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한국경제DB
세계 럭셔리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3대 그룹이 있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프랑스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다. 1876년 프랑스 ‘루이비통 패션 하우스’와 ‘모에헤네시’의 합병으로 탄생한 후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를 장악했다. 쇼메, 불가리, 드비어스, 프레드 등의 주얼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스위스에 기반을 둔 리치몬트그룹은 주얼리와 시계로 크게 성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요한 루퍼트가 이끄는 이곳은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 주얼리 브랜드와 피아제, 바쉐론 콘스탄틴, IWC, 예거 르쿨트르 등의 초고가 시계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이끄는 케어링(2013년 사명을 PPR에서 케어링으로 변경)은 ‘구찌그룹’으로 더 유명하다. 주얼리 브랜드로 프랑스의 부쉐론을 소유하고, 이탈리아의 포멜라토, 도도, 홍콩의 키린을 차례로 인수하며 주얼리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성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주얼리 컨설턴트)는 저서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를 통해 "이밖에 스위스의 쇼파드, 미국의 티파니, 영국의 그라프, 이탈리아의 부첼라티 등도 전통과 역사의 주얼리 하우스들이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세계 럭셔리 그룹과 주얼리 브랜드들은 유럽과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전략적인 격전지로 한국을 주목한다.
한국은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14년 한국 럭셔리 시장 규모는 91억 유로(약 11조 원)에 이른다. 1984년 까르띠에가 라이선스 형태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후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진출 러시를 이루고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영국, 독일에 이어 8위를 차지한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는 특히 2000년을 전후로 공격적인 진출을 시도했다. 초창기 라이선스 형태로 가능성을 점치던 곳들이 점차 한국 지사 형태로 직접 진출한 게 주목할 만하다.
까르띠에는 1997년 리치몬트코리아로 재탄생했다. 수입 상사를 통해 들어온 티파니앤코, 불가리도 각각 1996년, 1998년 티파니코리아와 불가리코리아로 재출범 했다. 쇼메는 1999년 배재통상을 통해 1호점을 개점한 이후 2008년 LMMH쇼메 한국지사로 전환했다. 그 뒤를 이어 반클리프 아펠, 부쉐론, 프레드, 피아제 등이 가세했다.
이들은 국내 하이엔드 시장을 주도하며 성장을 거듭해 왔다. 까르띠에는 한때 한국에서 아시아 3위, 세계 5위의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까르띠에의 뒤를 이어 들어온 티파니는 2000년 이후 2013년까지 매년 약 20%의 증가세를 보였다. 홍지연 동양대 보석귀금속학과 교수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100년 이상 존속해 온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시장에서 급성장했다”며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매출 상승세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 요인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 ‘스토리텔링’이 주효했다. 공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 올렸다. 티파니의 경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수상하자 ‘티파니 보석은 빛나고’,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라는 문구를 넣은 광고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국내 주요 백화점에 해외 브랜드 명품관이 들어선 것도 중요한 포인트로 꼽힌다. 해외 시장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주로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로 진출한 것과 달리, 한국 시장에서는 백화점 최고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경우 2009년 4월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 하이 주얼리 매장과 세계 4대 명품 시계 브랜드로 구성된 명품 전문 브랜드 매장 ‘하이 주얼리 앤 워치’를 선보였다. 현재 이곳에는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부쉐론, 브레게, 블랑팡, 쇼파드, 예거 르쿨트르, 위블로, 파텍 필립, 불가리, 샤넬 주얼리, 쇼메, 티파니앤코, 프레드, 피아제 등 총 15개 하이 주얼리 앤 워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이는 동시에 백화점에 입점해 있던 국내 토종 보석상들이 거리에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럭셔리 브랜드들의 주요 타깃은 일본인 관광객에서 내국인, 그리고 중국 유커로 점점 변해 왔다. 한국 시장 진출 초창기 주로 롯데면세점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했던 티파니앤코, 불가리, 반클리프 아펠 등 럭셔리 브랜드들은 백화점으로 유통망을 넓히며 국내 소비 시장에 파고들었다. 결혼 예물 주얼리 구매 성향이 럭셔리 시장으로 옮겨가고, 고급화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백화점들과 코드가 맞아 떨어지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최근에는 단연 유커들이 하이 주얼리의 큰손이다.
그렇다면 몇 년째 이어지는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서도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인기는 여전할까.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주요 11개 해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국내 매장 수는 2010년 77개에서 2014년 106개로 37.6% 늘어났다. 11개 브랜드의 연매출액은 2010년 27억7800만 원에서 2014년 44억6100만 원으로 60.5% 증가했다. 특히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시계는 6% 하락한 반면, 주얼리는 6% 상승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주얼리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해외 럭셔리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 브랜드들은 현재 한국에 얼마나 들어와 있을까. 홍지연 교수는 “최근 20년 사이 주요 메이저 브랜드들은 거의 다 들어와 있고, 몇 군데를 제외하고 직진출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며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몇 개 브랜드 또한 꾸준히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철수했다가 다시 들어온 사례도 있다. 쇼파드가 그렇다. 까르띠에가 한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에 없던 초고가 브랜드도 2년 전 한국에 상륙했다. 그라프가 그 주인공이다. 유태인계 회장이 이끄는 영국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 그라프는 55년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며 판매까지 하는 수직적 통합 모델로 빠르게 성장했다. 핸드백이나 기타 잡화를 판매하지 않고 오직 보석에만 집중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을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그라프는 홍콩, 일본에 이어 아시아 세 번째 진출국으로 한국을 택했다. 신라호텔 1층 로비 한가운데 입점하며 이름을 알렸는데, 이곳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억 원대 이상으로 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가 20억 원을 호가한다. 69억 원짜리 보석도 진열돼 있다.
최근 브랜드 경쟁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브라질 럭셔리 브랜드 에이치스턴은 2011년 10월 지사 형태로 론칭한 후 두 자릿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주요 주얼리 브랜드인 주대복(Chow Tai Fook), 룩푹(Luk Fook)까지 2015년 신라면세점과 워커힐면세점에 진출한 상태다.
이들이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꼽는 이유는 하이엔드 시장의 높은 잠재력 때문이다. 또한 한류 바람에 힘입어 중국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어서다. 아시아의 허브이자 교두보로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최근 중국이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세금을 낮추고 있다는 점은 국내에 진출한 럭셔리 브랜드들에 위기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VVIP 마케팅 ‘상상 초월’
한국에 진출한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모두 흑자 행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잘나가는 브랜드를 제외하고서는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상위권의 경우 삼파전이다. 2014년 상반기 주얼리 및 시계 부문 매출액 기준 1위는 까르띠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한 매장에서 월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주얼리 시장에서 ‘공룡’이 됐다”고 전했다. 까르띠에는 초창기 시계로 더 유명했지만, 다이아몬드 시장 공략을 선언한 뒤 공격적으로 주얼리 부문을 확장했다. 티파니앤코의 90% 수준에 가격 정책을 편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2위는 미국의 티파니앤코다. 전 세계 시장으로 볼 때는 미국 내수시장에 힘입어 규모가 가장 크다. 이어 3위는 불가리가 차지한다. 불가리는 최근 다소 실적이 주춤했지만 여전히 전통의 강자로 꼽힌다. 이밖에 프랑스 브랜드로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온 반클리프 아펠은 클로버 모양으로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기에는 그룹과의 ‘시너지 효과’가 자리하고 있다. 까르띠에와 같은 리치몬트그룹에 소속돼 마케팅 등에서 공동 대응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무빙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쇼파드, 나폴레옹의 상징이 된 쇼메 등도 한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라프도 초창기 고전했지만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텔 특성상 외국인 고객도 있고 꾸준히 찾는 고객도 생겼다”고 말했다.
흑자를 내지 못하는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왜 여전히 한국 시장을 고집할까. 럭셔리 브랜드들은 10년 이상 장기 관점에서 투자를 하는 편이다. 일본의 경우 전체 럭셔리 시장에서 해외 브랜드가 약 30% 비중을 차지하는데 한국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VVIP 마케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초고가 하이주얼리인 만큼 최고의 서비스가 뒤따른다. 희귀한 보석을 찾는 고객에게는 본사 소속의 하이 주얼리 담당자가 비행기를 타고 와 ‘찾아가는 서비스’도 실시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호텔과 백화점 등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연간 1~2회 VIP 고객을 초청해 초고가 보석과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식이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에 브랜드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열기도 한다. 2000년 ‘쇼메 전시회’에서는 프랑스 쇼메 박물관의 진귀한 소장품 10점이 전시됐다. 2002년 ‘까르띠에 전시회’, 2008년 ‘티파니 전시회’ 등에서도 오랜 역사의 ‘앤티크 작품’이 공개됐다.
최근에는 일대일 마케팅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전시회도 호텔 스위트룸에 단 한 팀 씩만 초청한다. 또 한두 명의 고객을 선정해 해외 본사로 초청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의 본사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리미티드 에디션’을 보는 코스다”라며 “일등석 비행기에 최고급 호텔 및 여행 코스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데, 보통 이렇게 초대되면 10명 중 8명은 현지에서 구매를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세금이 없다는 장점도 활용한다. 브랜드들은 현지 구매, 현지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리미티드 에디션은 소장용보다 투자용에 가깝다.
‘스톤 이벤트’와 같은 독특한 이벤트들도 있다. 한 브랜드는 본사에서 드로잉 전문가가 직접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스톤을 들고 한국을 방문, 고객이 직접 원하는 보석과 디자인으로 ‘맞춤 제작’을 하기도 했다. ‘가족 마케팅’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는 “두 개의 반지를 제작해 하나의 반지만 선물로 보내고, 다른 하나는 직접 매장에서 찾으라는 식으로 이벤트를 한다”며 “엄마와 딸, 부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면 구매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불황에도 최고가 보석들이 심심치 않게 판매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최근 한 브랜드에서는 8억 원짜리 보석이 판매된 바 있다.
관세청 무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주얼리 수입량은 3억7000만 달러(446억 원)로, 국내 전체 주얼리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2013년보다 2.6배 늘어난 수치다.
주가 오르면 다이아몬드 열풍?
자산가들이 고가의 보석을 많이 구입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바로 주가가 상승할 때라고 한다. 주식이 올라 예기치 못한 수익이 생기면,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는 의외의 고객이 많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아내에게 선물할 여성용 반지를 사는 편이고, 주식투자를 도운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또한 불경기일수록 ‘큰 보석’이 잘 팔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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