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한경 머니 이현주 기자│대담 권오준 편집장│사진 서범세 기자] 자수성가형 기업가들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자랑한다. 맨손으로 금맥을 캔 성공 스토리에는 ‘의외의 한 수’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발을 내딛을 때, ‘0’에서 ‘1’을 만드는 창조적 기업의 역사는 시작된다. 황량한 구로공단에 패션 타운의 불을 밝힌 홍성열(62) 마리오아울렛 회장은 그런 점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인물이다. 지난 7월 12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 위치한 허브빌리지에서 홍 회장을 만났다.
불 꺼진 구로공단에 도심형 아울렛을 개척해 연간 3000억 원 매출 규모로 키운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은 건 지난해 12월 연천 허브빌리지를 인수하면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경매에 나온 허브빌리지가 두 차례 유찰 끝에 새 주인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홍 회장이다. 118억 원, 통 큰 베팅. 그는 이를 두고 “계산기 를 두드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내린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패션, 유통에 이어 그가 새롭게 매료된 분야는 바로 가드닝이다. 100여 종의 허브가 향기를 토하는 정원에서 ‘농장장’을 자처한다. 허브빌리지는 연천군 임진강변에 위치한 약 5만7000m²의 체험형 에코 테마파크로, 허브 농장과 펜션이 한 데 모여 있어 가족 단위로 즐겨 찾는다. 공장 지대에서 패션 신화를 쓴 기업가의 눈이 이번에는 포 소리 들려오는 북한 접경지대로 향했다. 그것도 여유 자적한 산책과 힐링이 있는 정원이다. 통일 시대의 관광 연계형 사업 가능성을 내다본 것일까.
홍 회장은 “개인적으로 20년 동안 농장을 운영하면서 가드닝의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 왔고, 마리오아울렛 사옥에도 정원을 꾸밀 정도로 평소 관심이 많았다”며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유럽이나 일본의 고급 정원을 많이 봐 왔는데, 이제는 한국도 정원 문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브빌리지를 통해 한국형 정원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다. 또한 유통, 관광, 교육, 체험을 연계하는 등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가능성도 밝게 보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녹색 식물의 맑은 에너지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새 숨을 쉬게 한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누리는 행복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풍경만으로 치유가 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게 홍 회장의 목표다. 지금은 경매에 묶인 몇 년 동안 관리가 소홀했던 정원 곳곳에 다시 색깔을 입히는 중이다. 그가 아끼던 거북 무늬의 거대 자연석인 ‘소원석’과 6개의 돌기둥 ‘주상절리’를 허브빌리지에 들여다 놓았다.
“예로부터 거북이는 소원을 들어주는 영물로 통했습니다. 허브빌리지에 방문하는 모든 분들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의미에서 소원석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의 진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하룻밤 머물다 가야 한다고 지인들에게도 당부합니다. 새벽녘의 공기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 등이 어우러지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죠.”
인수하신 뒤로 7개월이 흘렀습니다. 인수하신 데 만족하시는지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허브빌리지가 자랑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입지가 좋습니다. 임진강 상류에 위치해 있어 경치가 좋아요. ‘화이트 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곳이 있는데, 임진강과 맞닿아 있어 포토존으로 유명합니다. 또 허브 밭에는 사시사철 다른 콘셉트의 허브를 심는데 현재는 라벤더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허브 밭 옆에는 40채의 빌리지가 있어 이국적인 멋이 풍겨나죠. 또 다른 자랑거리는 유리온실입니다. 한겨울에도 꽃이 피어나고, 갖가지 식물의 진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들이마시면 코가 뻥 뚫릴 정도입니다. 전체 면적이 약 5만7000m²인데, 빈틈없이 꼼꼼하게 오밀조밀 개발이 다 돼 있는 게 장점입니다. 욕심을 부려 더 확장하기보다 있는 것을 잘 관리해서 조용한 빌리지의 풍경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업시설을 늘려서 돈을 버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아요. 심신이 지친 도시민들이 이곳을 쉼터 삼을 수 있도록 잘 가꾸고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정원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자연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도 표정이 달라지죠. 제 얼굴이 좋지 않습니까. 정원을 몇십 년 동안 가꾼 게 전부입니다. 충남 당진에 개인 농장을 만들어 시간 날 때마다 가서 농사짓고 나무를 돌봤고, 허브빌리지에서도 자주 가드닝 복장을 갖춰 입고 톱과 가위를 들고 한 바퀴 돌면서 나무도 치고, 풀도 뽑고 합니다. 최고의 취미이자 만족이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대표이자 농장장이라는 직업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무실에서 웃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스트레스 받고 구박 받고,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데, 이곳에 와서 지내다 보면 얼굴빛이 달라질 거예요. 특히 밤중이나 새벽에 이슬이 내릴 때 와서 보면 맑은 공기가 더 잘 느껴지죠. 평소에도 이같이 자연과 고객을 연결해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허브빌리지를 알게 돼 바로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직접 와서 볼 것도 없이 주말에 인터넷으로 검색하자마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결정을 내렸어요.”
두 차례 유찰됐던 곳이라 의외의 한 수인 셈인데, 옛날에 마리오아울렛도 직관과 경험으로 과감히 결정하신 일 아닙니까.
“저는 계산기 안 두드려요. 촉, 직감으로 합니다. 경영 현장에서는 실제로 계산기 두드려서 맞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마리오아울렛 같은 경우에도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죠. 유통의 관건이 부동산, 입지인 것을 감안하면 계산기 두드리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실제로 당시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낙후돼서 버려지다시피 한 땅일뿐더러, 처음 1관을 지을 때는 사람이 1시간에 한두 명 다닐까 말까 할 정도였어요. 더욱이 당시는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는 백화점들이 속속 나오던 때였으니까요. 99%가 아니라고 했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고 그렇게 10년을 밀어붙여 만든 곳입니다. 무엇보다 고객에게 행복을 주는 방향으로 일하면 다 된다는 소신이 있었어요. 허브빌리지도 지난해 연말 투자를 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와서 보고 아니라고 말렸어요. 겨울에 왔으니 풍경도 허망하고, 도로망도 잘 닦여 있지 않고, 북한이 인접한 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이죠. 북한에서 포를 한 번 쏘면 3~5일씩 발길이 끊기곤 했지만 저는 오히려 연천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봄이 되니까 풍경도 확 달라졌죠.”
벤치마킹을 한 곳이 있습니까.
“평소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정원을 접하게 되고, 개인 농장을 하면서부터는 시간을 내서 찾아다녔습니다. 주로 일본과 유럽의 정원들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데, 2주 전에는 일본 고베의 한 허브농장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나무는 물론 이끼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가꾸고, 문화로 향유하는 태도에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허브빌리지에도 이끼 정원을 만들 계획이에요. 한국에서도 고급 정원 문화를 열어갈 때가 됐죠. 정원은 정말 공들여 가꿔야 하고, 그래서 인력이 중요합니다. 요즘 아파트 안에서도 셀프 가드닝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고, 정원 가꾸기가 하나의 트렌드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마리오아울렛은 많은 유통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습니다.
“처음 콘셉트를 정할 때부터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해외 주요 아울렛은 매뉴얼이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건물과 콘셉트로 운영됩니다. 우리는 도심형에 몰형이라는 게 특징이죠. 한국 사람들의 체력에 맞는 공간 배치를 했고, 이를 위해 시장조사를 많이 했어요. 한국형 아울렛 모델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주요 백화점에서 아울렛에 진출할 때 참고를 많이 하더라고요.”
오너라면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을 텐데, 지방이나 분점으로 왜 확대하지 않으십니까.
“인력 때문입니다. 중소·중견기업이 2호점을 열었을 때 가장 애로사항이 인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기존 인력을 분산하게 되면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는 관리를 잘 했어요. 마리오아울렛 성공 이후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지방에 분점을 내자는 요청이 많았는데, 직접 책임지고 관리할 수 없어서 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백화점에서 다 아울렛 사업에 진출하면서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경영의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오너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고 최종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저는 경영도 자연에서 배우는 편입니다. 자연을 보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가죠. 소나무가 크는 과정을 보면 세상의 풍파를 다 견디고 한 해 한 해 굵은 나이테를 두르면서 수십 년간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나이테를 세고 있노라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죠. 또 자연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크지만 조금만 만져주면 더 멋진 풍경을 자랑합니다. 나무가 뻗으면 잘라주고, 가지의 방향을 잡아주면 어느 순간 하나의 작품이 되죠.”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선 아울렛의 특성을 살려 매년 고객과 함께하는 ‘행복나눔 바자회’ 활동을 합니다. 매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지역 사회공헌 프로그램 중 하나로 판매 수익금 일부를 지역 소년소녀 가장, 저소득층 아동 등 도움이 필요한 지역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정도 경영’의 길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공헌도 그 일환이지만 그동안 늘 위기의식을 갖고 사업을 하다 보니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열심히 번 만큼 품격 있게 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성열 회장은…
2015년 서강대 명예 경제학 박사. 1980년 마리오 상사 설립. 여성 니트 정장 ‘까르뜨니트’를 론칭, 마리오아울렛 1~3관 오픈, 마리오허브빌리지 인수, 마리오아울렛 회장(주)(현).
허브빌리지는?
허브빌리지는 약 5만7000m² 규모의 체험형 에코 테마파크다. 초대형 유리온실과 야외 가든, 야외수영장, 바비큐장, 펜션과 허브체험공방 등 다양한 부대시설로 구성됐다. 특히, 72톤에 달하는 거북이 모양의 소원석 ‘대장거북바위’와 6개의 돌기둥 ‘주상절리’ 등의 조형물을 자랑한다. 허브빌리지의 대표 포토존인 ‘화이트가든’, ‘흑조’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춰 대표적인 가족여행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시즌에 따라 백합, 안젤로니아 등 화려한 플라워 페스티벌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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