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전문가 3인의 특별한 대화
최근 회자되고 있는 ‘흙수저, 금수저’ 논란은 저성장 시대의 씁쓸한 단면이다. 그만큼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경로는 줄어들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상속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있다는 것. 한경 머니는 지난 1월 1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자산가들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상속·증여 문제의 실태와 대응 방안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이종광 김앤장 법률사무소 회계사, 임채웅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가나다 순)를 초청해 ‘자산가들의 최대 현안, 상속·증여 해법 찾기’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사회 권오준 편집장 | 정리 한용섭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장소 협조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02-2275-1101)
상속 좌담은 지난 1월 15일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의 ‘카페 드 셰프’에서 이뤄졌다. 일찌감치 도착한 법무법인 율촌의 강석훈 변호사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의 임채웅 변호사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서울대 법학과 82학번 동기다. 뒤이어 이종광 김앤장 법률사무소 회계사가 도착했다. 이들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가진 국내 최고의 베테랑 상속·증여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좌담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상속·증여 문제는 바깥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데다, 사생활과 관련된 사안이 많아 이들이 제시한 다양한 사례를 기사화하진 못했다. 하지만 상속·증여 문제의 발생 원인과 경로, 대응 방법 등은 충분히 논의됐다. 먼저 한국에서 상속 문제가 급증하고 있는 배경부터 짚어봤다. #1. 한국은 왜 상속에 몸살을 앓나
권오준 편집장(이하 권 편집장) 재벌가 상속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반 자산가들의 상속 소송도 급증하고 있고요.
임채웅 변호사(이하 임 변호사) 제가 대화의 물꼬를 터보죠. 근래에 상속 문제가 부각되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어요. 첫째, 상속재산 규모가 커졌어요. 기업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다고 치면 10억~30억 원대 재산을 보유한 셈입니다. 둘째, 권리 의식이 향상됐어요. 특히 딸들이 더 이상 참지 않아요. 셋째, 1960~1970년대 시작된 공업화를 이끌던 1세대가 돌아가실 때가 된 거예요. 그분들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부를 축적했고, 돌아가시기 전 상속 문제가 한꺼번에 부각되고 있는 거죠.
이종광 회계사(이하 이 회계사) 대기업 회장들의 인식도 달라졌어요. 그들을 만나보면 한 명의 자식보다는 여러 명의 자식에게 균등하게 나눠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습니다. 지분을 똑같이 나눠 공동 경영을 하면 형제들 간에 우의 있게 그룹 경영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효성·금호·한진그룹 등이 다 그랬지 않습니까. 기업 오너들은 회사가 쪼개지는 것을 기본적으로 굉장히 싫어합니다. 회사를 전체적으로 묶어서 자식들이 공동으로 잘 경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하죠. 하지만 부모하고 자식하고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균등하게 나눠주면 대부분 싸워서 문제가 생깁니다. 롯데도 나눠줘서 싸움이 나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 요즘 부자들을 보면 후처가 없는 데가 없어요. 배다른 형제들이 많다는 거죠. 한번은 아버지가 유언도 없이 돌아가신 뒤 배다른 형제들끼리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을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재산에서 조금 떼어주면 됐는데, 요즘에는 자기 몫을 다 먹겠다고 덤비는 경우가 많아요.
권 편집장 의뢰인 중에 이복형제들이 있는 곳이 많나요.
이 회계사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절반 이상 있다고 봐야겠죠. 오히려 이복형제가 없는 데가 드물 정도니까요.
임 변호사 대형 로펌에 오는 사건들을 일반화시키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고 보더라도 배다른 형제들의 사건은 의외로 많습니다.
강석훈 변호사(이하 강 변호사) 왜 상속이 최근 이슈로 불거지느냐 하는 건데 일반 국민들 관점에서 보면 저성장 사회가 되니까 재산을 축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자산가들은 대부분 과거에 자산을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물려받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셈이죠. 그리고 임 변호사 말대로 (상속재산의) 단위가 커졌어요. 예전에는 많아야 몇백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조 단위가 되다 보니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 같고요. 유류분 제도도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류분 제도라는 게 과거 장자상속에서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균등하게 배분하자는 취지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유류분 제도를 계속 유지하면 경영권 승계를 할 수가 없어요. 자산가라 해도 자산 대부분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주식으로 갖고 있는데, 이게 흩어지면 경영권 승계에 어려움을 겪거든요. 자식들 간에 분쟁이 생기는 것도 상속에서 소외된 자식이 자신의 유류분을 보장해 달라는 건데 이 때문에 골육상잔의 비극이 생겨요.
권 편집장 소송하는 분들 중에 딸들이 많이 늘어났다는데 실제 그런가요.
임 변호사 맞습니다. 아주 단순한 패턴을 말하자면 아들은 가업승계라든지 그런 이유로 부모 근처에서 사는 경우가 많고, 딸들은 미국에 간다든지 남편을 따라서 멀리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일단 딸들은 상속재산 정보가 차단돼 있는 데다, 실제 상속 과정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딸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겁니다.
권 편집장 피상속자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여전히 딸을 배제하나요.
이 회계사 대기업의 경우 오너 성향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데 아직까지는 장남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죠. 예를 들면 대림산업 같은 경우 이준용 회장이 이해욱 부회장에게 재산을 대부분 물려주고 나머지는 거의 기부해 버렸잖아요. 장남에게 경영권 승계를 해주었으니까 내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남은 재산은 기부한 거죠. 물론 대한항공의 경우는 정반대죠. 장남은 물론 나머지 자식들에게도 비슷하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기조가 아닌가 싶어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일반적으로 나이 든 분들은 장남한테만 좀 더 많은 재산을 주려고 하는데 딸들이 유류분을 챙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곤란해지죠.
권 편집장 상속 분쟁 소송은 앞으로도 늘어날까요.
임 변호사 같이 일하는 변호사가 농담조로 “앞으로는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나니 상속 문제가 필요 없어질 것 아니냐. 그러면 우리 팀이 아예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기에 제가 한마디 했죠. “이렇게 세상을 볼 줄을 모르다니 자식은 줄어들지만 재혼을 많이 하게 돼 있다”고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재혼을 안 할 재간이 없어요. 이 때문에 분쟁이 늘 수밖에 없고, 더 치열해지겠죠. 그리고 현재 배우자 지분을 대폭 늘리자는 법률안이 국회까지 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관련된 분쟁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2. 유류분, 상속의 덫이 되다
권 편집장 일반인들도 상속 분쟁으로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유류분 소송이 많은데요. 어떻게 봐야 합니까.
강 변호사 유류분 제도가 헌법재판소에 갈 단계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대개 자산가들의 재산이라는 게 부동산이나 주식인데. 주식이 나눠지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면 좋은데, 아직까지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유류분은 거기에 반대되는 제도거든요.
권 편집장 균등하게 배분하자는 유류분 제도의 원래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닌데요.
강 변호사 예전에 상속재산 규모가 작을 땐 ‘나는 먹고 살기 힘든데 다른 형제들이 부모 재산을 다 가져갔으니 먹고 살 것만 달라’는 소송이 많았어요. 지금은 ‘먹고 살 만은 한데 거기에 더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만큼 달라’고 하는 거니까 분쟁이 늘어나지 않을 수 없지요.
임 변호사 저는 조금 달리 보고 있어요. 주로 분쟁이 유류분 소송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유류분 제도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맞습니다만 반대로 예를 들어 유류분 제도 없이 후처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게 유언의 자유를 100% 인정한다면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유류분 산정 비율이 너무 높다든지 하는 그런 논의는 가능하겠지만 유류분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회계사 남겨진 상속재산만으로 유류분을 따지지 않아요. 사전에 상속 받은 것을 현재 시가로 환산해 가지고 그것을 나누는 게 유류분입니다. 이 때문에 생전 증여를 하지 않은 자녀에게 남은 재산을 몽땅 다 줘도 부족한 경우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기간의 제한이 없이 미리 준 주식의 가치가 10배, 100배 뛰었는데 그것을 현재의 가치로 모두 환산해 버리니까 너무 높게 상속재산이 산정되고, 그러다 보니 웬만해선 서로 합의를 안 해주는 거죠.
강 변호사 저도 유류분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유류분 제도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현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만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데, 유류분 산정은 아무런 기간 제한이 없어요. 시가 산정 자체도 그렇고요. 예를 들어 10년 전에 아들한테 주식을 주었을 경우 일반적으로 현재 가치는 엄청나겠죠. 그걸 전부 유류분으로 산정하니까 소송이 벌어지는 거죠. 유류분 산정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 변호사 법률적으로는 복잡하긴 한데 유류분만의 문제는 아니고 상속재산분할에 있어 그렇게 계산을 하거든요. ‘공평’이라는 개념은 남아 있는 상속재산에 대한 공평이 아니에요. 부모자식 간에 생전 증여도 대부분 상속으로 보는데, 그것까지 포함한 ‘공평’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류분만의 문제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죠.
강 변호사 유류분 제도는 1977년에 만들어진 제도죠. 현재 시점에서 불합리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유류분 제도가 상속 분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말이죠.
이 회계사 사람 나이가 80~90대가 되면 곁에서 잘 해주는 사람에 따라 수시로 마음이 바뀐다고 해요. 거기에 휘말리면 자녀고 후처고 전부 다 사이가 나빠집니다. 부모가 정정할 때는 자식들이 반기를 들 수가 없는데, 80대 후반만 되면 본인 마음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기 때문에 장남한테는 “너한테 줄게” 했다가 차남이 찾아오면 또 “너한테 줄게” 하는 식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사전준비 없이 나이가 들면 유류분 제도와 상관없이 그 집안은 엉망이 돼 버리는 거죠.
#3. 롯데도 SK도 챙기지 못한 상속
권 편집장 지난해 불거진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강 변호사 롯데그룹도 실무자 차원에서는 상속세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롯데는 상속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고, 분쟁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롯데의 집안일로 끝난 게 아니라 국민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임 변호사 롯데의 경우 주로 보도된 내용밖에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만 상속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보다 빨리 좀 더 명확하게’ 나눴어야 했죠. 자녀들이 나중에 딴 생각을 못하게 말입니다.
이 회계사 롯데그룹도 전형적으로 기업 지분 정리를 미리 못해 둔 경우죠. 두 가지가 겹쳤다고 볼 수 있는데, 장남 신동주, 차남 신동빈 두 형제의 지분을 비슷하게 놔뒀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었고, 회장님이 90세가 넘어서 고령인 부분이 겹쳐지면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권 편집장 기업 오너들 중에는 비교적 젊었을 때 상속 플랜 수립을 의뢰하는 경우가 없나요.
이 회계사 요즘은 많아졌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정리를 해 놓습니다. 처음에는 자식들을 경쟁시키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사업군을 나눠서 지분 정리를 미리 해 둡니다. 그리되면 적어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낮습니다.
권 편집장 일반 자산가들도 대비를 합니까.
임 변호사 상속에 관심을 갖는 일반 자산가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사실 상속이라는 것이 사전증여 내지는 유증입니다. 저는 유언장을 작성한 다음에 5년에 한 번씩 리뷰를 하라고 조언해요. 왜냐하면 상속은 수치가 아무리 복잡해도 간단하게 말하면 수영장에 100이라는 물이 있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나누느냐는 거죠. 보통 5년 정도 지나면 재정 상황이 바뀌잖아요. 원래 플랜에서 어긋나게 되는 거죠.
권 편집장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이 혼외자를 인정했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상속 문제로 이어질 텐데요.
임 변호사 혼외자의 경우도 법률상으로는 평등한 자식이기 때문에 상속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겠지요. 혼외자를 둔 사람들 중엔 사전에 준비하는 이들도 있는데, 다만 준비는 하는데 근거는 안 남겨 놓는 경우가 많아요. 숨기고 싶은 거죠. 법원에서는 근거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회계사 혼외자가 있으면 반드시 유언을 해야 합니다. 분쟁이 일어나는 대부분 원인은 혼외자가 있는데 유언을 안 해 놓는 경우예요. 그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서로 합의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임 변호사 혼외자 문제의 법률적 분쟁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가 뭐냐 하면 (사전에 준 재산이) 혼외자에게 준 것인지 내연녀에게 준 것인지의 문제죠. 실제로 문제는 그런 쪽에서 많이 발생하죠. #4. 상속, 불신의 법 틀에 갇히다
권 편집장 상속 분쟁이나 소송이 늘어나고 있는데 과연 현재의 법체계가 이러한 것을 다 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 회계사 미국의 경우 500만 달러까지 증여세가 면제됩니다. 상당히 큰 금액을 사전에 어느 정도 세금 없이 정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자식에게 증여할 경우 공제 혜택이 5000만 원에 불과합니다. 너무 적어서 미리미리 못 주다 보니까 상속으로 다 몰리는 거죠. 미리 주면 증여세를 내야 하니까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계속 미루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죠. 미국처럼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공제 액수가 높다고 하면 사전에 정리가 돼서 분쟁은 줄어들 겁니다.
권 편집장 한국에서 경영권 승계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은 없나요.
이 회계사 (현행 법체계에서) 회사 경영권이 2~3대를 지나면 사실 경영권을 내놔야 합니다. 세금을 다 내게 되면 경영권 지분이 자꾸 없어지니까요. 오너들의 생각은 사실 재산에 대한 욕심보다도 기업에 대한 욕심이 큽니다. 이 기업이 영구적으로 존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적 분위기는 경영권이 세습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부정적이어서 그것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임 변호사 앞서 말한 생전 증여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노노(老老)상속’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90세 넘은 아버지가 70세 넘은 아들에게 상속해준다는 거죠. 조금 젊었을 때 돈이 가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서 부유층에게 특혜를 주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죠. 하지만 ‘노청(老靑)상속’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강 변호사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상속·증여세가 50% 가까이 돼서 이 50%의 세금을 내고는 경영권을 지키는 게 어렵죠. 그래서 가업승계 지원 제도 등도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가업승계는 요건이 까다롭고 사후관리 요건도 많아서 중견기업가들이 관심은 갖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한시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상속 단계에는 과세를 안 하고 이연시켰다가 나중에 내도록 하는 제도도 있는데, 경제 전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국민들의 의식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죠.
권 편집장 문제를 풀 실마리가 없는 건가요.
강 변호사 현행 제도 아래서 경영권에 영향을 안 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오랫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현재 제도가 그렇다면 세금을 안 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절세를 하면서 큰 탈 없이 경영권 승계를 할 수 있을지 준비해야 합니다. 치밀한 플랜이 필요한 거죠.
이 회계사 기부와 관련해서도 법률 개정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최대주주가 기부를 원해도 보유 지분의 10% 이상 기부를 하면 과세를 합니다. 미국의 빌 게이츠처럼 전 재산으로 공익법인을 세워서 기부하고 싶다고 해도 증여세가 과세돼 절반을 내야 합니다. 또 조건부 기부를 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1000억 원을 기부할 테니까 살아 있을 때까진 2000만 원씩 용돈을 달라’고 조건을 붙일 수가 없어요. 기부에 있어서도 다양한 조건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강 변호사 사실은 상속·증여세가 우리나라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밖에 되지 않거든요. 아주 미미합니다.
임 변호사 상속세는 세수로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상징적인 세제라고 봐야죠.
강 변호사 그렇죠. 상속세는 국가 경제나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데 정치적 측면이 강해요. 유럽의 경우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주주는 지위만 가지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데 우리나라는 아직은 힘들 것 같아요. 과세당국의 입장에서는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데도 제도 개정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신탁제도와 기부제도 등을 활성화해 기업이 승계 절차를 자연스럽게 밟아가게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변칙적인 방법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도를 자꾸 강화하는 겁니다.
이 회계사 세수 효과는 사실 제가 감사원에 있을 때 보면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이 2000명 정도 됐어요. 100억 원 이상, 10억 원 이상 납부자를 찾겠다고 훑어보면 막상 없어요. 사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할 때도 상속·증여가 고민스러운 세금이 됐잖아요. 결국 다 빠져나가고 세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데 말이죠. #5. 낯선 신탁, 한국에서 통할까
권 편집장 최근 상속의 방법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실제 많이 권유하나요.
임 변호사 노력은 많이 하는데요.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시작 단계라서 선례가 풍부하지 못해요. 자신 있게 이렇게 해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죠. 신탁에 대한 가장 큰 저항감은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넘기는 부분 같아요. 수탁자를 신뢰하지 못하거든요.
이 회계사 맞아요. 미국처럼 계약관계가 상당히 습관화된 데는 수탁자를 믿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수탁자를 못 믿는 거예요. 우리는 은행에 맡기지만 외국에서는 변호사를 수탁자로 지정하거든요.
임 변호사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신탁을 이용해서 상속을 한다고 했을 때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들 해요. 그래서 장애자를 위해서 증여세 5억 원을 면제하는 것 외에는 세제상 혜택이 전혀 없어요.
강 변호사 정부 정책은 신탁이나 공익법인이나 상속인들이 관여하거나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꾸 벽을 쌓아 나가는 거죠. 그렇지만 자산가들은 길만 조금 열려 있으면 신탁도 하고 기부도 많이 할 것 같다고 해요.
임 변호사 신탁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케이스는 아버지가 자산가인 부부가 이혼을 하는데 자녀가 어린 경우예요. 아버지가 갑자기 급사할 경우 어머니가 나타나서 친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그런 경우에는 미리 신탁을 해 놓으면 막을 수가 있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해를 해요.
#6. 상속,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권 편집장 상속을 준비한다고 하면 유언장이 떠오르는데요.
임 변호사 사전준비라고 하면 사전증여와 유언장입니다. 다들 상속세를 적게 내는 것만 생각하는데 상속세를 어떻게 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리 차분하게 준비를 한다면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습니다.
권 편집장 일단 생각부터 바뀌어야겠군요. 사전 계획을 짜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거네요.
임 변호사 상담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자가 아니에요.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주인공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회계사 준비를 안 해 놓으면 법대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경영권이 날아갈 수도 있죠. 사전에 준비를 하면 세금이 얼마인데 그걸 어떻게 납부할지를 알려줄 수 있는 거예요.
임 변호사 피상속인 입장에서 미리 다 물려주는 게 걱정이 된다면 사전증여는 하지 말고, 유언장이라고 써 놔야 해요. 유언장은 언제든지 바꿀 수가 있거든요. 아무것도 안 해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죠.
권 편집장 하지만 유언장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죠. 전체 사망자의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
임 변호사 유언장 비용이 최고 300만 원 정도 하거든요. 공증비용이 그렇다는 거죠. 사후 분쟁을 염두에 두고 걱정을 한다면 유언을 남겨야죠. 저는 자필증서로 유언을 할 수 있지만 예외 없이 공증으로 하라고 하죠.
이 회계사 아주 큰 기업이 아니면 사실 상속을 준비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가업상속으로 넘겨주어야겠다고 하면 가업상속에 맞게 계속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회사를 합병시켜서 없애 버리거나 해서 다시 기산되게 하면 안 되거든요. 대부분의 기업은 특례를 받을 수 있는데 그걸 준비하지 않으면 상속세 폭탄을 맞는 거죠.
권 편집장 대기업 오너가 아니더라도 강남에 보면 100억~
200억 원대 자산가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의 경우 상속 준비가 잘 안 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이 회계사 예. 그분들은 대부분 미루죠. 10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시니까.(웃음)
임 변호사 유언이라도 해 둬라. 일단 거기서부터 하라는 거죠. 사전증여를 하고 10년이 넘어가야 상속세를 안 내니까. 그러면 자식들은 10년은 더 사셔야 한다고 할 거예요.(웃음)
이 회계사 앞으로 10년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의 10년을 되돌아보면 기업들이 10배, 20배 성장한 곳이 수두룩합니다. 그때 아들에게 증여를 했다면 세금을 거의 안 낸 꼴이 되겠죠. 하지만 지금은 경제가 완전히 성숙기에 들어서 앞으로 10년 후에도 지금 같은 성장을 할 지는 의문이 드네요.
권 편집장 최근 성년후견제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노령에 치매 등으로 발생하는 상속 문제들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임 변호사 정신은 오락가락 하는데 육체는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문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몇십 년을 더 살고 그동안 가족들은 계속 싸우는 상황이 전개되는 겁니다. 부모님을 서로 모셔 가서 유언장을 다시 쓰는 일도 생기고 급기야 유언무효소송으로도 번지죠. 사전준비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성년후견제도든 사전에 미리 방향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거죠.
강 변호사 기본적으로 상속에 대한 정책의 방향은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자산가들은 기본적으로 세금을 빼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우리나라 국민들도 부에 대한 존경심은 적은 편인데 자산가들이 그런 인식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상속도 이제는 불신, 의심에서 벗어나 신뢰와 긍정적인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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