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 꽃 정물화’, 1614년,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73739.1.jpg)
당시 꽃 정물화의 일인자였던 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Ambrosius Bosschaert the elder)의 그림 한 점을 보자. 활짝 핀 각종 꽃이 바구니에 가득 꽂혀 있고 바닥에도 몇 송이가 흩어져 있다.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 나비 두 마리가 보인다. 잠자리와 벌, 애벌레도 있다. 자연에서 식물에 곤충이 모여드는 것은 향기가 짙고 먹이가 있다는 물리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정물화에서는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즉 활짝 핀 꽃은 줄기가 잘려 이미 생명을 잃었고, 곧 스러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곤충은 살아 있지만 수명이 짧으니 삶의 덧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비는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존재로서 일시적 삶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하는 영혼을 뜻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그 무상함을 인식하고 세상의 악을 물리쳐 영혼의 부활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시케의 사랑과 영혼
나비는 고대 그리스어로 프시케(psyche)라 하는데 프시케는 영혼, 정신을 뜻하기도 한다. 서기 2세기, 로마의 소설가 아풀레이우스(Lucins Apuleius)는 ‘변형담’ 또는 ‘황금나귀’라 불리는 책에서 프시케를 아름다운 공주로 체현시켰다. 프시케는 빼어난 미모로 남성들의 관심을 독차지해 비너스의 질투를 사게 된다. 비너스는 큐피드에게 프시케가 세상에서 제일 비열한 남자를 사랑하도록 시켰는데, 큐피드는 프시케를 보고 자신이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는 호화로운 궁전에 프시케를 데려다 놓고 신분을 숨긴 채 어두운 밤에만 찾아온다. 그리고 절대로 자기 얼굴을 보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 둔다.
프시케를 시기한 언니들은 그가 괴물일지도 모른다며 몰래 얼굴을 보라고 동생을 부추긴다. 의심이 생긴 프시케는 급기야 큐피드가 잠든 틈에 등불을 비춰 그 얼굴을 들여다본다. 빛 속에 드러난 얼굴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너무도 잘생긴 청년, 사랑의 신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확인한 순간 등잔의 기름 방울이 큐피드의 얼굴에 떨어진다. 놀라서 잠을 깬 큐피드는 지체 없이 프시케를 떠나 버린다. 프시케는 잘못을 깨닫고 비너스에게 찾아가 큐피드를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감당하기 힘든 과제들뿐이다. 온갖 시련을 겪는 프시케를 몰래 지켜보던 큐피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제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침내 프시케는 큐피드와 결혼하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시련과 고난, 그리고 자유
프시케는 순수한 사랑으로 고난을 감내하고 참된 행복을 얻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 그 이름이 나비와 같은 것은 나비도 애벌레 시절 음침한 땅속 생활을 겪고 인내 끝에 스스로 단단한 고치를 뚫고 나와 새롭게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제라르, ‘프시케와 큐피드’, 1798년, 루브르미술관](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73741.1.jpg)
![오딜롱 르동, ‘나비들’, 1913년, 개인 소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73742.1.jpg)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된 것인가?”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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