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보통의 식탁’에서 ‘행복한 식탁’으로의 Key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인 포이에르 바흐는 말했다.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 누군가가 먹은 음식의 총체는 그 사람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이 곧 그 사회를 규정한다. 끼니의 문제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온 음식, 그리고 식탁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식(食)을 중심으로 한 지금 우리 사회의 삶의 질 보고서다.


지금 왜 식탁의 품격인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먹방’과 ‘쿡방’은 차치하더라도, 현대인의 라이프사이클에서 식생활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먹고살기 위해 먹는 ‘생존의 시대’를 지나, 명품 가방이나 수입차와 같이 먹는 것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취향의 시대’가 도래했다면 이제 ‘격’에 대해 얘기할 차례가 왔다.
현대인의 식문화는 지금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여유를 누리는 것, 품위를 갖추는 것은 모두 일상의 의식주를 통해 실현된다. 무엇을 먹느냐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화두인 요즘, 고품격 식 라이프는 개인의 건강과 생명 유지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정성적 지표에 해당한다.
동시에 그 시대가 사랑하는 ‘맛’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학자들의 맛 연구서인 <18세기의 맛>에 따르면 입맛은 사회 구조를 반영하며 길들여진다. 마치 중세 음식에서 고급 요리일수록 매운 이유가, 당시 고가인 후추를 통해 엘리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인 것과 같다. 취향을 통해 계급을 논하는 피에르 브르디외의 <구별 짓기> 개념은 먹는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식탁 위의 음식이 사람의 혀끝에 도달할 땐 감각으로 와 닿지만, 역사를 찾아 올라가면 각 음식마다 지역성과 유래를 갖는다. 그 시대, 그 사회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과 트렌드에 따라 식재료의 생산 및 유통이 달라지고, 이는 산업과 경제로 연결된다. 문화적으로는 먹는 즐거움을 통해 그 사회의 정서를 함양하는 한편 음식으로 자국의 문화를 전파한다.
의미 부여는 잠시 접어 두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가나. 한국의 외식 문화가 연간 80조 원의 시장규모로 성장하는 사이, ‘셰프의 전성시대’라 불리며 대가의 비법과 냉장고 속 재료로 만든 요리가 찬사를 받으며 시청자 입맛을 홀리는 동안 과연 식생활의 중심이 되는 식탁의 품격은 그만큼 상승했을까. 집밥 예찬과 레시피의 홍수 속에서 진짜 집밥은 잘 챙기고 있는 것일까.
한경 머니가 온라인 설문조사 기관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전국 20~60대 300명에게 물었다. ‘당신의 식탁은 행복하십니까.’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보통의 식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시에 ‘행복한 식탁’을 희망하고 있었고, 그 해답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길은 가족에게 있다.

당신의 식 라이프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 경제에 몰아치는 저성장 기조, 인구구조 변화 등은 현대인의 식 라이프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먼저 사람들의 식사 패턴은 집에서 만든 집밥을 기본에 둔 식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쿡방의 영향 등으로 외식 인구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가장 자주 먹는 식사의 종류’는 집밥(72.3%)으로, 집밥 선호 현상은 여전했다. 남성(67.3%)보다는 여성(77.3%), 그리고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밥에 대한 애정이 훨씬 강했다. 반면 20대(50%)는 절반 정도만 집밥을 먹는다고 답했으며, 외식(26.7%)과 간편식(13.3%)을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인의 ‘밥심’은 한식의 대표 상차림인 밥, 국, 찌개, 반찬 등의 반상으로 비유되곤 한다. 주식인 밥을 기본으로 부식인 반찬이 발달한 게 특징이다. 같은 재료로도 여러 조리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다른 문화권의 상차림과 차이점이다. 서구화된 입맛으로 아침식사에 미국식 블랙퍼스트 등이 등장했지만 ‘집에서 먹는 아침식사의 주요 식단과 메뉴’에서 밥(60.7%), 반찬(52.7%), 찌개(40.7%), 국(37.3%) 등 한식이 주요 순위를 차지해 한국 사람들의 주식은 밥인 것으로 조사됐다. 동시에 달걀(38%), 과일(36.3%), 빵(28.3%), 우유(21.7%), 곡물 및 시리얼(19%) 등에도 응답자가 몰렸으며 30대의 36.7%, 20대의 31.7%는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바쁜 일상과 분주한 출근 준비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집밥을 먹는 횟수’는 평균 하루 2번(32%)이었다. 남성은 하루 1번(30%), 여성은 하루 2번(36.7%)으로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연령대별로는 20대의 경우 일주일 2~3번(23.3%)만 집밥을 먹는다고 밝힌 반면 60대의 경우 절반이 넘는 숫자가 하루 2번(56.7%) 집밥을 먹는다고 답해 ‘세대 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집밥을 먹는 시간은 평일 저녁(66%)과 평일 아침(50.7%)이 절반 이상인 데 비해 주말 아침(32.3%), 주말 점심 및 저녁(38%)의 경우 낮은 응답률을 보여 주말에는 외식 등을 선택하는 가정이 많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20대는 ‘과거 1~2년 전과 비교할 때 집밥을 먹는 빈도 수’를 묻는 질문에 유일하게 ‘줄었다’(48.3%)고 답해 식생활의 패턴이 확실히 달라졌음을 보여줬다. 취업난과 경제난 속에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식생활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인 가구의 부상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가정의 식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13.1%였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0년 24.3%, 2060년 40.1%로 향후 고령화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저출산과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 등의 증가로 가족 구조의 변화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국내 전체 가구 수의 26.5%를 넘어서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가구 형태가 된 1인 가구는 요즘 소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주역으로 외식 시장에서 ‘혼밥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늦어지는 취업, 결혼과 비혼 세대의 출현으로 청춘들의 혼밥 고수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령층의 혼밥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설문조사 결과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누구와 함께 먹느냐’는 질문에 20대(58.3%) 중 절반 이상이 혼자 먹는다고 답했다. 30대(23.3%), 40대(18.3%), 50대(15%), 60대(23.3%)도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쁜 현대인들은 ‘가정 내에서도 혼밥’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 내에서도 ‘혼밥’
식탁을 담당하는 사람은 전통적으로 여자의 몫이었다. 최근 ‘공동 육아’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맞벌이 부부가 가정 안팎의 살림살이를 같이 책임지는 쪽으로 변화가 일고 있는데, 집밥은 어떠할까. ‘식탁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아내(51.7%), 어머니(26.3%)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20대의 응답은 어머니(63.3%)가 압도적이었고 30대에서 아내(56.7%)로 자리를 바꿔, 60대까지 60%대의 응답률을 유지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분위기에서도 식탁은 아직까지 어머니의 식탁에서 아내의 식탁으로, 여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식탁은 먹는 행위뿐만 아니라 가족끼리의 소통과 화합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식탁에서 가족 간 소통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의사소통(40.3%)과 충분하지 않은 대화(39.3%)가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20~30대에서는 전자가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반면, 40~50대는 모두 후자를 선택해 청년층에 비해 중년층이 가정 내에서 충분히 대화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르는 건 확대 해석일까.
설문조사의 목적이던 ‘당신의 식탁은 행복하십니까’에 대해서는 ‘보통이다’(46%)가 ‘조금 행복하다’(27.7%)를 훨씬 앞질렀다. ‘보통이다’의 응답률은 남성(42%)보다 여성(50%)의 비율이 더 높았고, 연령대별로는 60대(61.7%), 40대(46.7%), 20대(43.3%), 50대(40%) 순이었다. 30대만 유일하게 ‘조금 행복하다’(40%)가 ‘보통이다’(38.3%)를 뛰어넘었다.
주관식을 통해 들여다본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식탁의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답변들이었다. 먼저 행복하지 않은 식탁의 이유를 요약하면 ‘혼자 먹는 밥상’,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식탁’, ‘다른 가족에게 맞춘 식단’, ‘잔소리’, ‘일상에 지친 의무적인 식사’, ‘번거로운 식탁 차리기’, ‘잦은 외식’, ‘부담스러운 식재료비’,
‘대화의 부족’ 등이었다. 가장 편안하고 건강해야 할 식탁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듯 사회(너무 바쁜 현대인), 경제
(부담스러운 식탁 물가), 문화(가족 식문화의 상실)적인 요인 등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 행복한 이유는 하나의 공통 키워드로 압축됐는데, 바로 ‘관계’다. ‘웃음이 넘친다’, ‘대화와 맛있는 식탁’, ‘대화를 통해 힐링이 된다’, ‘함께함이 기쁨이다’ 등으로 모두 관계를 통해 함께 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을 표현했다.

모두가 정답을 알고 있다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식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식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행복한 식탁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있다’(55%)가 ‘없다’(22.7%)를 훨씬 앞질렀고, 30대(66.7%), 50대(65%), 40대(53.3%), 20대(46.7%), 60대(43.4%) 순이었다.
‘행복한 식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됐다. ‘가족이 함께 먹는 문화’(33.3%), ‘가족이 함께 만드는 식탁’(26.3%)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성별, 연령대별 답변이 크게 다르지 않아 행복한 식탁으로 가는 길의 해답은 명확했다. 가족 다음으로는 ‘저녁이 있는 삶’(16%)이 행복한 식탁의 조건으로 꼽혔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으로 ‘식탁 문화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엄마(여자) 혼자 식탁을 책임지는 구조’(42.3%)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성별, 연령대별 응답률도 비슷했다. 저성장 기조, 앞당겨진 은퇴 시기, 맞벌이 부부의 증가, 늘어나는 중년 여성의 취업률 등이 지금 우리 사회를 설명한다면, 이러한 변화 가운데에서 가정의 식탁 문화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엄마의 식탁’에서 ‘가족의 식탁’으로의 대변혁이다.


조사 개요
설문 일시 2016년 6월 17일
응답 인원 전국 남녀 20~60대, 300명
표본 오차 ±5.66%포인트(95% 신뢰 수준)
조사 방법 온라인 조사
조사 기관 오픈서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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