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 없어 불편한 저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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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유머를 잘 구사하지 못해 불편하다는 사연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매사에 너무 진지해 고민입니다. 유머 코드도 없어서 친구들이 저를 자리에 잘 안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재미가 없으니까요. 좋은 이야기, 웃긴 이야기 하려고 모이는 거지, 슬프고 진지한 이야기 들으려고 모이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누굴 웃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을 위트 있다고 하는데 위트의 사전적 의미가 만만치 않다.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뜻한다. 위트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방송이다. 그런데 뛰어난 위트 능력을 가진 방송인들도 남을 웃기는 것이 쉽지 않다며 더 이상 웃기지 못해 자신의 인기가 시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존재한다고 하니 그만큼 남을 웃기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를 공감하게 하는 것엔 상당한 자신의 감성에너지가 소모되는데,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감정 이입도 잘 해야 하고 동시에 재미난 이야깃거리도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유머 감각이 없는 것에 고민하고 있는 경우 대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주변 사람들이 유머 감각 없는 것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 유머 감각은 없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주고 잘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보다 인기가 더 좋다.

사실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은 유머 감각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유머 감각이 없는 것을 모르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재미없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이 한 유머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어 고민인 분의 사연도 있다.

“직장생활 20년 차의 40대 후반 남성입니다. 성격이 외향적이라 어떤 모임이든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고 그래서인지 나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 여동생이 제 말로 인해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다고 해 당황했습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 딸에게도 아빠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이 남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소통 감각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는 것

사연 내용을 보면 직장생활에서 소통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가족 간 소통에서 이런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에서 쓰는 소통법을 그대로 가정에서 쓰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한 사람 중에 본의 아니게 모임을 썰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면 회사의 임원인 A씨는 자신의 유머 수준은 코미디언 이경규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회식에서 자기가 말을 던질 때마다 수많은 직원들이 쓰러질 듯 웃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과 상관없는 동호회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하니 반응이 썰렁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피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들 유머 감각이 없네’라고 스스로 위안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본인이 소통 감각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웃어주는 환경에 있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회사 소통 스타일 자체가 거칠고 강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소통 스타일이 집에서는 잘 맞지 않아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일단 자신의 소통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이다. 자신이 남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같은 스타일로 대화를 리드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를 인식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보통 농담도 잘 던지면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것은 모임을 잘 이끌어 나가려는 조정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 욕구는 나쁜 것이 전혀 아니다. 리더십이 있는 것이고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통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이 욕구를 잠시 눌러줄 필요가 있다. 소통 감각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통 감각 없이 리드해 나가면 대화의 결과가 좋지 않게 된다.

소통 감각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다소 수동적인 자세로 잘 경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임에서 웃기려 하는 것보다는 잘 웃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의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감정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감성적인 특징도 보이고 이 모임에 있어서의 소통 스타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느껴지게 된다. 그다음엔 수동적인 자세에서 조금 벗어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열린 질문은 상대방이 내게 관심이 있다고 느끼게 해줘 속마음을 더 말하게끔 한다. 열린 질문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공감 받고 있다는 만족감도 주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더 얻어낼 수 있다. 정보를 더 아는 만큼 더 깊으면서 상대방을 유쾌하게 만드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소통 감각을 찾기 위해서는 다소 수동적인 자세로 잘 경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감성적인 특징이 보이고 이 모임에 있어서의 소통 스타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느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