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focus]수상한 금융동맹, 정부 전위대 전락?
최근 KB·신한·하나금융지주의 끈끈한 ‘금융동맹(?)’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정부 정책을 선두에서 추인하는 전위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잇달아 보여준 끈끈한 결속력이 금융권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연봉 반납, 청년희망펀드 가입 독려 등을 위해 이례적으로 3대 금융지주가 공동으로 보도자료를 내는 등 마치 정부 정책의 전위대와 같은 발빠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금융권에서 갸우뚱하는 대목은 왜 3대 금융지주냐는 거다. 은행으로 치자면 총 자산이 279조 원에 달하는 우리은행이 있고, 금융지주로 치면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로 자산규모가 315조 원대로 불어난 NH농협금융지주가 있는데 왜 하필 3대 금융지주로 선을 긋고 나섰느냐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청년 실업률 제고, 청년희망펀드 가입 확산 등 정부의 곤궁한 상황마다 입이라도 맞춘 듯 3대 금융지주가 선도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서는 이들 지주사 내부 구성원들까지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3대 지주, 정부 정책에 기꺼이 조연?
금융지주 3자 연대의 시작은 이랬다. 9월 2일 윤종규 회장, 한동우 회장, 김정태 회장이 조찬모임을 갖고, 연봉을 자진 반납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국(?)의 결단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져 이들 금융지주 회장 3명은 바로 다음 날인 3일 ‘금융그룹 회장단 공동 발표문’을 내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연봉 30%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연봉 반납은 도미노처럼 전체 금융권으로 퍼져 갔다. 지주 회장뿐만 아니라 3대 금융지주 계열의 대표들은 연봉 20%를, 임원은 10%를 반납하기로 결정했고,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도 연봉 20%를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성세환 BNK금융지주 회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등 지방 금융지주 회장들도 9월 3일 전화 회동을 하고 연봉 20%를 반납하겠다며 대열에 합류했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잘 짜인 각본에 3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앞장서 조연으로서 열연을 펼친 덕에 금융권 전체로 연봉 반납 도미노가 펼쳐지며, 일단 흥행을 위한 분위기 조성은 한 셈이다.

하지만 3대 금융지주의 결단을 순수하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많다. 공동 발표문을 내기 전에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3대 금융지주에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9월 11일 성명서를 내고 이 같은 금감원 고위 간부의 압박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 “3대 금융지주의 연간 연봉 반납분은 약 70억 원 정도이고 이를 통해 1년에 300여 명씩 신규 채용을 한다는 것인데, 따져보면 1인당 평균 연봉은 약 2300만 원으로 1년 일 시키고 해고할 한시적 인턴 일자리라는 얘기”라며 “금세 잘릴 인턴 채용이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공동 발표문에 실린 3대 금융그룹의 채용 확대 노력 현황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특히 KB금융의 경우 2015년도 채용 인원이 전년 대비 76% 증가한 1580여 명이라고 소개했는데 KB금융은 상반기 5500명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무려 1122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해 2분기에만 3454억 원의 퇴직비용을 소모한 바 있다. 몸집을 줄이기 위해 상반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이후 대외적으로는 전년 대비 청년 채용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고 멋쩍은 자화자찬을 한 꼴이다.
[issue & focus]수상한 금융동맹, 정부 전위대 전락?
동네북으로 전락한 금융권, 한숨 깊어져
연봉 반납을 발표한 지 3주도 지나지 않아 3대 금융지주는 또다시 남다른 결속력을 보여준다. 9월 22일 KB·신한·하나금융의 전 경영진 이름으로 청년희망펀드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것. 이번에도 3대 금융그룹은 공동 발표 형식으로 참여 의사를 알렸다.

윤종규 회장, 한동우 회장, 김정태 회장은 1000만 원을 일시금으로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고, 기존에 반납키로 한 연봉의 50% 해당액을 펀드에 넣기로 했다. 3대 금융그룹 경영진의 펀드 출연 금액은 대략 35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인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KEB하나은행에 2000만 원을 기부하고 매달 월급의 20%를 청년희망펀드에 내겠다고 1호 가입자 인증을 마친 뒤 황교안 국무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국무위원과 공공기관장이 펀드에 기부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희망펀드는 명칭에 펀드를 넣고는 있지만 청년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한 공익신탁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부라는 말이다. 기부금과 운용수익은 정부가 설립키로 한 청년희망재단(가칭)의 청년 일자리 사업 지원에 사용된다고 하지만 아직 재단 설립이나 구체적인 사용처도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또 기부 상품이기 때문에 국민적 호응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권이 앞장서 분위기 몰이에 나선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3대 금융그룹의 공동 발표는 각 지주사의 인적자원 관리를 맡고 있는 HR부서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홍보부서에서도 뒤늦게 통보를 받고 발표 문구를 수정하는 정도 선에서 참여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각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청년희망펀드 가입 관련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자사 소속 스포츠팀, 거래 기업 등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펀드 가입을 선전했다. 10월 15일 기준으로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은행권에서만 30개가 넘는 홍보자료가 나왔다.

신한은행 9건, KB국민은행이 7건,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이 각 6건, KEB하나은행 4건, 우리은행 3건 등이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관련 자료를 내지 않다가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한 10월 5일 이후 10일 동안 6건의 관련 자료를 쏟아냈다.

하나금융에서는 계열 금융사들이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강요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자 22일 밤 11시경에 급히 해명 자료를 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며 일부 직원들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사용처도 정해지지 않은 공익신탁으로 과연 청년일자리 지원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올해 정부에서 책정한 청년 고용 관련 예산 1조4000억 원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수십억 원의 펀드 조성으로 달라지겠냐는 회의론이다. 더구나 청년 일자리 창출은 정부에서 해결할 핵심 과제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국민 개개인처럼 행동하며 마치 IMF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처럼 일반 국민에게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펀드에 가입해 달라고 읍소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이 같은 은행권의 적극적인 정책 공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은행들이 정부의 개혁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부분은 아이러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페루에서 “지구상에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금융회사가 어디에 있느냐”며 한국 은행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데 대해 은행권은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사실 4시 폐점은 2009년에 노사 합의로 문 여는 시간과 문 닫는 시간을 각각 30분씩 앞당겨 정해진 것이다. 당시 폐점 뒤 입출금 숫자를 맞추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초과 근무를 진행해야 하는 애로사항을 감안했던 거다. 이를 보완해 각 은행에서는 일부 지역적 특색에 맞춰 영업시간을 늦춘 탄력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정책 추진에 맞춰 금융권이 알아서 기는 식의 공조를 맞춰 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금융권이 동네북처럼 이러 저리 치이다 못해 이제는 최 부총리의 발언 이후 노사 합의로 조정한 폐점 시간까지 다시 늦춰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