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는 잊어라. 두상을 고려한 헤어 커트부터 남자의 로망 스팀 면도, 구레나룻 등의 잔털 정리까지. 남자의 섬세한 고민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공간이 부활했다.

‘클럽(club)’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는지. 본디 클럽은 18세기 영국 젠틀맨의 사교장이었다. 특정 정당이나 예술 사조를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사교회장으로, 여성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다. 오로지 남자만의, 남자만을 위한 이 공간은 노동계층의 사교장인 펍(pub)과 대비되는 신사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오늘날, ‘놀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남자들에게 권한다. 술 아니면 골프로 한정된 유흥 거리가 슬슬 싫증난다면, ‘바버숍(barber shop)’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칙칙하고 퇴폐적인 이발소는 잊어라. 포마드와 핸드메이드 빗으로 깔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정통 습식 면도가 선사하는 개운함, 맞춤 슈트와 구두 케어 서비스까지. 바버숍이 남자들의 새로운 놀이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옛날, 아버지의 단골 이발소를 따라다녔던 사람은 안다. 미용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입구부터 강하게 피어오르는 수컷의 향기. 숙련된 이발사의 경쾌한 가위질 소리. 빈틈없이 갈아낸 면도날이 턱 선을 지나는 매끄러운 느낌. 그러나 언제부터 이발소는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삼색등도 점점 희귀해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몇 동네 이발소는 ‘할아버지나 가는 곳’이란 오해 속에 세월만 켜켜이 쌓여 간다.

이발소는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같이 어울리고,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나누는 ‘남성 전용 살롱’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자들도 미용실에 출입하게 되면서, 디테일이 요구되는 구레나룻과 눈썹, 코털 정리가 불가능하게 됐다. 남자들끼리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하나 줄어든 것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겪던 불편함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부터 패션 스타일까지 바쁜 비즈니스맨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여유와 만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자리한 바버숍 ‘인더부스(In the Booth)’의 유승철 대표는 줄어만 가는 남성 전용 공간에 의문을 제기하다 직접 바버숍을 창업했다. 회계사이면서 금융계 출신인 그가 직장인으로서 겪었던 불편을 해소하고자 커트와 면도, 두피 진단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정장부터 비즈니스캐주얼까지 오더메이드로 진행하는 테일러숍을 한 곳으로 모은 것.

현존하는 바버숍 중 가장 핫한 곳 중 하나인 ‘헤아(Herr)’ 역시 외국계 투자은행에 다니던 금융맨 이상윤 대표의 작품이다. 항상 슈트를 입는 직업이기에 슈트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 절실했는데, 여자 눈치 보지 않고 제대로 머리를 만질 수 있는 곳이 없어 많이 불편했었다고.
“이미 뉴욕에서는 몇 년 전부터 럭셔리 바버숍이 성행했어요. 헤어살롱에 다니던 80%의 남자들이 다시 바버숍으로 돌아왔을 정도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바버숍이 더 흥하면 흥했지, 사그라지진 않을 것이라 봅니다. 남자들은 ‘미용실’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으니까요.”

1시간에 최대 3명까지 예약제로 운영하는 헤아 1호점은 이미 포화상태. 얼마 전 남성 패션 브랜드 ‘클럽모나코맨즈’의 롯데백화점 본점 지점에 숍인숍 형태로 2호점을 오픈, 뜨거운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밖에 도루코에서도 ‘지금, 당신의 날은 특별합니까?’란 슬로건을 앞세워 ‘도루코바버샵버스(www.dorcobarbershop.com)’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0대의 젊은 비즈니스맨부터 60대 은발 신사까지 마음 편하게 즐기다 가는 곳. 바버숍의 흥행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자들이여,  ‘바버숍’에서 놀자
서초동
·인더부스 (In the Booth)

서초구 법조타운 앞에 자리한 인더부스는 미취학 아동부터 70대 신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하는 바버숍. 법조계와 금융계 등의 전문직 종사자와 사업가, 공직자 등 고객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숍 안에 테일러메이드가 상주하고 있어 패션 스타일 상담도 가능. 인더부스의 모토는 ‘나만의 깊은 멋’이기 때문에 유행을 좇는 얄팍한 치장보다 내면에 잠재한 멋을 끌어내고 싶은 남자에게 추천한다. 커트는 4만 원, 면도는 6만 원부터. 이발 후 2주 안에 부자가 함께 방문하면 6만 원에 2인 커트를 제공하는 ‘피프틴스 스타일링(15th Styling)’이 인기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99-6 이산빌딩 1층
02-532-7415
남자들이여,  ‘바버숍’에서 놀자
한남동
·헤아 (Herr)

독일어로 ‘미스터(Mr)’를 뜻하는 헤아에서는 영국 정통 습식 면도를 체험할 수 있다. 한남동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한 멋스러운 매장에서 정장을 입은 15년 경력의 바버가 개개인의 두상에 맞는 맞춤 스타일링을 제공한다. 시가 라운지와 위스키 바가 있어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거운 곳. 셰이빙·향수·헤어용품은 물론 넥타이와 커프스 등의 패션소품도 쇼핑할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딘이 즐겨하던 ‘리젠트 스타일’에 도전하고 싶은 남자에게 적격이다. 비용은 서비스에 따라 7만~20만 원 선.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57
01-511-9464
남자들이여,  ‘바버숍’에서 놀자
신사동
·블레스 바버숍 (Bless Barbershop)

‘We bless your hair!’ 헤어스타일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블레스 바버숍은 헤어스타일리스트 예원상이 대표로 있는 곳. 유엔빌리지에 있던 ‘예원상 이발소’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자도 출입 가능하며 ‘커트의 달인’으로 소문난 대표의 명성대로 배두나, 최시원, 모델 지현정 등 스타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커트, 파마, 염색, 면도, 눈썹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바버들마다 자신만의 이발 가위와 면도칼로 독자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헤어컷은 5만5000원부터.

서울 강남구 언주로 172길 65
02-517-3988


이현화 기자 lee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