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캔버스에 아크릴릭, 120×120cm, 2011년">이것은 고행(苦行)이다. 수도자의 흔적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상상 그 이상의 작업 형식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다. 누구나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듯, 시작점과 끝점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제작 방식의 그림이다.
그런 윤종석 작가의 그림에선 일종에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허투루 볼 수 없다’는 깨달음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나는 하루 종일 점을 찍는다. 그런 측면에선 예술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있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진실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엔 물감 방울을 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셀 수 없을 만큼의 무의식적인 손목의 반복만이 연속된다. 일반적인 화가들처럼 나 역시 스케치를 하고 컬러들을 만들고, 주사기에 물감을 채워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무한 반복의 행위’로 시작해 마무리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진정성 혹은 진의성(眞意性)이다.”
윤종석 작가는 일명 ‘주사기 그림’으로 이름을 얻었다. 보통 병원에서 사용되는 약물용 주사기로 그림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바늘을 빼낸 주사기 몸통에 미리 배합한 아크릴 물감을 넣은 다음, 일정한 패턴의 힘을 가하면서 화면에 한 점 한 점 찍어 나가는 것이 그림 제작의 노하우다. 그냥 점만 찍었다고 하니, 말은 참 쉽다. 한번은 작은 작품을 만만히 보고 화면의 점을 세어본 적이 있다. 5000개의 점을 간신히 헤아릴 즈음 되돌아보니, 3분의 1에도 크게 못 미쳤다. 포기했다. 마치 ‘그림은 눈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거야’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얼핏 수많은 점들로 완성되는 제작 방식을 보며, 프랑스 인상파 화가 중에 ‘점묘법’의 창시자인 조르주 쇠라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맥락이다. 쇠라는 실존하는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색점(色點)을 병치혼합(倂置混合)했다. 물론 철저히 매순간 이성적인 개입의 결과로 작품을 완성해냈다. 그러나 윤종석의 경우 무의식적인 무한반복의 행위로 점을 찍어 ‘어느덧’ 얻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저 무위적인 상태에서 화면에 점들을 내려놓다 보니 심상(心象)에 잠들었던 ‘그 무엇들’을 깨워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윤 작가의 대중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계기는 ‘옷 시리즈’ 시즌 때부터다. 옷을 그림의 모티브로 삼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벗어 놓은 옷들에서 어느 순간 ‘죽음’이라는 채취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옷은 어떠한 연유에서든 사람의 신체와 분리되면 본연의 형태를 잃고, 대부분 본래의 기능이나 형태를 상실하게 된다. 그는 이것을 ‘옷의 죽음’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다시 ‘죽은 옷’에 남아 있는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했다. 어느 경우엔 의도적으로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전혀 의외의 ‘새로운 생명력’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윤 작가의 작품이 지닌 주제의식을 크게 보면 ‘채집된 기억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초창기의 점(點) 시리즈 작업은 옷의 이면에 감춰진 사람의 본능(위장성 혹은 이중성)을 들춰내는 작업이다. 또한 최근 신작에선 선(線)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 역시 수많은 점들이 켜켜이 쌓이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아주 가느다란 선들이 수없이 반복적으로 얹히면서 어느덧 대상 혹은 풍경이 실루엣으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윤종석의 회화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점’과 ‘선’으로만 이뤄진 셈이다.
점과 선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대표적인 예는 바로 추상회화의 선구자였던 칸딘스키 미학이다. 칸딘스키는 말 그대로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다.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점, 선, 면, 색채 등 최소한의 조형 요소에 음악적 음률로써 감정을 표현했다. “색채는 건반, 눈은 화음, 영혼은 현(絃)이 있는 피아노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이러한 칸딘스키의 명언은 아주 큰 설득력을 얻는다. 윤 작가는 그 ‘영혼의 진동’을 최소한의 흔적인 점과 선으로 해결해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의 그림은 회화적 형태에 집착하거나 갇히지 않고, 태점(胎點) 스스로 생명력을 얻도록 연출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다.
“이것이 정말 사람이 한 것인가요? 프린트나 기계로 작업한 게 아니고요?” 윤 작가는 관객에게 이런 소감을 듣게 될 때가 가장 흥미롭고 기분이 좋다고 한다. 옷 시리즈 작품으로 전시를 할 때는 “여기 옷 파는 가게냐”는 질문도 받았단다. 그만큼 일반적인 시각에선 편한 듯 뭔가 의외성이 있을 것이다. 비록 단순한 점찍기 작업이지만,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우 신중한 검토 과정이 필수적이다. 점들이 쌓일수록 더욱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눈은 혼란스럽다. 마치 무수한 경우의 수(數)를 염두에 두며 바둑을 놓듯, 순간순간 화면에 내려놓는 점들의 운용에 대한 결단력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게 된다.
최근의 선긋기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찰나의 순간에 선을 긋듯, 반복되는 빠른 필선들 사이사이에 앞뒤로 오가며 수없이 점검하길 쉬질 않아야 만족스런 작품을 얻을 수 있다. 부분 부분으로 전체를 조율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윤 작가는 ‘전진과 후퇴의 미학’으로 말하기도 한다. 매순간 어제와 오늘 혹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상념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비유할 만하겠다. 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티브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작가는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소소한 대상에 감성을 이입해 또 다른 기억을 심고 있다. 그것은 기억의 편린(片鱗)에 대한 채집이며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윤종석 작품의 변화를 살펴보면, 점에서 선으로 옮겨 왔다. 세상에 흩어진 무수한 너른 이야기들에서 개인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집중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도 개인적인 공간이나 경험의 부분을 보여준다. 형형색색 화려한 컬러의 이전 작품에서 단색조의 심플함으로 변화된 최근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색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표면 안쪽의 아래엔 수많은 색실들이 잠들어 있다. 살짝이라도 흔들면 이내 온갖 색이 피어오를 기세다. 흰 눈에 덮인 만화경 세상과 같다. 그렇게 한 몸처럼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세월이 돼 인생을 이룬다.
세월의 단층처럼 쌓인 윤종석 그림의 중심 키워드는 ‘점, 선, 반복, 이중성, 일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고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다. 100년의 세월도 1초에서 시작됐듯, 최소 수만 개의 점이나 실선이 쌓여 한 작품이 태어나지만, 그 역시 하나의 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여러 다양한 관점에 따라 전혀 색다른 시각적 묘미와 감성적 깊이를 선사하는 것은 윤 작가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러한 작품의 가격은 현재 100호(160×130cm)를 기준으로 1800만 원 선이다. 최근 5년 정도 이 가격대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를 기점으로 일정 비율 상승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티스트 윤종석
윤종석(1970~)은 한남대 미술대학 및 일반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서울, 베이징, 싱가포르, 후쿠오카, 카라라 등 국내외에서 1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어머니>(제주도립미술관), <길-송필&윤종석 2인전>(대전 쿠아트센터), <코리아 투모로우>(한가람미술관), <코리안 아이>(서울 국회의사당),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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