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방’들은 다 무엇인가.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의 이중적인 성문화가 참 이상하다.
얼마 전 독일의 유력한 조간지 주재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있어 만나게 됐다. 그의 인터뷰 질문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성을 공부하고 교육하고 상담하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그가 체득한 독일의 성문화와 성교육 등에 대해 듣고 싶어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이 꽤 보수적인 나라임에도(그렇게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문화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서 ‘키스방’, ‘샤워방’, ‘안마방’에 대해 물었다. 주변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안마방이나 그런 방들에 가서 성행위를 하는 것을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성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면서 강원도 삼척시나 제주도의 성박물관에 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스스럼없이 거닐고, 연인들도 놀랄 만큼 외설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젊은이들은 왜 연인이 있다는 이야길 부모에게 숨기거나 거짓말하느냐는 것이었다.
BBC가 선정한 정욕의 나라, 한국?
그의 질문을 들으면서 나도 다시 생각하게 됐지만,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참 이상하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 성에 대한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불편해하면서도 속의 문화는 아주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많은 다양한 ‘방’들이 그 증거다.
물론 ‘온 국민이 애용하는’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애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성매매 업소들이 학교 주변까지 들어와서 젊다 못해 어린 여자들의 반나체 사진을 담은 명함을 학원가 여기저기 붙여 놓고, 뿌려 댄다. 주택가 오피스텔까지 성매매 업소들은 자리를 잡고 영업을 한다.
간통죄를 형사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 아침부터 ‘불륜’ 천지인 막장 TV 드라마를 내내 방송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성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더욱 수상하다. 건강한 성담론에 대해 말하기는 주저하면서, 어린 아이돌의 선정적인 눈빛이라든지 춤 동작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고, 오늘날의 성문화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지 않은가?
그 많은 포털사이트에는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걱정스러운 기사 옆에까지 반드시 이상한 문구를 단 여자들의 벗은 몸의 성찬이 이뤄진다.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선정한 정욕의 나라 1위도 모자라서(포르노 소비 1위국), ‘성적으로 가장 문란한’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듣고 있는 나라. 그러면서 학교, 가정, 언론 어디서도 성에 대한 건강한 성담론은 쉽게 풀어 놓을 수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독일 기자에 의하면 독일은 최근 청소년이 첫 성경험을 하는 나이가 2~3년 늦춰졌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과 함께 건강한 성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회문화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을 다스릴 때, 영국은 그야말로 성적으로 엄격한 가치를 국민에게 요구했다. 부부간의 성관계도 아기를 낳는 목적이 아니면 금지했고, 도서관에 여성과 남성 저자가 쓴 책을 섞어 꽂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여성 앞에 ‘다리’라거나 ‘가슴’이란 말을 할 수 없어서 ‘화이트 미트(white meat)’라고 닭고기 요리를 불렀다고 한다.
그 결과 나라가 아주 성적으로 맑고 고결해졌는가 하면 오히려 숨기는 바람에 더욱 문란해졌다. 성매매가 가장 많았고, 매독 같은 성병이 창궐했다고 하며, 불륜이 유행처럼 쉬쉬하며 퍼졌다.
성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인 데다 살아 있고, 사랑을 원하고, 번성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자 욕구가 있기 때문에 숨기고, 말 못하게 하고, 드러내지 못하게 하면 더욱 곰팡이처럼 번성하는 것, 금기를 어기려는 본능을 자극하는 가장 1순위가 성이라 할 수 있다.
언론과 학교, 부모가 성과 피임에 대해 말하는 나라의 미혼모 발생률은 아주 낮다고 한다. 성교육이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어릴 때부터 어디서나 행해져야 하는 이유다.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건강한 성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사회는 훨씬 성적으로 자신을 잘 통제하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사고에 대해서는 사회의 구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잘 다듬으면 된다.
부모에게 자신의 성을 숨기고 심지어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나 자신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가정 속의 누구라는 역할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해석을 내놓는 나에게 독일에서 온 기자는 “그래서 요즘은 개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가요?”라고 묻는다. 나는 대답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잖아요.”
그도 웃고 나도 웃었지만, 건강한 성담론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여기저기서 펼쳐지길 소망한다.
배정원 애정생활코치·성 전문가·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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