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금 목원대 명예교수

이규금(64) 전 목원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조 꽃할배(꽃보다 할배)’로 불린다. 본업이 따로 있음에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를 내 집처럼 누벼 온 세월이 자그마치 20년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자유여행가로 이끈 원동력이다.
[Special Trend]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면 누구나 ‘꽃할배’”
“요즘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배낭여행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입니다. 친구들이 은퇴했거나 퇴직할 나이가 되다 보니 여행에 관심을 갖는 거죠. 저는 ‘시간과 건강, 호기심이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중에서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가 배낭여행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죠.”

이규금 목원대 명예교수가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은 ‘궁미’다.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다’는 뜻인데,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눈빛이 유독 반짝이는 이유는 청년 못잖은 왕성한 호기심 때문일 테다.

이 교수는 젊은 시절, 김찬삼 교수가 쓴 ‘세계여행기’를 수십 번 읽었다. 이 책을 탐독하며 언젠가 전 세계를 두 발로 거닐어 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가 처음 자유여행을 한 건 40대 초반인 1993년, 미국 일리노이대에 방문교수로 갔다가 미국을 돌아본 것이 계기가 됐다. 렌트카에 캠핑 장비를 잔뜩 싣고 가족들과 대륙을 횡단하며 느꼈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행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그로부터 10년 뒤, 방학을 이용해 아내와 중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밤에는 야간열차에서 쪽잠을 자고 낮에는 열차의 종착지에 내려 현지 관광을 했다. 그렇게 중국 실크로드를 거쳐 백두산까지 종주하며 또 한 번 ‘심장이 요동치는 짜릿함’을 맛봤다.

2011년, 학교에서의 마지막 안식년을 아내와 함께하는 세계일주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그때 내 나이 예순하나, 마침 환갑이라 명분도 있어 그동안 여행을 위해 조금씩 모아 온 돈을 탈탈 털었다”며 껄껄 웃었다.
페루 띠띠까까 우루스 섬의 공연장.
페루 띠띠까까 우루스 섬의 공연장.
막상 지도를 펼치고 보니 너무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마이월드 66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현재까지 가 본 나라를 체크하면 지도상에 붉게 표시가 되는데,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중남미와 북유럽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구글 어스와 구글 맵스를 컴퓨터에 띄워 놓고 원월드 홈페이지의 플레이어를 사용해 수차례 여정을 고민한 끝에 홍콩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유럽, 중앙아메리카, 일본을 돌아 귀국하는 158일간의 세계일주 계획이 완성됐다. 비행기는 물론 전용버스, 트럭, 렌터카, 야간버스, 야간기차, 크루즈, 전철, 시내버스, 택시, 도보 등 모든 운송수단을 고루 이용하는 것이 전제였다.


‘세계여행기’ 탐독하다 세계여행에 나서다
세계일주의 기착지는 홍콩이었다. 한국에서 온 패키지여행팀과 6일 동안 홍콩, 마카오, 중국 선전을 둘러봤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최남단 케이프타운으로 날아가 트럭을 이용한 현지 캠핑 투어에 합류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 돌면서 동물의 왕국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로 날아가 렌트카로 이베리아 반도를 한 바퀴 돌면서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충돌 흔적을 확인했다.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는 지중해 크루즈 선을 탔다. 먹는 걱정, 숙박 걱정, 이동 걱정 없이 선상 공연도 보면서 여유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너무 힘들게 여행하다 보면 체력이 고갈될 수도, 쉽게 지칠 수도 있으니 고생하는 여행과 편안한 여행의 일정을 적절히 안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루즈 여행을 끝내고 터키로 향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버스로 터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이스탄불에서 항공편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서 동유럽을 기차로 9일간 돌아봤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영국 런던에 머물다 북미의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마이애미에서는 휴식도 할 겸 카리브 해 크루즈 여행을 즐겼으며, 크루즈 후에는 파나마와 멕시코 등의 나라를 여행하며 마야 문명을 구경했다. 마지막 여정은 일본.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까지 가는 일정을 계획했지만 예상치 못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후지 산을 중심으로 일본 알프스를 한 바퀴 돌면서 일본 열도를 버스 타고 횡단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처럼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요, 모험과 도전의 반복이었다. 정확히 158일 만에 한국의 집으로 돌아왔다.
멕시코 칸쿤의 마야 유적 앞에서 아내와 함께.
멕시코 칸쿤의 마야 유적 앞에서 아내와 함께.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컸어요.(웃음) 여행으로 인해 삶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몰랐던 것을 몸소 경험함으로써 사유의 영역이 확장됐다고 할까요. 전 세계를 돌면서 일부러 아주 낙후된 동네들을 들렀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사는구나’, ‘지금 내가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불만이 사라지고 만족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는 “죽을 고비도 넘겼고, 고생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러면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보통 중년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낯선 환경에 놓이는 게 두려워 여행을 망설이는데, 그런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 여행의 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교수에게 가이드만 쫓아다니는 패키지여행은 ‘산 여행’이 아닌 ‘죽은 여행’이나 다름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울호수.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울호수.
이 교수는 그동안 해외 배낭여행을 모두 아내와 함께 다녔다. 주변에서는 그런 이 교수를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고.

“보통 중년의 부부들이 함께 다니기를 어려워하죠. 투닥거리긴 해도 혼자보다 둘이 함께 가는 여정이 훨씬 재밌어요. 제가 주로 길을 찾고 아내는 숙소에 도착해 음식을 만들거나 손빨래를 하는 식으로 협업을 합니다. 여행하면서 서로 취향과 성격을 존중해 주니 관계도 돈독해집디다. 친구들에게도 은퇴하고 아내와 여행하라고 추천하고 다녀요.”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울호수.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울호수.
지난해 33년의 교직생활을 정리한 그는 요즘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인도 관련 책을 찾아보고 있다. 동생 부부와 의기투합해 8월 초 인도로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남부에서 출발해 해발 4000m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도전하고자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러다 고산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해요.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면서 고생시키느냐고 아내도 한마디 거듭니다. 그게 제 성격인 걸 어쩌겠습니까. 궁금한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은 열망은 나이를 먹어도 식질 않네요.(웃음)”

그때 이 교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누가 글을 남겼다. 지중해 여행 중에 사귄 뉴질랜드인 신혼부부의 포스팅을 보여 주며 연방 싱글벙글이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다른 국적의 친구들. 이 역시 배낭여행이 가져다준 커다란 선물이다.


이 교수의 배낭여행 노하우
현지 문화 꼭 체험하고 사진·글로 여정 정리!

여행 계획
여행 커뮤니티 월드66(www.world66.com)에 들어가 보면 현재까지 다녀온 나라들을 붉게 표기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야 할 여행지를 선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동하는 비행기는 한 동맹사의 노선을 이용해야 마일리지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항공동맹 원월드(www.one world.com) 사이트의 플레이어를 활용해 원하는 콘셉트에 따른 여행 일정을 짰다. 원월드는 대륙별로 요금을 내야 해 대륙을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우리는 배낭여행으로 유명한 키세스 여행사(www.kises.co.kr)를 통해 티켓을 예매했다.
패키지, 트럭킹, 렌터카, 크루즈 등 굵직한 이동수단을 먼저 예매하고 나머지 일정을 확정했다. 티켓을 출력하니 16번의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서 4개 대륙을 도는 데 1인당 570만 원(세금 포함) 정도, 두 사람 비행기 값만 1140만 원이 나왔다. 총 여행 경비는 항공료의 3배 정도 잡으면 거의 맞게 나온다.

여행 준비
인터넷에서 각 지역의 여행 정보를 검색해 대륙별로 정리했다. 가이드북이나 여행기에서 필요한 부분을 스캔해 넷북에 담아 놓고, 유료인 론리플래닛 가이드북 애플리케이션도 다운받았다. 유스호스텔이나 한국인 민박을 이용할 시를 대비해 국제유스호텔증을 가족용으로 만들었다.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아내는 국제학생증을, 나는 국제교사증을 준비했다.

집은 6개월 동안 비울 예정이니 이 기간 동안에 살 사람을 구해 월세를 줬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월세로 여행 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배낭을 간소화하는 요령도 익혀 둘 것. 내 경우 김치, 고추장 등 한국 음식은 절대 싸가지 않고, 속옷이나 겉옷 등도 두세 개로 최소화해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

여행 즐기기
여행지에서는 최대한 현지의 문화나 분위기에 젖어 들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현지인의 집을 방문한다든지, 그들과 함께 춤도 추고 축제에 참가하면 여행 기억이 훨씬 오래 남는다.
여행 일정과 경로, 감상, 비용 등을 기록해 두면 좋다. 요즘엔 스마트폰 앱도 워낙 잘 돼 있으니 따로 노트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사진을 찍고 거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적어 둔다. 돌아와서는 시간 순서대로 리플레이해 보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책으로 엮어 낸다. 아내와 다녀온 158일간의 세계일주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이윤경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이규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