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복면가왕’이라는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있다. 나이와 신분, 직종뿐만 아니라 성별까지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노래 실력을 뽐내는 프로그램이다. 진행하는 패널은 물론 방청객과 시청자가 모두 가면 속에 숨겨져 있는 가수가 누구인지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시청률도 제법 높다.
겉모습만 보자면 우스꽝스러운 가면과 복장, 가면에 붙여진 이름까지 참으로 진지할 수 없는 모든 것들로 가려져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가면으로 인해 모든 관심과 신경을 집중하며 온전히 귀로 들리는 진정한 노래 실력만을 감상할 수 있게 되니 이는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복면가왕’을 보다 보면 우리가 쉽게 보이는 겉모습에만 집중하다 실제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동성이라는 시장의 겉모습에 현혹돼 펀더멘털이라는 진짜 들어야 할 가창력을 듣지 못하는 시장참여자들의 불안감이 종종 시장의 변동성을 오히려 증대시킨다.
최근에도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들의 발언 하나, 발표되는 자료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오늘은 기대에 못 미치는 실업률이 악재였으나, 내일은 그로 인해 금리 인상이 연기될 기대감으로 시장은 금세 호재라며 반색을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기 둔화도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이에 가면 뒤에 숨겨진 본래의 목소리를 찾는 ‘복면가왕’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감 이면에 숨겨진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시장을 지배하는 세 가지 불안감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첫 번째 불안감은 미국의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다. 이러한 두려움이 커지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글로벌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는데, 미국의 성장 부재로 글로벌 경기마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 Fed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이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경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Fed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미국의 실업률은 7년래 최저치인 5.1%까지 하락했으며, 미국의 월평균 신규 고용자 수는 2000년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처럼 견조한 고용시장 회복세는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감안할 때 미국 경제는 2016년에도 성장을 지속하며 글로벌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로 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다. 실제로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 7%가 무색하게 산업생산, 고정자산 투자, 소매판매 및 수출 등 실물지표는 연초 이후 둔화세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수많은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지표 하락세가 멈추지 않자,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현재 모습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 ‘경착륙’을 우려하기에는 좀 이른 시점이라 판단된다. 여전히 중국 정부의 정책 여력 및 의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인민은행의 추가 완화책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하반기에도 추가 금리 및 지급준비율 인하 등 추가 완화책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네 차례 인하하고 지준율도 두 차례 인하한 바 있지만, 낮은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는 2011년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정책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 확대에 따른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세 지역을 의미)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같은 주요 광역개발 사업을 구체화하고 중서부 지역 도시화를 위한 인프라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우려는 위험자산 특히, 주식에 대한 가격 부담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시장은 지난 3년간 큰 조정 없이 상승 랠리를 지속했으며, 이는 투자자들에게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주식시장이 고점에서 10% 가까이 조정을 받으면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증시의 경우 지난해 이후 지속된 비싼 밸류에이션은 투자자들의 투자 의지를 꺾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조정이 시작되기 전인 8월 16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주가수익비율(PER) 16.8배에 거래됐으나 이후 밸류에이션이 1배 이상 하락한 15.8배가 됐다. 일본과 유로존의 밸류에이션 또한 PER 기준으로 각각 약 2배 및 1.2배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까?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가운데 펀더멘털이 가장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지역과 자산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부합하는 시장으로 신흥국보다는 선진국, 선진국 가운데 유로존과 일본 주식을 추천한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로 인해 유로존 경제지표는 완만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되고 있어 ECB의 양적완화 조치가 연장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ECB의 완화적 정책 기조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중장기적인 유로화 약세를 견인할 것이며, 이는 유로존 기업 이익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존 기업들의 이익은 향후 12개월 동안 15% 이상의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일본 주식도 유로존과 유사한 배경을 갖고 있는데,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일본은행(BOJ)의 완화 정책이 일본 기업들의 체질 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년간 지속된 엔화 약세 등에 힘입어 기업의 이익 성장세는 글로벌에서 가장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완화 정책이 유로존·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주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양적완화로 인한 통화 약세가 수출 기업들의 환차익으로 이어지며 오랜 시간 불황을 겪은 두 지역 내 기업들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자신의 투자 성향과 그에 맞는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변동성은 곧 기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홍미숙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투자자문부장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