전에 성욕이라는 생식의 메커니즘이 우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본능은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실제로 ‘전투비행에 나서는 비행사들이 출격 전날 나누는 섹스에서는 정액 속 정자가 확연히 증가한다’거나 ‘자신의 성 파트너가 장기 출장을 다녀와 나누는 첫 섹스에서 정액 속 정자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소설 속에서도 치열한 전쟁 중에 만난 두 남녀가 결국 헤어지기 전에 하는 일은 함께 맛있는 식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독신인구가 많아지고 있지만, 서구의 경우 독신으로 평생을 산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한 나이든 독신남자도 ‘젊어서는 몰랐는데,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나이가 되니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자기뿐 아니라 자기를 낳은 조상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한 것인가’ 하는 회한에 빠지게 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남자뿐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을 주장하는 여자들이 정자은행을 이용해서라도 자기의 아이를 가지고 기르는 것도 이런 본능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책, 성경의 첫 부분이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시리즈로 시작되는 것만 봐도 섹스를 통해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생명을 낳는 생물의 본능을 사람도 신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섹스를 선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섹스가 주는 긴장완화 효과 때문이다. 곧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섹스를 나누고 나면 섹스 후에 분비되는 애착 호르몬, 평화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효력 덕분에 두려움도 얼마간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이 된다.
또 어쩌면 그까짓(?) 배를 잠깐 부르게 하는 밥보다는 나 아닌 누군가와 몸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공감하고 교통하는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즐거움이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우호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때 삶의 기운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가 든든해지는 식욕보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섹스를 택하는 거라 짐작된다.
이렇게 섹스는 후대로 유전자를 남기는 생식의 미덕 외에도 우리에게 ‘함께 살아 있다’는 강한 결속력의 확인과 긴장의 해소,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섹스를 규칙적으로 자주 하는 커플일수록 상대의 감정과 상태에 민감하며 인생에 있어 더욱 행복감과 만족감이 높다. 섹스를 자주 하는 사람은 얼굴빛이 밝고 온화하며 잘 웃는다. 오늘은 일찍이 TV를 끄고, 사랑하는 사람과 뜨겁게 사랑을 나누어 보는 게 어떨까?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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