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소통

50대 가장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삼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퇴직한 뒤에도 삼시 세끼를 모두 집에서 먹지 말라는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50대 중년 남성 중에 가정 내 관계 및 소통에 능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관건은 노력 여하에 달렸다. 아내와 함께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하는 김영익(57)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났다.
[Cover]김영익 서강대 교수 “농사지으며 두런두런~ 웃음꽃이 피었죠”
“퇴직한 지인들을 보면 집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낯설어 해요. 무엇을 같이 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바뀌지 않으면 나중엔 정말 큰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죠.”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요즘 주변 사람들과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전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동행한 여행에서도 서예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노후에 ‘나갈 만한 사무실’을 함께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남자들은 늙어 죽을 때 까지 나갈 곳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에 모두들 크게 공감했다”며 “그만큼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소위 말하는 ‘58년 개띠’ 즉, 베이비붐 세대의 중심이다. 어렵던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서강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밤낮없이 일했다.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에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누구든 일에 파묻혀 지냈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개인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깥’이 1번인 시대였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말 일이 많습니다. 전 세계 경제 동향을 파악, 분석하려면 새벽부터 출근해 밤늦도록 공부하고 또 일하지 않으면 안 되죠. 부끄럽지만 저도 집안일은 크게 신경 쓰지 못했어요. 몇 년 전에 딸에게 ‘아빠 팔짱 한 번 껴보라’고 했는데 서로 어색했죠. 습관이 안 돼 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안타깝던지….”

아내 박현주 씨는 “소통하기엔 남편이 너무 바빴다”며 “그런 남편이 때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기 때문에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Cover]김영익 서강대 교수 “농사지으며 두런두런~ 웃음꽃이 피었죠”
텃밭에서 찾은 부부 행복법
“여보, 주말 농장을 해보는 건 어때요?”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남편에게 와인 한 잔 하자고 했다. 손편지를 내밀었다. ‘이렇게 바쁘게만 살아서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오래전부터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아내가 김 교수에게 주말 농장을 제안했다. 인천 강화도에 얻어 둔 조그만 시골집에 텃밭을 만들자는 얘기였다.

그렇게 부부는 1년 전부터 892.5㎡ 규모의 텃밭에 작물을 심고 공동의 미션을 수행해 오고 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전남 함평의 시골에서 나고 자란 김 교수는 농사에 소질이 있었다. 무엇보다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봄에는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부쳐 먹고 가을엔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어 먹었어요. 오이며 고추며 유기농을 먹으니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강화도까지 운전해서 가는 길, 텃밭을 가꾸는 동안에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저절로 관계도 좋아졌죠. 주말에 거기 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비워집니다. 정말 행복해요.”

전원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다는 박 씨는 앞으로 강화도 전원주택이 보다 가족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가족이 더 늘면 다 같이 모여서 가깝게 지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함께하는 그림을 상상하면 흐뭇해요.”

김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줄여 가는 삶을 살고자 한다. 집 크기도 줄이고 일도 줄이는 대신 본질에 충실하자는 것이 목표다. 몇 년 전 딸의 결혼식에서는 가족끼리 축가를 불렀다. 요즘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방에 가족창을 만들어 먼저 ‘영화 번개’를 추진하기도 한다. 농장을 하면서는 주말에 골프 약속도 거의 잡지 않는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게 당연지사다.

김 교수는 “익숙지 않더라도 노력할 수밖에 없다”며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 아버지 혹은 남편으로서 먼저 다가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족들도 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직장선 소탈한 리더… “밥 사는 게 일이었죠”
대신증권, 하나금융투자의 리서치센터장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역임한 김 교수는 직장에서 친근한 리더로 유명했다. 25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윗사람, 아랫사람과 갈등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아내 박현주 씨는 “지금도 ‘밥 사달라’고 찾아오는 현역 시절 후배들이 수십 명은 될 것이다”라고 거들었다.

많은 50대들이 직장 내에서 ‘퇴물’ 취급을 받고, 심지어 어린 후배들에게 ‘왕따’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 위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옛 시절은 잃어버리고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박사과정을 밟았던 그는 최신의 지식을 많이 알아야 했기에 젊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 아랫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령, 여직원이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가장 먼저 알은체를 했다.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버리고 소탈하고 편하게 다가갔더니 ‘밥 사달라’며 찾아오는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후배들에게 밥은 무척이나 많이 샀습니다. 소문이 났는지 다른 부서 연구원이 저녁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가 소주를 많이 마신다 싶더니 토하고 쓰러져 난감했던 기억도 있네요.(웃음) 학교에 (교수로) 온 뒤론 학생들과 소통하려 노력합니다. 리포트를 직접 받는데 ‘가을 하늘이 좋다’, ‘학생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 등의 코멘트도 함께 써주고 있어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