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색조가 화면 가득 밝게 퍼진다. 거기에 황토색, 갈색, 초록, 파랑의 세모꼴들이 흩어져 여러 개의 느슨한 사각형 구조들을 이룬다. 간간이 십자형으로 교차된 선들이 구조의 형성을 도와준다. 그 추상적인 형태는 어찌 보면 주택이나 교회당, 혹은 창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 배경으로 그림의 중앙 맨 아래에서 광대 복장을 한 남자가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그의 머리 위쪽에 마리(Mari)라는 초록색 굵은 글자가 보인다. 여자의 이름인 그 글자를 중심으로 또 다른 네 명의 여자 이름이 사방에 적혀 있다. 몇몇 이름 밑에 가느다란 사다리가 걸쳐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남자의 머리를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가면 중앙의 십자형을 거쳐 꼭대기의 초승달과 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클레의 돈 조반니는 단지 전설적인 극중 인물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희극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클레는 음악과 미술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회화에서 음악의 동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이 그림에서도 소재뿐 아니라 구성의 대칭, 반복, 변주 등에서 음악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 이름들 중 엠마(Emma)와 테레즈(Theres)는 당대의 유명 소프라노를 가리킨다. 한편 마리(Mari), 첸즐(Cenzl), 케이티(Kathi)는 클레와 실제로 염문이 있었던 여성들이다. 클레는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극중 바람둥이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는 돈 조반니처럼 변장을 하고 현실과 다른, 보다 자유로운 삶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예술가로서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도약을 원했을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에서 비롯된 상징성
자유와 초월에 대한 환상을 도와주는 유일한 수단이 그림 속에 있다. 그건 바로 여기저기 걸려 있는 사다리들이다. 곡예를 하듯 주인공이 올라가는 중앙의 사다리가 있고, 클레와 관계를 맺었던 세 여성의 이름 밑에도 작은 사다리들이 놓여 있다. 사랑의 편력에 따라 사다리가 분리되고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꿔 이동한다. 사다리란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도중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사랑에의 도달은 그처럼 노력이 필요한 열렬하고 위태로운 상승이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각형 바깥쪽에서 사다리가 따로 저 높이 광대가 있는 곳으로 상승한다. 그가 서 있는 외줄에 이르러 사다리는 직선들과 만나게 된다. 또한 배경에는 커다란 흰색 십자가가 보이는데 그 가로선도 외줄과 일치한다. 정리해보면 숨은 두상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성의 작용이 사다리를 통해 추구하는 초월적 세계와 합치되며, 이는 곧 십자가의 지향점과 일치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줄 위에 있는 광대는 누구인가? 그는 내면적 갈등과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며 엄숙한 진리에 도달하려는 현대의 예술가가 아닐까? 아마도 화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래쪽의 모호한 얼굴이 화가 내면의 숨은 자화상이라면 위에서 줄 타는 사람은 드러난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배경의 하얀 십자가가 그들을 하나로 관통하며 연결한다. 이는 클레가 예술 창조를 합리적 이성과 초월적 신비의 통합으로 여겼음을 암시한다.
전통적 사다리의 의미는 클레의 작품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초월을 향한 매체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단지 종교적 교훈만이 아니라 돈 조반니처럼 이성과의 사랑이나 성적 환상을 위해서도 동원된다. 클레는 사다리 이미지를 자주 이용해 상승, 진보, 변화 등의 개념을 나타내곤 했다. 그것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영원한 갈망,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렬한 상승의 꿈을 반영한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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