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빠져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한국인의 ‘땅 사랑’은 여전하다. 아직도 전체 자산 중 60~70%가 부동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자산은 금융 자산과는 달라서 개별 물건의 평가 금액이 제각각이고, 배분이나 분할이 쉽지 않아 상속인 간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 또 상속이나 증여 후에도 관리 투명성이나 수익 배분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다.
더구나 부동산 관련 세금은 4차 방정식처럼 복잡하다. 100억 원의 빌딩을 상속·증여할 때에 세금으로 나가는 돈만 30억~40억 원이라고 하니 세금을 줄이기 위해 며칠이고 주판알을 굴려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부동산 상속을 세금 측면이 아닌 가치 제고 쪽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세금 부분만 집중할 경우 정작 건물의 자산 가치 상승과 이를 통한 상속인들의 수익 증대 부분은 홀대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대를 건너 미래를 설계해줄 부동산 상속·증여의 기술을 담았다.
빌딩 부자 A씨의 사망 그후…
부동산이라는 것이 그렇다. 불가분의 자산인 데다가 어떻게 쪼개도 불만이 쏟아지게 돼 있다. 또한 현금화가 쉽지 않은 자산이라 상속 받은 후 상속인들이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에 15억 원대 아파트, 50억 원과 30억 원 상당의 상가를 가지고 있는 A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A씨는 고령의 나이에 유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망을 하게 됐는데, 이후 두 아들 간에 부동산 쟁탈전이 벌어졌다. 형제간에 협의를 통해 지분을 나누고 각각의 지분에 차액이 발생할 경우 정산을 할 수 있지만 남의 떡이 더 커보였는지 형제는 결국 법원에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하며 남보다도 못한 혈육이 됐다.
강호순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상속재산분할은 필요적 공동 소송이어서 상속인들 모두가 참여하도록 돼 있어 소송 당사자뿐 아니라 나머지 상속인들도 소송 과정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며 “소송 과정에서 감정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소송 당시 가족들 간에 인연을 끊는 경우도 생기는 만큼 피상속인이 생전에 미리 교통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속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간주상속재산’이라는 개념이다. 상속재산분할에서는 피상속인의 사망 당시 남겨진 상속 재산뿐 아니라 생전에 증여한 재산까지 포함하게 돼 있는데 재산 분할 시 생전증여(특별수익)는 물가상승분을 감안해 가치를 다시 평가하기 때문에 가족 간에 이를 놓고 다툼이 잦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2년 전 1억 원을 증여해 장남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돌아가시면서 3억 원의 상속 재산을 남겼다고 하자. 생전증여를 한 아파트의 가격이 사망 당시 급상승해 6억 원의 가치가 있는 아파트가 돼 있을 경우 간주상속재산은 생전의 6억 원과 사후 남은 상속 재산 3억 원을 더해 9억 원이 된다. 장남은 이미 6억 원을 증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남은 3억 원은 오로지 남은 형제들의 몫이 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속 재산의 권리를 주장할 경우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중도에 아파트를 팔아서 사업자금으로 사용해 자산가치가 변동됐다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생전증여분 계산에서는 그대로 현재 시가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시곗바늘을 10년 전으로 돌려보면 어떻게 변할까. 만약에 유언장을 통해 자녀들의 상속지분을 미리 정해 놓고 자녀들도 이에 동의했다면 상황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유언을 하게 되면 재산 변동 상황에 상관없이 유언이 효력을 갖게 돼 사후에 자식들 간에 재산 변동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10년 전에 사전증여를 해 두었다면 과거 10년 이전에 증여한 재산은 상속세 과세 대상에 합산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고, 10년 이내에 상속이 개시되더라도 증여 시점의 가액으로 상속 재산에 합산되므로 상속세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강 변호사는 “유언장 작성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게 유언장은 가장 최근의 것이 효력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유언장을 수정하면 된다”며 “자식들에게 유언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다면 유언을 했다는 사실만 전하고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부자들이 사전증여에 나서는 까닭
부동산에 대한 상속·증여세율은 자산 규모에 따라 최소 10%에서 50%까지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부동산이 30억 원을 초과하게 되면 50%의 최고 세율이 적용되며,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부동산의 특성을 고려하면 세금 납부를 위해 부동산을 급매물로 내놓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홍성희 삼정KPMG 이사는 “부동산 상속·증여에 대한 최고 세율이 높다 보니 고정자산인 부동산을 매각해 세금 납부 자금을 마련하는 일도 허다하다”며 “미래에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으면 막상 상속 시점이 돼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5월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상가와 업무용 빌딩 같은 상업용 부동산 증여는 지난해 1만3973건으로 2013년(1만951건)보다 3022건(27.5%) 늘었다. 그만큼 고액자산가들이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전증여에 나섰다는 소리다.
상속 시점에서부터 과거 10년 이전에 증여한 재산은 상속세 과세 대상에 합산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적극적인 증여를 계획하고 있다면 부담부증여나 전부증여를 고민할 만하다. 부담부증여는 증여 재산에 있는 증여자의 채무(임대보증금 등 포함)를 증여받는 사람에게 함께 주는 것으로 증여세가 누진제로 돼 있기 때문에 부채를 안고 증여를 하면 부채만큼 제하고 증여세가 산정되기 때문에 세금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부동산이 시간이 지나 가격이 상승해 양도차익이 커지고, 상속 시 임대보증금이 상속 재산액에 포함돼 오히려 세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전부증여는 말 그대로 임대보증금이 포함된 자산을 상속인에게 증여하는 것으로 향후 상속 시 상속 재산액이 임대보증금만큼 감소해 상속세 산정 시 세액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최소 5억 원에서 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는 배우자 상속공제를 활용하면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만 5억 원을 초과할 경우 공제액만큼 배우자가 실제 상속을 받아야 한다. 피상속인과 상속인이 상속개시일로부터 소급해 10년 이상 1세대 1주택에서 계속 동거하고 있고, 상속개시일 현재 상속인이 무주택자인 경우 동거주택 상속공제를 통해 주택가액의 40%, 최대 5억 원 한도에서 공제를 받는 방법도 있다.
세금공제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세금 신고다. 상속세의 경우 상속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에서 6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만 해도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공제받을 수 있는데 신고기한을 넘기게 되면 최고 20% 가산세를 부과받으며, 정상적인 경우보다 세금을 30% 이상 더 내게 될 수 있다.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은 부동산 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세금을 납부할 재원 마련도 준비해 둬야 한다. 우선 생전 증여한 지분에서 발생한 소득에는 따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부동산의 일부 지분을 생전에 증여하고 건물 관리는 피상속인이 계속 갖고 있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건물 관리 미숙으로 인한 손실을 상당 기간 방지하면서 자녀들에게 세금납부 재원을 마련해줄 수 있다.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을 가입해 피상속인의 사망보험금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의 명의인데 배우자나 자녀를 계약자와 수익자로, 피상속인을 피보험자로 지정해 가입해야 절세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리츠의 이점
부동산 상속·증여를 절세 측면에서만 접근할 경우 향후 부동산의 가치 하락이나 상속인 간의 원활한 지분 분배가 소홀해질 수 있다.
부동산 컨설팅 전문가인 지은용 알파트너스 대표는 “부동산을 세금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로펌에서는 분쟁 해결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내놓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상속 자산이 손실이 나지 않게 가치를 올리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부동산의 관리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유언대용신탁이나 부동산의 법인화, 리츠(REITs, 부동산간접투자)를 활용한 부동산 개발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우선 KEB하나은행 등에서 상품화시킨 부동산 트러스트 등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피상속인이 금융기관 등 신탁 서비스 기관과 계약을 맺고 건물 및 임차인 관리, 건물의 리모델링 및 신축 등을 맡기는 것인데 생전에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관리, 운영하면서 임대수익 등을 챙길 수 있고, 사후에는 본인이 정한 대로 상속인이나 제3자 기부로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이 같은 신탁 서비스는 절세라는 측면보다는 부동산의 자산 보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고령의 피상속인이 건물 관리 등에 어려움을 겪을 때 금융기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맡겨 건물 관리 및 사후 상속 등을 진행하는 유용한 팁이 되고 있다.
개인 임대사업의 법인 전환도 부동산의 사전증여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고소득 임대사업자의 경우 최고 38%의 소득세율이 적용되는데 임대사업을 법인으로 전환해 관리하면 10~20%(200억 원 초과분은 22%)의 세율로 법인세를 내면 되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또 부동산으로 상속하는 것보다 주식으로 상속하게 되면 다수의 상속인에게 지분을 나눠주기에 쉽고, 실제 미리 주식을 분할해 사전증여나 양도를 수시로 진행하면 취득세 등이 별도로 부과되지 않는 장점도 있다. 상속세 납부도 용이하다. 상속인들이 세금 납부를 위해 임대용 부동산을 긴급히 처분하지 않아도 일부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납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덩치가 크다면 부동산간접투자 기구인 리츠를 설립해 운영 자산 배분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도 모색할 만하다. 최근 정부에서 리츠를 활성화하기 위해 리츠가 보유하거나 개발한 부동산들이 연면적을 모두 합해 70% 이상 임대주택이면 주식을 공모하거나 분산할 의무를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시장의 진입로를 넓혔다.
이전에는 자기관리리츠의 경우 주주 1인이 발행주식 총수의 30%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 개인사업자보다는 기관투자가 중심의 사모 형태로 리츠 시장이 운용됐었다. 다만 자기관리리츠에 대한 영업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자기자본 500억 원 이상이고 2회 이상 추가 부동산 매입·임대사업을 진행한 경험 등을 시장 진입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은용 대표는 “부동산은 수익형과 무수익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임대료가 나오는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이 아닌 임야나 땅과 같은 무수익형은 상속 시 세금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만큼 피상속인 생전에 부동산 자산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며 “부동산 규모가 크다면 리츠를 활용해 부동산을 개발한 뒤 상속인들이 공동 지분을 나눠 갖고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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