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화 작가

사람들은 그를 나무 조각가라고 부르지만, 그에게 나무를 깎아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 그 이상이다. 일기와 같은 삶의 기록이고, 수만 가지 감정의 토로이며, 나무가 건네는 이야기와의 교감이다. 그렇게 풀어낸 작가 내면의 아이들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Artist] “웃고 울며…, 우리는 저마다 상처투성이”
그날 이후, 기자에게는 여자 아이 하나가 따라다닌다. 이게 웬 ‘공포물’인가 싶겠지만, 알고 보면 ‘힐링 스토리’. 동그란 얼굴에 짧은 머리, 큰 눈에 기다란 속눈썹까지 붙인 그 여자아이는 핑크색 원피스에 머리에 예쁜 핀을 꽂고 배를 쑥 내민 채 당차게 “배 째!”라고 말하고 있다. 말을 하는 입도 없는데, 꽉 쥔 주먹, 벌린 팔, 내민 배 등 온몸으로 감정을 토해낸다. 살면서 ‘배 째!’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나. 그 아이를 만나고 온 후 차마 밖으로 꺼낼 순 없지만, 그 말이 입 안에 맴돌 때면 슬그머니 그 아이를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절로 웃음이 번진다. 미술작품이 주는 위안과 격려를 모르지 않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실체가 옆에 없는데도 한 번의 강렬한 만남이 전해준 에너지는 그렇듯 일상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 아이를 만난 건 6월 초.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린 송진화 작가의 개인전 ‘너에게로 가는 길’에서다. 오는 7월 8일까지 열리는 작가의 전시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아 보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설령 똑같이 만든다고 하더라도 절대 똑같은 작품이 될 수 없는 나무 조각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스토리를 지닌 인격체다. 웃고 있는 아이, 비를 맞고 있는 아이, 꿈꾸는 아이, 울고 있는 아이, 상처투성이의 아이, 칼을 품은 아이, 살려 달라 애원하는 듯한 아이…. 그리고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면 복잡다단한 한 인간의 삶이 된다. 사람들은 섣불리 송 작가의 삶과 연관 짓는 오류를 범하지만, 그 누구의 삶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관객들(작품이 소녀 혹은 여자의 형상이라는 이유로 특히 여성 관객들이 더)이 그의 작품 앞에서 울고 웃는 것도 자기 투영일 터.


여자의 한? 우리의 응축된 한을 토로하다
그나저나 지난 3년 사이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층 밝아진 작품의 분위기를 본 이들은 저마다 같은 반응을 늘어놓는다고 했다. 좋은 일이 있었던 거냐고, 훨씬 편안해진 것 같다고. 송 작가의 표현을 좀 순화해서 얘기하자면 “그전에는 성질 좀 부렸는데 이젠 부릴 만큼 부려서 걸러진 것 같다”는 게 대답이었다.
‘삐뚤어질 테다!’, 82×18×18cm, 참죽나무, 2014년
‘삐뚤어질 테다!’, 82×18×18cm, 참죽나무, 2014년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 행간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사람들이 ‘너’가 누구냐고 하는데, 사람이나 대상을 지칭하는 게 아니에요. 그 실체가 뭔지 나도 잘 몰라요. 작업을 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과정인데 그 끝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알 수 없죠. 더 완전한 나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송 작가님 작품은 여성 관객들이 더 좋아하죠.
“공감이 더 잘 되는 게 있죠. 제 작품에 칼이 나오고 깨진 술병이 나오니까 ‘여자의 한’이니 뭐니 하는데, 저는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작가면 작가지 꼭 ‘여류작가’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죠. 제가 여자다 보니 작품이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여자만의 응축된 한을 토로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여자 사람’일 뿐이죠.”


그러면 성별을 다양화해보시는 건 어때요.
“안 그래도 이번에 처음 남자가 등장했잖아요. ‘뜨거운 손’의 손이 남자 손인데, ‘남자를 만들어봐야지’ 하고 절대 의도한 바가 아니에요. 코를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든가, 남자는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든가 하는 생각도 없어요. 나중엔 남자가 더 많이 등장할지도 모르죠, 뭐.”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다른가요.
“여자 분들은 울컥 우는 분들이 많아요. 남자는 두 부류인데, 작업하는 분들이나 평균치가 아닌 분들은 좋다고 하고, 또 한 부류는 도대체 이런 걸 왜 하느냐며 와이프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식칼을 꽂고 있고 피멍든 모습 등을 불편해하는 거죠. 그런데 칼은 보편적 감정이에요. 어떤 기자가 ‘식칼’에 대해 묻기에 ‘다중이’라고 답했는데, 저는 그게 보편적 사람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든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건강하지 못한 거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요. 복 받은 사람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있고, 그로 인해 행복지수가 높아졌으니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했나 봐요.(웃음)”


그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나요.
“스스로도 그런 질문을 해봤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에 ‘사랑과 야망’이라는 TV 드라마에 그런 대사가 있었어요. ‘아주 행복한 순간에도 내 심장의 반은 슬픔으로 차 있다.’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었어요. 거기 비추어보면, 기본적으로는 슬프고 견뎌내는 쪽인 것 같은데,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아요.”


노래 가사에 그런 게 있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송 작가님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제 얼마큼 풀어냈나요.
“음, 많이 했다 싶고 어느 정도 해소도 된 것 같은데 아직 칼이 등장하는 걸 보면 100%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전에 칼의 감정이 주였다면 다른 쪽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할까요. 저는 순발력이 없어서 빨리빨리 전환이 안 되고 더뎌요. 이렇게 느리게 가다 보면 행복한 쪽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송진화 작가의 작품에는 ‘아직’ 칼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누군가는 울컥하지만, 그는 칼의 감정이야말로 ‘보편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송진화 작가의 작품에는 ‘아직’ 칼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누군가는 울컥하지만, 그는 칼의 감정이야말로 ‘보편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슬프고 견디는 감정의 근간이 어딘가요.
“어릴 때부터 항상 불안함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라서 여기저기 전학을 많이 다녔죠. 안정되지 못했고, 밑바닥엔 늘 불안이 있었어요. 이른 나이에 엄마가 돼 숨 가쁘게 아이를 키우며 살았던 것도 ‘내면의 아이’에 주목하게 된 배경일 거예요. 작품에 드러난 제 감정은 결국 여러 개의 포자가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구체적 형태로 결합돼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던 시간, 분노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 제 동력이었는데, 도약하는 지점이 있어야겠죠. 그때 되면 다른 이야기를 건네올 테고.”


50세가 넘은 청년작가, 나무가 이야기를 걸어오다
물리적인 나이로는 50이 넘었지만 송 작가는 스스로 ‘청년 작가’라 칭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업 작가로 산 지가 이제 10년 남짓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14년간 미술학원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삶은 늘 ‘임시’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좋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이 몸에 맞지 않았다. 목까지 감정이 찼을 때쯤 그는 생각했다.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이젠 싫다.’ 일단 학원을 접었고, 그러고 나니 행복했다.


나무 작업이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학원을 접고 두 번 전시를 했는데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더군요. 슬럼프가 왔고 11개월 정도 아무것도 못 해 고통스러웠죠. 제가 손이 근지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재봉틀을 돌려 가방을 만들고 옷을 만들며 달랬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목인갤러리에 갔는데 나무인형이 있더라고요. 갖고 싶은데 살 수가 없으니 ‘내가 하나 만들자’ 했던 겁니다. 각목을 주워다가 깎았는데 까맣게 때가 낀 나무가 벗겨지면서 하얀 속살이 보이는데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엔 이게 작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몸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딱 맞았죠. 사람들은 제가 생각이 많고 복잡할 것 같다고 하지만 정말 단순하거든요. 톱을 들면 잡념이 들어오지 않아서 좋아요. 위험하니까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집중도가 높아지죠.”


남들보다 늦었지만, 결과적으론 그 또한 필연이 아니었을까요.
“1985년 저와 함께 동아미술상을 받은 세 사람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저는 뒤늦게 시작하려니 그간 뭐하고 살았나 싶더군요. 지난 시간이 다 무의미한 것만 같았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어요. 늦은 만큼 진짜 열심히 작업했어요. 하루에 17시간 이상씩 작업에 매달렸죠. 짜릿하고 연애하는 기분이었어요. 아마 일찍부터 작업을 했다면 5~6시간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르죠. 갈망이 강한 만큼 더 미친 듯이 작업을 했고 그러면서 너무 행복했고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겁니다.”


전공을 바꾼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나무가 너무 좋아요. 양감이 있고, 덩어리고, 나무마다 각자 갖고 있는 다른 무게감과 비중도 좋아요. 사실 나무 조각은 거의 ‘노가다’예요. 손도 굽어지고 하니 늙어서는 못할 수도 있죠. 헌데 저는 과연 제가 평면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덩어리에서 오는 만족감도 있고, 또 저는 몸으로 풀어야 하는 성향이거든요. 나무를 깎을 때 전후측면에 스케치를 해서 조각하는 줄 아는데 저는 그냥 나무를 응시하다가, 나무가 이야기를 걸어오면 스케치를 안 하고 바로 톱을 들고 시작해요. 마치 살이 튀고 피가 튀듯 하면서 형상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제일 신나고 즐겁죠. 남들은 조수를 써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힘이 없어지더라도 통나무를 쳐내는 작업은 반드시 제가 할 거예요.”
‘놀아줘’, 56×20×27cm, 소나무, 2014년
‘놀아줘’, 56×20×27cm, 소나무, 2014년
나무가 이야기를 걸어온다고요.
“그럼요. 옹이가 박혔다거나 휘어졌거나 벌레 먹은 나무 등 각자 형태가 다른 나무들은 그 안에서 어떤 아이가 알아서 걸어 나와요. 그럴 땐 1초의 망설임도 없죠. 저는 그저, 나무에게 기대서 나무가 하는 이야기에 보태 아이들을 끄집어내주는 것뿐이에요.”


나무와 단단히 사랑에 빠지셨네요.
“작업실에 있는 나무만 봐도 너무 좋아요. 세월이 지나면 회색으로 변해 가는데 아까워서 깎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작품을 할 땐 또 그 아이하고만 사랑에 빠지죠. 보통 보름 정도 작업을 하는데 그동안엔 엄청 사랑해주다가 또 다른 작품을 하면 사랑이 변하죠.(웃음) 저는 제 작품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작품이 팔리는데, 보관을 아무리 잘해도 온도와 습도에 따라 터지기도 하고 터졌다가 아물기도 해요. 죽은 존재가 아니라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에 광택제도 바르지 않고 채색할 때 수성을 선호하는 것도 나무가 숨 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죠.”


‘가뭄에 콩 나듯’ 팔린다니 너무 겸손한 표현 아닌가요.(웃음) 가격이 비싸서?
“나무 작업은 옹이도 다르고 무늬도 달라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에요. 사는 분 입장에서는 작품이 작은데 왜 비싸냐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사이즈가 작은 게 더 힘들거든요. 평면 작품처럼 호수에 따라 가격을 정하면 편한데 그것도 쉽지가 않죠. 사실 작업 이외의 것에 대해선 정말 게을러요. 솔직히 저는 관람객도 필요 없고 평론가도 필요 없고 저를 위한 작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토해내기 바빴던 사람인데, 제 전시를 보려고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오는 분이나 전시장에 와서 울고 가는 분들, 또 너무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갤러리에 맡겨 놓고 매월 얼마씩 적금을 붓듯 해서 1년 만에 작품을 찾아간 분 등을 보면서 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자각이 좀 생겼어요.”
‘배 째!’, 96×55×37cm, 은행나무, 2013년
‘배 째!’, 96×55×37cm, 은행나무, 2013년
송 작가님 작품은 외형적으로 작가님을 떠올리게 해요. 특별히 ‘애정하는’ 작품이 있나요.
“‘삐뚤어질 테다’가 그래요. 제 작품엔 전반적으로 ‘성깔’이 깔려 있는데, 섹시하고 예쁘지만 성깔 있는 그 아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요. 저에게 작업은 일기 같은 거예요. 아마도 ‘삐뚤어질 테다’를 만들 땐 그런 감성이었겠죠.”


일기, 그렇다. 송 작가의 작품들은 그의 일기이자 곧 우리들의 일기이기도 했다. 관객들마다 각자 그날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반응하는 작품이 다른 것도 아마 그 때문일 터. 그날 ‘배 째!’라는 아이에게 끌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려나. 자꾸만 그 아이가 눈에 밟혀, 1년간 적금 붓듯 했다는 그 관객처럼 갤러리에 ‘킵(keep)’해 두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넌지시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안타깝게도 팔렸답니다”다. 온 사랑을 다 쏟은 작품이 제대로 ‘시집’을 가 사랑을 받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던 송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박진영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